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청년 귀농 정책에 가로막힌 ‘산수골의 꿈’

원주서 귀농·귀촌 마을공동체 일군 이도형 촌장 청년들 정착 원했지만…제도적 한계 부딪혀 떠나 “농지 구하기 어렵고 겸업도 못 해” 정책 개선해야

2025-11-09     유승현 기자

[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지난 3일 이도형 촌장이 귀농을 꿈꾸던 청년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마을 공간에 걸린 그들의 사진을 그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강원 원주시 부론면 ‘꿈꾸는 산수골’의 이도형(69) 촌장은 1999년 귀농해 25년째 마을을 일구고 있다. 최근 마을로 귀농을 시도했던 청년들이 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모두 떠나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다움이 숨 쉬는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촌장은 귀농 후 친환경농사를 짓는 한편, 생협과 햇빛발전소추진위원회를 조직해 마을의 자립 기반을 모색했다. 또 직접 건축을 배워 20여년간 마을에 12채의 집을 지었다. 이를 매각하거나 임대해 청년·가족 단위 귀촌인, 농촌 유학생 가족 등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로 발전시켰다.

이 촌장은 “농촌의 잠재력은 농사를 통해 배우는 생명 존중 문화에 있다”며 “주민들과 함께 이곳을 ‘꿈꾸는 산수골’이라 이름 짓고, 사람다움이 깃든 마을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오랜 꿈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은 2022년 말 20~20대 서울 청년 네 명이 귀농을 위해 마을을 찾으면서였다. 이 촌장은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청년들은 이 촌장이 무상으로 내준 텃밭에서 상추·깻잎·감자·허브 등을 기르며 기후변화 인식과 생태적 감수성 기반의 농업을 하고자 했다. 또한 영화제·체험 프로그램을 열어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도시 청년들을 끌어 모으는 등 모처럼 마을에는 활기가 돌았다. 이들 중 조유진(32)씨는 농림축산식품부 청년농업인영농정착지원사업 바우처(최대 3년간 월 90만~110만원)를 받아 공동 살림에 보태기도 했다. 조씨는 “도시의 경쟁적 삶이 아닌, 내가 쏟은 만큼의 결과를 얻는 농사에 매력을 느꼈다”며 “이 촌장님은 ‘말이 통하는 어른’이었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며 응원해 주셨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찾은 청년들이 가꿨던 ‘꿈꾸는 산수골’ 텃밭에는 그들이 떠난 뒤 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정책의 벽에 막힌 청년 귀농 꿈

하지만 1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조씨는 청년농업인영농정착지원사업 자격을 갖추기 위해 2023년 2월 300평 규모 농지를 연 임대료 20만원에 5년간 임차했는데, 소유주가 10개월 만에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소유주가 자경(自耕)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경우 연 임대료의 10%만 위약금으로 내면 법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단돈 2만원에 정성 들여 가꿔온 땅을 고스란히 내줘야 했다. 게다가 이 촌장과 함께 준비하던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조성사업’도 지난해 신규 조성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 지원하지 못했다.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청년들은 2년 만에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촌장은 이를 두고 “완벽한 사기”라며 크게 상심했다. 몇 년간 지속했던 사업의 신규 모집 예산이 정부 상황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고, 농지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청년귀농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조씨는 “기반이 없는 청년들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 자격을 얻으려면 먼저 농지를 확보해야 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부딪힌다”며 “어렵게 땅을 구해도 농사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데 겸업도 못 해 결국 떠나는 청년들이 많다”고 했다.

청년농업인영농정착지원사업은 바우처 지원 기간 동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겸업을 제한하고 있다. 농업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취지지만, 단기간에 농사 수익을 내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씨 역시 지원사업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이 촌장의 도움으로 급히 새 농지를 구했지만, 당장 수익이 없어 까다로운 겸업 제한 예외 조건에 맞는 3개월 계약직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거의 없어 이마저도 계속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조씨는 여전히 ‘반농반X(소규모 농업을 기반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병행)’의 삶을 꿈꾸며 한동안은 원주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이 촌장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꿈꾸는 산수골은 노년과 청년, 농촌 유학 온 어린이들까지 전 세대가 어울려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공간”이라며 “이곳을 ‘풀 맛(농사)’을 본 사람들의 생명력이 가득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마을 공공재 전환 등 새로운 실험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