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무능으로 무너지는 친환경농업…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해야”

친환경농업계, 국회서 ‘유령농부’ 보호 촉구 기자회견 열어 농식품부·송미령 장관에게 실효적인 대책 즉각 마련 촉구

2025-10-28     김하림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하림 기자]

한국친환경농업협회·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등 농민·먹거리운동단체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친환경 임차농 보호 및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축산식품부에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한승호 기자
한국친환경농업협회·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등 농민·먹거리운동단체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친환경 임차농 보호 및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축산식품부에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한승호 기자

‘유령농부’가 다시 한번 국회에 섰다. 28일 친환경농업계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친환경 임차농 보호 및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에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같은 날 진행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의 농식품부 및 소관기관에 대한 종합감사를 겨냥한 것으로, 한국친환경농업협회·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한 농민·먹거리운동단체들이 주최했다.

참가자들은 친환경농업을 하는 실경작자임에도 친환경인증도, 임대차계약서도, 직불금도 없는 ‘유령농부’가 존재하는 현실을 짚었다. 임차농은 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 및 세제 감면 혜택을 노리고 직접 농사짓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임차농에게 임대차계약서를 써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농지 투기 사건 이후 강화된 정부의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이 애꿎은 친환경 임차농만 농지에서 내쫓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경영체 등록 명의(지주)와 친환경인증 명의(임차농)가 다른 경우 단속에 걸리기 쉬워, 임차농에게 친환경인증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거나 땅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지주들이 생긴 것이다. 이는 친환경인증을 받으려면 수년간 땅을 가꿔야 하는 친환경농민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농민·먹거리운동단체들은 지난 7월에도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 본청 앞에서 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농식품부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정부는 실효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취지 발언을 맡은 김상기 한국친환경농업협회장은 “친환경농민 중 임차농이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친환경농업 정책이 나온다고 해도 유령처럼 숨어있는 농부들은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친환경 임차농이 실제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면 ‘친환경·유기농업 2배 확대’라는 이재명정부의 국정과제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친환경인증 면적 중 직불금 수령 면적은 46.9%에 그쳤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열린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 및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익명의 친환경 임차농이 유령농부 탈을 쓰고 발언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열린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 및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익명의 친환경 임차농이 유령농부 탈을 쓰고 발언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유령농부 탈을 쓰고 나온 익명의 친환경농민은 정부 기관의 행정 편의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친환경 임차농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지주를 조사하거나 근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친환경인증 농가에 전화를 걸어 농업경영체와 친환경인증 정보를 일치시키라고 압박한다”며 “행정이 쉬운 방향으로만 문제를 처리하는 잘못된 방식은 불법 임대차를 해결하지 못한 채 친환경인증 취소와 경작 포기라는 피해만 낳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행정 무능과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의 ‘무책임·무대책·무관심’으로 친환경농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정부가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을 하루빨리 내놓을 것을 촉구하며 △‘가짜 농부’ 비호하는 현행 단속 즉각 중단 △실경작자 중심으로 농업경영체 등록 제도 개선 △「농지법」 개정으로 친환경농지 임대 활성화 및 임차농 보호장치 마련 △농지실태 전수조사 및 실경작자 보호대책 수립 등을 주문했다.

더불어 참가자들은 농식품부 종합감사에 가기 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회 농해수위 소속 임미애·이원택·김선교 의원에게 1만4000여명의 시민 서명이 담긴 책자를 전달했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지 소유에 관한 문제는 국회 농해수위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서 (관련 법 개정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면서도 “당장 법이 바뀌기 어렵다면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전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또한 “생명을 존중하고 농업을 뒷받침하는 의정 활동으로 친환경농업의 가치가 더욱 확산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친환경 임차농 보호 대책 마련 및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유령농부’들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에게 1만4000여명의 서명이 담긴 책자를 전달했다. 한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