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갈아도 마르지 않는 논, 마늘·양파 농민들 울상
로터리 작업만 반복 또 반복…기약 없이 밀려버린 파종·정식 시기 놓쳐 싹 나는 마늘쪽, ‘생육 불량’ 양파 모 녹아내리기도 날로 불어나는 생산비에 생산량 감소 우려 그 어느 때보다 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수십 년의 농사 경력 내내 겪어본 본 적 없는 가을장마가 농민들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이번 가을장마는 농민들의 농업소득을 뒷받침할 마늘·양파 등 후작 재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월 말, 이미 파종·정식 시기를 놓친 현장 농민들은 마를 기미 없는 논을 거듭해 갈아내며 짙은 한숨만 내쉬었다.
“10월 말 현재 충남 지역 마늘 파종 현황이 10%에도 못 치고 있다. 평년 같으면 파종을 진즉 다 마치고 마늘 싹은 잘 올라왔나, 부직포를 덮을 때가 됐나 쉬엄쉬엄 논밭을 둘러보러 다닐 텐데 지금은 이제나 논이 마를까 저제나 마를까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전수병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충남도지부장의 한탄이다. 전 지부장의 말처럼 지난 28일 방문한 충남 청양군의 논에는 수확 못 한 벼로 가득했다. 더러 수확이 끝난 논에는 트랙터가 정신없이 오가며 바쁜 모습이었다. 오 지부장은 이를 보고 “다들 하염없이 논만 갈고 있다. 흙이 뭉쳐 덩어리지는 데도 비가 또 오면 마늘 농사를 아예 포기해야 할 판이니 급하게 비닐을 씌우는 농가도 보인다”면서 “농기계며 마늘쪽이며, 비료·농약까지 파종할 모든 준비를 다 마쳤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다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가을장마로 인한 마늘 농가 피해는 단순 파종 지연에 그치지 않는다. 농민들은 현재 파종을 기다리면서도, 이미 놓쳐버린 적기와 이상기후 탓에 정상적인 마늘 생산이 불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파종을 위해 분리해둔 마늘쪽에서 싹이 자라난 경우가 부지기수인 데다, 시기가 늦어진 만큼 추운 날씨로 인해 파종 이후 활착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 커서다. 이처럼 파종 이후의 생육에 불안감이 잔뜩 드리운 상태인데, 거듭된 로터리 작업으로 인한 비용 증가와 평년 대비 짧은 기간 파종 작업이 몰릴 수밖에 없는 만큼 불가피한 인건비 상승 우려까지 농가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에 전 지부장은 “평년 대비 45일가량 시기가 늦은 만큼 보험 가입 가능 시기를 11월 말 정도까지 늦출 필요가 있고, 생장 촉진 및 생육 회복을 위한 뿌리 발근제 등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제주·전남 등을 비롯해 경상권 마늘 주산지의 경우 충청지역보다 상황이 다소 나은 듯 보이나, 파종 이후 비가 잦아 싹이 올라오지 않는 등의 피해가 속속들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제주의 경우 적기에 파종을 했음에도 발아가 되질 않아 농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강경택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제주도지부장에 따르면 제주지역 전체 농가의 60%에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강경택 지부장은 “9월 중순 파종 이후 여름과 같은 이상고온과 최근의 이상저온이 발아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생산량과 품질 저하 우려가 크다”며 “특히 발아율이 낮으면 비료 과다로 인한 벌마늘 발생 가능성이 커 농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재 발아가 되질 않아 수입안정보험이나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조차 불가한 만큼 빠른 시일 내 피해 조사와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상해버린 양파 모, 생산 감소 전망
노지에서 모를 키운 뒤 정식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양파 농가의 상황도 좋진 않다. 지난 27일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서 만난 정인한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익산시지회장은 “비가 자주 또 너무 많이 내려 성한 모가 없는 데다 논을 갈아내고 갈아내도 질퍽거려 작업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또 논이 당장 장만된다고 해도 심을 모가 없어 문제다”라며 “모가 제대로 자라질 않아 현재 본답에 정식을 할 수가 없는 상태다. 녹아내린 모가 많다 보니 부족한 만큼 모를 추가로 구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지회장은 덧붙여 “부족한 모종으로 인한 재배면적 감소, 이로 인한 생산량 저하에 평년보다 더 많이 논을 가는 데 소요된 비용 등 부담이 클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진경호 익산시지회 사무국장은 “여산면 양파 재배면적은 140ha로 전국 단일 읍·면 중 가장 많은데, 상황이 심각하다. 일단 모종 피해가 한 30% 정도 될 것 같다”면서 “재배면적 감소가 불가피한 지경인데 그나마 농민들이 육묘할 때 실제 사용량보다 한 10% 정도 더 모를 키우기 때문에 면적 감소량은 20%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식 전까지 비가 안 온다는 가정에서의 수치고 비가 또 온다면 모 피해가 확산돼 재배면적·생산량 감소 폭은 더 커질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