[농민칼럼] 경주 APEC의 뒷면 바라보기

2025-11-16     김용빈(강원 철원)

 

김용빈(강원 철원)

기업과 강대국들을 위한 가진 자들만의 야단법석 시끄럽던 잔치가 끝났다. 당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1989년 호주 총리 밥 호크의 제안으로 시작한 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한 단계 강화하여 아시아·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경제 협력체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란 미명 아래 세계는 자본 이동의 규제는 풀고 거대 기업들에 휘둘리며 지적재산권 등으로 종자권리·제약권리 등 시민의 권리는 빼앗아 삶을 피폐화시켜왔다.

이 현상은 식민지 쟁탈을 통해서라도 자국의 이익과 불로 소득을 취하려는 서구의 욕심에서 발로한 것이다. 서구는 콜럼버스 이후 20세기까지 이르는 동안 아시아·아프리카·남미까지 지구 곳곳을 자기 나라의 식민지로 지배하기 위해 혈안이 됐고 식민지 국가들은 수탈과 착취를 당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물론 지금도 그 영향으로 서구는 물질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는 궁핍한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주에 모인 각국 지도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해 논의하지 못했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전쟁위기가 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공동의 논의를 못했다.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유엔도 무력화되어 역할을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서 만들고 미국의 들러리 기구였던 유엔에 미국은 회비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트럼프는 별 볼 일 없는 조직으로 무시해 버렸다. 더욱이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을 방불케 하는 일방적 공격을 묵과해 왔고, 오히려 자국 일방만의 수익을 위해 폭력적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 연장 선상에서 진행된 경주 APEC에서 대두된 관심사는 미국의 관세 협박에 어떻게 방어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주최국으로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노력했고 트럼프를 상대로 선방했으며 다자외교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APEC 회의에선 세계 민중과 지구 전체를 위한 내용은 논의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더 큰 욕심의 표현인 ‘신자유주의’란 명명이 그동안 불편했다. 너무나 미화된 이름이다. 대기업들과 강대국을 위한 돈놀음이며 그들만을 위한 잔치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허울을 벗고 본색을 드러내는 제대로 된 명명을 해야 한다. 시골 농부는 그동안 신자유주의란 명칭을 거부해 ‘악질 자본주의’라고 불러왔다. 경주의 다른 자리인 경주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린 국제민중회의에서 명명한 ‘약탈적 신자유주의’라는 명칭의 적절함에 동의한다. 거기에 날카로운 우리들의 눈이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무역에서 농산물 수입을 강제하는 등 농산물을 인질로 삼는 무역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 인류의 먹거리는 신토불이, 지산지소의 정신으로 무역에 의존하지 말고 각국이 자립적인 식량 생산과 소비를 이뤄가도록 존중해야 한다. 농산물 수입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최소화하고 각국이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기후위기에 대응할 능력도 높아진다.

이제는 자본의 수탈을 위한 악질 신자유주의 단합대회와 약육강식의 경제 전쟁을 넘어, 인류가 함께 공영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와 사회 시스템을 논의해야 한다. 그러한 역할과 방법을 논의하고 협력하는 국제기구를 만들기 위한 국제민중의 연대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