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곳 없는 친환경 임차농, 위협받는 친환경농업

정부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 애꿎은 실경작자만 내쫓아 친환경농업 지속가능성 위해선 임차농 보호 대책 필요

2025-11-16     김하림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하림 기자]

우리 농촌에는 친환경농업을 하는 실경작자임에도 친환경인증도, 임대차계약서도, 직불금도 없는 ‘유령농부’가 존재한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친환경 인증면적 중 직불금 수령면적은 46.9%에 불과했다. 이에 관해 이 의원은 “실경작자인 임차농이 지주와의 계약서 미작성으로 직불금 지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차농은 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 및 「조세특례제한법」의 ‘8년 이상 자경 시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노리고 직접 농사짓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임대차계약서를 써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농업경영체 등록 명의(지주)와 친환경인증 명의(임차농)가 다른 경우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에 걸리기 쉬워, 지주가 임차농에게 친환경인증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선 정부의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그에 앞서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이 갖춰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전북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임차농 A씨의 논. 지난가을 A씨는 해당 필지의 지주와 친환경인증 문제로 마찰을 겪었다.

“7년 일군 친환경농지 잃게 생겨”

“지주들은 친환경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땅 빌려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7일 전북 모처에서 만난 친환경농민 A씨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최근 지주로부터 친환경인증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지난가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김상경)은 A씨에게 땅을 빌려준 지주에게 연락해 직불금 신청 명의와 친환경인증 명의가 다른 점을 지적했다. A씨는 해당 필지에서 임대차계약서 없이 7년간 친환경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주는 A씨에게 “왜 친환경인증을 받아 내가 벌금을 내게 만드느냐”고 도리어 항의했다. 지주는 A씨에게 친환경인증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지만, 수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판로를 잃을 수 없었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친환경인증을 취소하지는 않았지만, 내년부터는 해당 필지에서 농사짓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는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농지 투기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을 강화한 이후, 전국의 친환경 임차농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A씨는 한살림전북생산자연합회의 한 생산공동체에 소속해있는데, 해당 생산공동체의 20여개 농가 중 A씨와 같은 이유로 지주와 마찰을 겪은 농가는 근 2년간 4개다. 해당 생산공동체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B씨는 “우리 생산공동체 농가들이 경작하는 땅이 도합 17만평인데 그중 88%가 빌린 땅이다. 그리고 빌린 땅 중 40%가량은 농업경영체 등록이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한 농가는 지난해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에 걸리자 벌금 및 환수금 1500만원을 함께 부담해줬다. 그럼에도 임대차계약을 갱신하지 못해, 올해부터는 오랫동안 가꿔온 땅에서 농사지을 수 없게 됐다.

또 다른 농가는 지난봄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에 걸린 지주가 친환경인증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해, 농사를 지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해당 필지에서 난 유기농산물은 한살림에 참여인증으로 일부 납품하고 나머지는 택배로 개별 판매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정부의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은 애꿎은 실경작자만 농지에서 내쫓는 결과를 불러왔다. 관행농업을 하던 농지에서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3년(다년생 작물 기준)의 전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농지를 찾기도 쉽지 않다. B씨는 “정부 입장에선 직불금 부정수급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겠지만, 실질적으론 친환경농업을 완전히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열린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 및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익명의 친환경 임차농이 유령농부 탈을 쓰고 발언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젠 정부가 대안 제시해야”

친환경농업계에선 이대로라면 친환경농업을 지속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한살림연합·한국친환경농업협회를 비롯한 친환경농민·소비자단체들은 지난 7월과 10월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국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단체들은 정부·국회를 향해 △‘가짜 농부’ 비호하는 현행 단속 즉각 중단 △실경작자 중심으로 농업경영체 등록 제도 개선 △「농지법」 개정으로 친환경농지 임대 활성화 및 임차농 보호장치 마련 △농지실태 전수조사 및 실경작자 보호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제22대 국회에는 농지 임대차 예외조항에 친환경농업을 추가하는 「농지법」 개정안, 친환경농민에게 농지 장기 임대 시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것으로 임대차계약의 양성화를 유도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8월 친환경농민·소비자단체들과 농식품부는 친환경 임차농 보호를 위한 민관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친환경농민들은 말한다.

조성근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은 “TF에서 농식품부는 민간단체들의 요구사항에 관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고만 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제 농식품부가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