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밀에 조사료까지, 파종 지연 불가피한 농촌
적기 놓친 보리 동해 우려, 밀은 가을 대신 봄파종 할 수도 조사료는 파종 포기 속출…축산업계 수급 불안 우려 확산
[한국농정신문 장수지·한우준 기자]
평년 대비 두 배가량 많은 가을 강우에 벼 수확이 하염없이 늦어지자, 보리·밀은 물론 조사료 파종까지 줄줄이 뒤로 밀려가고 있다. 파종을 아예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아 생산량 감소 우려가 심각한 상태다.
이미 파종을 마쳤어야 할 보리의 경우 10월 말 현재까지 소식이 없는 지경이다. 장재순 군산시농민회장은 “땅이 너무 질어서 주변에 아무도 보리 파종을 못 한 상태다”라며 “11월 10일 이전에는 보리를 넣어야 하는데 비가 또 언제 내릴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 심어도 시기가 너무 늦어버려 동해가 상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 회장은 보리 대신 파종할 수 있는 품목도 여의치 않고 현재로선 어떠한 것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장 회장은 “나락값은 임차료 내고 뭐 하면 남는 게 없다 보니 보리까지 심고 수확해야 먹고 살 수가 있는데, 하늘이 이러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고 밝혔다.
밀 농가의 여건도 여의치 않다. 일부 주산지에선 가을파종을 포기하고 봄파종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인 상황이다. 윤종섭 충남 논산 상월농산 이사는 “벼 대신 논콩을 심었는데 아직도(10월 27일 기준) 수확을 못 했다”라며 “마지노선인 11월 20일까지 작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 되면 봄파종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수확량 감소에 이후 논콩 재배까지 늦어질 우려가 또 있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윤 이사는 이상기후에 대응할 재배여건 개선 대책이 뒤따르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암거 배수로 등 배수 개선 사업 등이 추진되면 최근과 같이 예측 불가한 잦은 강우에도 논이 빨리 말라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윤 이사의 설명이다.
벼를 수확한 농가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동계 사료작물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의 파종도 차질이 우려된다. 최근 농촌에선 벼 수확 전 미리 씨를 뿌리는 ‘입모중 파종’이 대세가 됐는데,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의 입모중 파종 적기는 경기 등 중북부지역의 경우 9월 20일경, 남부지역의 경우 9월 30일경이다.
즉 적기는 이미 지나간 셈인데, 10월 19일까지 이어진 가을비로 인해 파종 자체를 포기한 포장이 적지 않다.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이 재배법은 수확 직후 볏짚 수거, 밑거름 살포, 출수, 진압 등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나 현장에선 벼의 적기 수확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김제 농민 서창배씨는 “전북의 경우 논콩이면 몰라도 벼 심은 곳은 대부분 볏짚을 베어 버려서 어렵다”라며 “땅을 새로 갈아엎으며 어거지로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볏짚이 섞여 있으니 풀씨가 차지할 면적이 적고, 땅도 잘 마르지 않아서 수량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고, 보성 농민 윤인구씨도 “지금 라이그라스 순이 이미 이 정도(한 뼘 크기)는 길었어야 했는데, 질은 땅에서 콤바인이 벼를 베며 짓이겨버릴 게 뻔해 파종도 하지 못했다”라며 “볏짚을 썰어낸 곳들은 로터리를 쳐 파종을 해야 하는데 생육도 문제고 생각지도 않은 추가 비용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정감사장에서 가을장마로 인한 동계조사료 파종 지연 및 조사료 수급 불안을 우려하는 질의에 “필요한 경우 할당관세 물량을 활용하고, 동계 조사료 파종 지원, 농협 계약재배 등의 요구도 살피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