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 56]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에서 만난 오일장
서울 중심에서 불과 50km 정도 떨어진 강화도는 섬이면서도 논밭의 면적이 넓은 곳이어서 그 어느 지역보다 물산이 풍부하다. 강화도만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순무나 인삼, 사자발쑥 등이 흔할 뿐 아니라, 한강 하류와 바다가 이곳에서 만나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웅어’의 시간이 일주일 정도 있기도 하다. 남서해안에서 양식한 것을 가져다 갯벌에 풀어서 두 달 이상 키워 파는 ‘갯벌장어’가 있는가 하면 자연산 망둥어도 있다. 강화산 젓새우는 아주 유명해 김장철이 가까워지면 새우젓을 사러 다니는 인파의 수가 장난이 아니다. 6,7월에는 밴댕이회를 먹으러 일부러 찾는 곳이 강화도이기도 하다. 아무튼 지리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주말마다 들락거렸을 정도로 내가 좋아했던 곳이 바로 강화도다.
지금 살고 있는 지리산에서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어 미루던 곳이었지만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가볍게 설레기도 했다. 딸아이 어릴 때 살던 김포를 지나 강화대교를 건너면서는 더 그랬다. 주차를 하고 일행과 만나기 전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상설시장 건물 반대편으로는 넓은 농지가 있어 시야가 시원하다. 이제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김포오일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강화오일장은 상설인 풍물시장 앞과 옆으로 크게 서는 2,7장이다. 농민장과 일반장이 적절히 섞인 볼거리 많은 장이다. 11월 중순의 강화장은 넘쳐나는 순무다발들에 압도당한다. 인삼판매장이 근처에 따로 있어서 그런지 인삼은 눈에 보이지 않고 김장배추와 무도 순무의 기세에 눌린 것 같다. 그 사이로 알록달록한 풋콩 바구니들이 보이고 햇잡곡도 눈길을 끈다. 아직 가을과는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것 같은데 봄을 알리는 대표 전령사인 달래와 냉이도 보인다.
한쪽으로 장을 찾는 사람들의 허기와 한기를 날려줄 음식들을 팔기도 한다. 사자발쑥을 기본으로 송편과 인절미, 설기떡 등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손님들을 부르는 떡집도 있다. 무설기떡도 보인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겨울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수록 달달하고 부드러운 무의 맛이 사람을 홀리는 떡이다. 지역의 특산물로 사람을 끄는 이런 먹거리가 참 좋다. 농민과 상인, 소비자 모두 만족할만한 시장의 판매대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김장거리만 모아놓고 파는 곳엔 베트남에서 온 젊은이 둘이 큰소리로 호객을 하며 농산물을 팔고 있다. 화순오일장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나와 물건을 팔던 며느리 이후 처음 만난 모습이다. 우리 농촌의 현실이 장터까지 확장된, 지금은 많이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풍경이 아닌가 생각했다.
강화오일장에 가면 오일을 주기로 서는 장터의 구경도 좋지만 오일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 같은 모습의 풍물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좋다. 오일장과 날짜를 맞추지 못하고 강화도에 가더라도, 상설 풍물시장 구경만으로 잔재미를 느끼고 올 수 있다. 입구로 올라서면 ‘어서 오시겨’라는 사투리로 손님을 환영하는 현수막부터 만난다. 괜히 기분이 좋다.
여느 물건 파는 시장이지만 1층은 좀 다르다. 다른 시장들보다 반찬가게가 월등히 많은데 대부분 순무김치를 담아 팔고 있다. 통이나 봉지에 담아 팔지만 한쪽에서는 계속 김치를 담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이 팔린다는 뜻이다. 7~8개 달린 순무 한다발이 1만5000원 안팎으로 팔리는데 순무김치는 1kg에 1만2000원이다.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의 순무를 양념이 과하지 않게 무쳐 파는데 반찬가게마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위적으로 감미료만 넣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내 개인의 몫이다.
새우젓을 주로 파는 젓갈 상인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어물전, 그 옆으로 말린 생선을 파는 건어물 가게들이 적절히 섞여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싶게 한다. 다양한 품종의 쌀들을 자루나 종이포대에 담아 파는 싸전들도 보인다. 눈으로 충분히 즐기다가 시장기가 돌기 시작하면 이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배를 불리고 내려와 다시 맛을 보고 그때도 맛있으면 구매해야 충동구매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밴댕이를 주제로 한 식당과 국밥집, 절구로 쳤다는 쑥인절미와 송편, 쑥개떡을 파는 떡집들이 대표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옆으로 쑥찐빵집도 있다. 강화도의 밴댕이 제철은 초여름인데 늦가을에도 회 정식을 팔고 있는 것이 이상해서 상인에게 물으니, 신안에서 당일 경매를 받아 가져오는 것이란다. 여름에 잡아 냉동했다 파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또 배운다. 7월 이후 강화도에서 산란을 마친 밴댕이가 한여름에는 충청도 인근에서 잡히고 지금은 신안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 겨울에는 통영까지 간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도 밴댕이는 수온이 낮은 강화도산이 가장 맛있다고 했지만 점점 어획량이 줄고 있다는 걱정도 잊지 않았다.
동치미 담글 때 같이 쓸까 하고 빨간무 몇 개와 풋콩들을 종류별로 사들고 장터를 나왔다. 아직은 농민장이 그 어느 곳보다 활기찬 곳이라 계절별로 몇 번은 더 올 시장으로 기억하기로 한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