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충해엔 답 없는 콩 재해보험 “드나 마나 한 애물단지”
병충해 보장 강화·상품의 질 피해율에 반영 등 개선해야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기나긴 가을장마로 논콩이 썩고 급기야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지경까지 이르자 정부도 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지만, 안전장치가 돼야 할 농작물재해보험은 사실상 무용지물인 실정이다.
콩은 원래 밭작물이고 습해에 매우 취약한데 정부 정책으로 논에 벼 대신 콩 재배가 급격히 늘면서 상시적 습해 위험에 놓였다. 수확량을 좌우하는 콩꽃의 개화 시기와 여름 장마철이 겹치는 데다 지난해부터는 가을에도 비가 잦은 날씨까지 더해져서다. 그러나 현재 콩 재해보험은 습해에 따른 다양한 재해를 보장하지 못하며 빠르게 개선될 기미도 없다.
현장이 지적하는 콩 재해보험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원인이 무엇이든 병해충으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하지 않는 것과 수확물의 품질과 관계없이 수확량 감소분만 보상한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는 과습에 의한 곰팡이성 병해가 급증하면서 이 같은 문제 제기가 빗발쳤다.
“가을장마로 미라병이 대거 발생했고 정부도 이를 자연재해로 인정했는데, 정작 재해보험은 보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콩 약관상 ‘기타 자연재해’는 호우 등 보험대상 자연재해에 준하는 자연현상에 의한 피해도 보험대상에 포함하며, 미라병도 분명 잦은 호우로 발생했다. 그럼에도 병충해니 무조건 보장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잖나. 기후 상태는 병충해 급증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보장하지 않으니, 농민들이 콩 보험에 가입할 실질적 의미가 없다.” 이용희 괴산군농민회장이 지적했다.
이 회장은 “정작 필요할 땐 보험이 쓸모가 없으니 ‘이럴 거면 굳이 왜 보험을 드나’, ‘보험이 아니라 애물단지’란 원성이 나온다”라며 “정부·지자체가 품목당 보험료로 적게는 40억원에서 많게는 80억원까지 예산을 쏟아붓고 가입을 권장하며 생색내는데 농민들은 차라리 그 재원으로 복구비를 인상하는 게 낫다고 할 정도다”라고 덧붙였다.
수확량만을 기준으로 한 피해율 산정 방식도 문제다. 논콩은 침수 피해가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물이 빠진 뒤 겉보기엔 멀쩡해도 수정이 잘 안돼 경작불능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피해율 산정의 핵심인 기준수확량까지 줄어든다.
농민이기도 한 김석민 손해평가사는 “피해율을 수확량 감소분으로만 따지니까 보험금 한두 번만 받아도 피해율 자체가 안 잡힌다. 5년 평균 수확량으로 다음 해 기준수확량을 잡는데, 5년 중 경작불능이 나온 해가 한두 번이라도 있으면, 기준수확량이 훅 떨어져 실제 피해가 아무리 커도 그에 상응하는 피해율이 안 나온다”라며 “워낙 습해에 취약한 작물이라 올해처럼 비가 잦으면 병충해가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 병충해는 상품(수확물)의 질과 직결되므로 콩 역시 고구마나 고추처럼 상품의 질까지 보장하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송채복 부량면 논콩피해대책위원장(전북 김제시)은 “잡안병·미라병이 걸린 콩인데도 수확량에 포함된다. 병충해는 미보상인데, 정작 수확량에는 들어가는 거다. 미라병이 든 콩은 어디에도 쓸 수 없고 잡안병은 수매 등급이 낮아 농가 피해가 매우 크다”라고 전했다. 이어 송 대책위원장은 “1200평당 정상 수확량이 1250kg이나 실제론 800kg(64% 감소)밖에 안 나왔는데도 피해율은 17%로 잡혔다. 여기서 자부담 15% 빼면 보험금은 받으나 마나다. 자부담률이 20%면 보험금도 없다”라며 “손해사정사들도 농가의 실제 피해 규모를 아니까 가능한 현실적으로 피해율을 잡고 싶어 하나 검증조사 시 나온 피해율과 차이가 크면 징계까지 받는다니 피해율을 최대한 줄여 놓기에 급급하다. 농민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실정에도 콩 재해보험 개선 속도는 오히려 현장의 답답함을 더하고 있다. 올해 병충해 관련 개선책은 시설작물의 일조량 부족 피해 발동 기준 마련과 병충해 보장 작물 기존 4개에서 2개 추가(기상 요인에 의한 사과 탄저병·가을배추 무름병)에 그쳤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병충해 보상은 시범사업 결과를 보며 점차 확대를 검토하는 단계”라며 “재해보험 개선은 농식품부만 결정해서 추진되는 사안이 아니며 「상법」과 「보험업법」을 적용받는 금융상품이고 다음 해 보험료율과도 연결돼 있어 여러 관계기관과의 협의와 다각적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재해보험의 운영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석민 손해평가사는 “논콩뿐 아니라 매년 여러 품목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기본적으로 민간 보험사(NH농협손해보험)는 최대한 손실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라며 “막대한 정부·지자체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앞으론 정부가 직접 재해보험을 운영해(공단 설립·의무보험 도입) 농업재해보험의 공공성 강화에 나서야 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