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외판원 이야기② ‘슈 샤인 보이’가 되다
1972년 어느 봄날 천안역 광장. 부슬부슬 이슬비가 내린다.
-야, 임마 찍새! 네 임무가 뭐야! 구두를 찍어와야 닦든지 광을 내든지 할 것 아녀!
-오늘은 이슬비가 오니께 사람들이 구두를 통 안 닦을라고 하는디….
-이 자식아! 비온다고 밥 안 묵고 살껴? 저기 역전다방이래도 가서 찍어와! 안 닦겠다고 하면 억지로래도 벗겨 오란 말이여!
홍경석보다 너덧 살 위인 사내가 홍경석의 발치에다 나무 구두통을 내던지며 성화를 부린다. 정한 자리에 구두통을 앞에 놓고 앉아서 신발을 닦는 사람을 그들 세계의 은어로 ‘
새’라 했고, 슬리퍼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닦을 구두를 수거해 오는 사람을 ‘찍새’라고 했다. 물론 당연히 그 판에 처음 들어와서 구두 닦을 기술을 아직 익히지 못한 홍경석 같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른바 ‘찍새 노릇’이었다.
“비 오는 날은 거의 공치는 날이라고 봐야지요. 그런데도
새 형은 빨리 가서 구두를 ‘찍어’오지 않는다고 구박을 해요. 그럴 땐 천안역 인근의 다방으로 들어가요. 가서 차 마시고 있는 아저씨한테 다짜고짜로 구두 닦으세요, 구두 좀 닦아요, 그러면 그래라, 하고 선뜻 벗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악착같이 매달려요. 그
새 형이 무서우니까. 억지로 벗기다시피 매달렸다가 귀뺨을 얻어맞은 적도 있다니까요. 어떤 사람은 귀찮아서 못 이기는 척 벗어주기도 해요. 그렇게 다방에서 찍어오는 구두는 뒤축을 손상시키지 않거든요.”
다방에서 찍어오는 구두는 뒤축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
일단 열네 살 홍경석이 구두를 ‘찍어오는’ 시외버스 터미널 쪽으로 따라가 보자.
-구두 닦어! 신발 닦어! 아저씨 구두 닦어유! 아저씨, 이 구두 닦어야 되겠네유. 벗으세유. 닦어 드릴게유.
-아이고, 얘야, 내가 시방 바쁜디…. 조카 결혼식에 가는 길인디….
-그러니께유. 결혼식장에 가시니께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닦어 신고 가야지유. 자, 자, 아저씨, 이 쓰리빠 신고 잠깐만 기다리고 계셔유. 금방 닦어다 드릴 테니께.
-허허, 시간 없다니께….
-자, 벗으세유.
주로 면 단위 지역에서 올라온,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서는 억지로다시피 그렇게 신발을 벗겨서 구두 닦는 사람(
새)에게 가져간 것까지는 그래도 크게 문제될 게 없었는데,
-아 바쁘다고 했는디 워째서 구두를 안 갖다 주는 것이여! 안즉 멀은 것이여?
남자가 구두 닦는 곳까지 다가와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새가 구두를 건넨다.
-다 됐시유. 야, 이거 완전히 새 구두가 돼부렀네유. 3500원 되겄습니다.
-뭐, 뭣이라고? 아니, 구두 한번 닦는디 뭐, 3천 얼매라고?
-에이, 구두 뒤축이 너덜너덜해서 갈아 붙였잖유. 3500원이면 싸게 해준 것이구먼.
-뭣이여?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 봤나. 멀쩡한 뒤축은 누구 맘대로 띠고 붙이고 한 것이여!
그러나 헌 구두 굽은 이미 떼어내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 끼워 놨으니 어쩔 것인가? 보통은 몇 마디 항의를 해보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고 갔지만, 심한 경우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그런 것 두 건만 하면 일당벌이가 거뜬했었다는 것이 홍경석씨의 얘기다.
몇 달 뒤, 홍경석도 드디어 찍새 노릇을 졸업하고 구두를 닦게 됐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그런 어거지 뒷굽 갈이 강매는 할 용기가 없어서 벌이가 신통치 않더라고 했다.
다시 시외버스 정류장.
-서산 가유! 태안 갈 손님 빨리빨리 타세유! 당진 출발합니다, 오라이!
시외버스들이 부단히 떠나고 들어오고 하는 정류장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등학생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의자에 앉더니 구두통 위에 발을 터억 올려놓았다.
-야, 임마, 침을 탁탁 뱉어가면서 반짝반짝 광을 좀 내봐라!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을 요모조모로 뜯어보던 홍경석이 제법 큰소리로 물었다.
-형은 진짜가 아니지? 가짜 학생이지? 이렇게 늙은 고등학생이 어딨어.그 가짜 학생이 바로, 구두닦이 홍경석을 본격적인 세일즈전선에 나서게 해준 장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