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참빗 만드는 사람들⑧ 거기 대나무가 있어 참빗을 만든다

2025-10-26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향교리 주민들은, 대나무로 엮은 고리짝에 참빗을 담아 꾸려지고서 오일장에 내다 팔았는데, 가장 낭패스러운 상황은 빗길이나 눈길에 넘어져서 참빗을 길바닥에 쏟아버리는 경우였다. 참빗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배어들면 제값을 못 받는다는 것이 고행주씨의 얘기다.

“빗 한가운데에 붙이는 대나무를 등대라고 하는데 아교풀로 붙인단 말예요. 수분에 민감해서 물기가 배어들면 사이가 뜨는 수가 있어요. 빗살에도 물기가 배이면 머리가 매끄럽게 빗기지 않거든요. 그래서 현명한 여인들은 젖은 머리에 빗질을 하진 않지요. 물기를 말린 다음에….”

그런데 참빗 제조업자들로부터 도맷값으로 빗을 받아다가 이 마을 저 고을을 돌아다니며 판매하는 떠돌이 행상들이 따로 있었다. 그들은 참빗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참빗 사시오! 얼레빗도 있어요! 자, 다들 나와서 구경들 하시오! 브로치나 비녀도 팝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빗을 때, 빗살 간격이 얼멍얼멍한 얼레빗으로 몇 번 훑어내려서 대략 가닥을 잡은 다음에 참빗질을 했기 때문에, 떠돌이 장사꾼들은 반드시 참빗과 얼레빗을 함께 갖춰서 행상에 나섰다. 물론 브로치나 비녀 등의 액세서리도 함께 팔았다. 빗장수들 중에는, 제조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흠결이 있는 제품도 수완 좋게 팔아넘기는 상인들도 있었다.

-자, 참빗이 왔습니다, 구경들 하세요!

-여그 참빗 한나 주시오! 아니, 그란디 빗이 어째 조깐 이상하네. 빗살 있는 디로 뭣이 흘러나와서 몰라붙은 것이 영 지저분하구먼.

-어디 봅시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날 뻔했네. 여기 흘러나와서 굳은 이것이 아주 비싼 재료란 말입니다이. 이 빗은 값을 더 받어야 돼요. 딴 놈으로 갖고 가시오.

-에이, 그라면 기냥 그놈으로 주씨요.

“사실은 마무리가 잘 안 된 불량제품이지요. 나는 신용이 걸린 문제니까 그런 흠결 있는 빗을 발견하면 즉시 폐기처분을 했거든요. 그런데 옛 시절에 빗을 만들고 있으면, 끼니 잇기가 힘든 불쌍한 노인들이 가끔 찾아와서, 혹시 빗 만들다가 ‘파(破) 난 것’ 있으면 몇 개라도 얻어 갈 수 있느냐고…. 참 안 돼 보여서, 나는 아예 멀쩡한 빗을 한두 개 그냥 준 적은 있어도, 하자 있는 물건을 준 적은 없어요. 하지만 신용 지키는 것도 좋지만 기왕 버릴 것이라면, 불쌍한 노인한테 주어서 국수 한 그릇이라도 사 먹게 한다면 그걸 나쁘다 할 수는 없겠지요.”

원래 참빗은 여자들이 머리를 쪽지어서 비녀를 꼽기 전에 가지런히 빗기 위해서 구입하는 생활 도구였다. 또한, 대갓집 아낙들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를 때, 참빗에다 기름을 묻혀 빗어 내리면 속까지 고루 바를 수가 있었다. 애당초에는 그런 용도로 사용됐는데, 언제부턴가 참빗은 머리에 생긴 이를 잡고 서캐를 훑어내리는 도구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참빗 만드는 재주라면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는 참빗 장인(匠人) 고행주씨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단지 이를 잡기 위해서 구입하겠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고 토로한다.

“내가 아부지한테서 처음 빗 만드는 기술을 배울 때만 해도 빗으로 머릿니를 잡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삼단 같은 머리를 동백기름 발라서 곱게 빗어 내린다’…얼마나 듣기에 좋아요. 그런데 빗질을 하다 보니까 빗살에 이도 걸려 나오고 서캐도 훑어져 나오네? 사람들이 새로운 용도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참빗이 이 잡는 도구로…허허허.”

1960년대 초반, 파마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참빗 수요는, 이후 질 좋은 비누와 샴푸의 보급으로 머리에서 이나 서캐가 사라지면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향교리 주민들도 저마다 다른 생계 방편을 찾아 나섰다. 단 한 사람 고행주씨만이, 그 참빗 마을의 ‘좋은 빗장이’였던 고씨 집안의 가업을 잇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2002년 2월이니까 일흔이 낼모레네요. 생각해보면 빗살 하나하나 다듬고 엮어온 세월이 모이고 쌓여서 내 인생이 되었네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너는 무엇을 남겼느냐, 하고 묻는다면…뭐 내놓을 게 없어요. 예나 이제나 담양에는 대나무가 많으니까 나는 오늘도 참빗을 만드는 것이고….”

고행주씨의 눈가에 살짝 물기가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