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과 비수도권이 정치에서 대변되려면

2025-11-02     하승수 대표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은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13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당시에는 지역구 224석, 전국구 75석, 합계 299석을 선출했다. 선거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이 125석을 얻는데 그친 것이다. 평화민주당이 70석, 통일민주당이 59석,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 한겨레민주당이 1석, 무소속이 9석을 얻었다.

이런 정당별 의석수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비수도권 의석수가 수도권 의석수보다 훨씬 많았다.

축소된 비수도권 의석 비율

1988년 4월 총선 당시에는 224석의 지역구 의석 중에서 서울 42석, 경기 28석, 인천 7석이었다. 흔히 수도권으로 불리는 서울, 경기, 인천의 지역구 의석을 다 합쳐도 77석이었던 것이다. 전체 지역구 의석 중에서 34.4%의 의석만 수도권 의석이었다. 당시에는 경기도의 많은 지역이 지금처럼 개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수도권 중에서도 도시지역으로 국한하면 의석 비율은 더 적었다.

그런데 36년이 지난 2024년 총선에서는 전체 지역구 의석 254석 중에서 서울 48석, 경기 60석, 인천 14석이었다. 합치면 122석이 수도권 지역구 의석이었다. 전체 지역구 의석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8.03%에 달했다.

뿐만이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구에서 선출은 되지만, 실제로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주택을 소유하는 곳은 수도권인 국회의원들이 많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표만 얻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적 준거 지역이 수도권인 국회의원들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수도권 국회의원들은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거대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도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의원들이 많은 실정이다.

결국 민주화 이후에 대한민국 정치도 수도권 일극 집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말로는 ‘균형발전’을 얘기하지만, 실제 정책은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유이다.

농업·농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농민 출신 국회의원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물론이고 농촌에서 실제로 거주하는 국회의원도 줄어들었다. 그 결과 ‘농’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농업·농촌과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자 한다면, 중앙정부나 중앙당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경기도 용인에 추진되는 삼성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남, 전북, 충남, 강원, 경북, 충북 등지에 추진되고 있는 34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난 9월 17일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열린 ‘고압 송전선로·철탑 건설 반대! 영암군민 궐기대회’에서 고압 송전선로와 철탑 건설 반대를 위한 영암군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송전선로 건설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수도권 정당과 영남-강남 정당으로 양분된 한국정치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수도권 정당과 영남-강남 정당으로 양분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실질적으로 수도권이 주도하는 정당이 됐다. 1988년 당시에는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도권이 주도하는 정당이 된 것이다.

이것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원내대표의 지역구를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와 원내대표 지역구는 대체로 수도권이었다. 지금도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모두 서울이다.

한편 국민의힘은 영남과 강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 돼 버렸다. 그런데 영남을 잘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을 보면, 영남에서 표는 얻으면서 강남을 대변하는 정당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의료폐기물이 수도권에서 경북지역으로 밀려들고 있는데, 경북의 국민의힘이 그에 대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경북지역 곳곳에서 환경오염시설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국민의힘이 지배하고 있는 경상북도의회에서는 환경영향평가 조례조차 제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국민의힘이 영남을 과연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인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가 수도권 일극 집중을 가속화시켜 왔다. 농촌의 목소리는 정치에서 소외됐다.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도 소외됐다. 반도체공장은 경기도 용인에 지으면서, 비수도권 지역에는 송전탑만 세우겠다고 한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미래가 있는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운 토건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입주와 가동도 안 되는데, 산업단지도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다. 서울과 그 인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산업폐기물 매립·소각·유해재활용 시설들만 비수도권으로 밀려들고 있다.

‘농’과 비수도권 목소리가 대변되는 정치 필요

그런 속에서 2026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지방선거에서도 농업·농촌의 목소리가 얼마나 대변될 수 있을지, 비수도권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만약 농업·농촌과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자 한다면, 중앙정부나 중앙당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잘못된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서는 비판을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기도 용인에 추진되는 삼성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남, 전북, 충남, 강원, 경북, 충북 등지에 추진되고 있는 34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비수도권을 ‘전력 식민지’로 만드는 이런 잘못된 정책에 대해 반대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비겁한 정치인’이 지역을 위해서 제대로 일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많은 농어촌 지역들이 태양광과 풍력 발전 때문에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환경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게 되는데, 그 전기는 경기도 용인으로 보내야 한다면, 어떻게 지역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유출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도체공장은 수도권에만 들어서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물론 중앙에 대해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촌은 농촌 지역에 맞게, 비수도권 지역은 비수도권 지역에 맞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법제도의 틀 내에서도 지방자치를 혁신하고,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노력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난 7월 7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별관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산업폐기물 정책공약 국정과제 반영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선도적인 지역혁신·지역활성화 정책 필요

그리고 이재명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된 것들은 중앙정부와 마찰없이 선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재명정부가 국정과제로 채택한 ‘주민자치회 본격 실시’나 ‘주민선택 읍·면·동장제’같은 경우에는 지역에서부터 선도적으로 실시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를 확대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그리고 각종 계획 수립 시에 읍·면의 주민자치회가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읍·면별로 자율적으로 용처를 결정할 수 있는 예산을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능한 읍·면에서부터 읍·면장 주민추천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자치의 혁신’을 통해서 지역에서부터 풀뿌리민주주의를 보장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또한 농촌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들어가 있으므로, 그런 정책도 중앙정부와 협력하에 추진할 수 있다. 농촌에 늘어나고 있는 빈집들을 정비하고, 의료·돌봄·식품 등과 관련해서 ‘찾아가는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방침이다. 그렇다면 지역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이런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빈집 정비도 제대로 하려면, 마을과 읍·면에서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읍·면별로 정비추진기구를 만들어서 추진해야 한다. 마을과 읍·면의 실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해야 빈집 정비도 제대로 될 수 있다. 또한 의료와 돌봄도 읍·면별로 계획을 수립해서 추진해야 실효성이 있다.

문제는 정당의 지역조직들과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이런 방향으로 생각을 정립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제시할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지방분권은 행정의 영역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호남은 호남의 목소리를, 영남은 영남의 목소리를, 충청은 충청의 목소리를, 제주와 강원도 그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농촌은 농촌의 목소리를 내고, 비수도권 지역의 중·소도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농’을 대변하는 목소리,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후보자들을 통해서 속 시원하게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