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음으로 지켜가는 곳, 청안향교와 청안사마소

2025-10-26     이영규 괴산 목도사진관 대표
전국에 딱 세 곳 밖에 안 남았다는 사마소 중 한 곳인 청안사마소(앞쪽 흰 건물). 본래 진사, 생원이 모여 마을 교육과 회의를 하던 곳인데 지금은 그 기능이 없다. 단지 그때 그 진사 생원 68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마사라는 공간을 사마소 위쪽에 새로 짓고 제사만 지내고 있다.
사마소 뒷마당에 감이 익어가고, 담장 너머로 향교 계단이 보인다.
청안향교 첫 번째 문인 외삼문에 서서 바라본 명륜당. 후학양성의 공간이다.
앞뒤로 난 들창을 통해 바람이 드나드는 명륜당 마루에 앉아 있으니,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충북 괴산에 살면서 오랜 시간이 쌓여있는 소박한 문화재들을 생각보다 많이, 자주 만나게 된다. 뜬금없는 곳에 천연덕스럽게 서 있는 석상들이 그렇고, 높은 산 위에 오도카니 서 있는 정자들이 그렇고, 오래된 건축물들 또한 그렇다. 안타까운 것은 길가의 석상이나 산 위의 정자 같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은 잘 관리되지 않아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새똥에 나무가 썩고 안쓰러운 모습을 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오래된 사적 가옥들도 마찬가지다.

괴산에는 세 곳의 향교와 한 곳의 사마소가 있는데, 이곳은 형편이 좀 다르다. 조선 시대 전국에 설치된 관학 교육 기관인 향교와 사마소는 문중 소유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 손이 가고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근래에는 유교 문화를 재현하는 프로그램과 어린이를 위한 학당을 운영하면서 공간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내가 청안향교와 사마소에 방문한 날은 공자와 성현들의 제사를 올리는 석전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석전은 전국에 있는 향교에서 동시에 올리는 제사인데, 그만큼 향교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라고 할 것이다. 대성전에 마을의 어르신들이 모였다. 제례복을 갖춰 입고 순서에 따라 제례식을 진행했다. 무엇인가를 지켜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사상에는 익힌 것이 올라가면 안 되며, 공자 양옆에는 4성이, 좌우 벽면에는 현이 있고, 제례 순서는 어떻게 되며…. 이런 모든 것이 이제는 배우고 익혀야 이어질 수 있는 문화이다.

향교는 앞쪽에 후학을 가르치던 교육장인 명륜당이 있고, 뒤편 가장 높은 곳에 제사를 모시는 대성전이 있다. 모든 향교가 동일하다. 이제는 1년에 몇 번, 제사를 지내는 목적으로 대성전만 열릴 뿐, 명륜당은 제사에 쓰이는 물건을 보관하는 정도의 공간으로만 살아 있다.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사방으로 바람이 통하는 창을 가진 명륜당 마루에 앉아서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잠겨 있어서 일없이 이곳을 방문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예수님, 부처님의 위로가 아니라 바람의 위로를 받고 싶은 누구라도 이곳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마소 뒷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이 익어가고 담장 너머로 향교 계단이 보인다. 참으로 조용하고 너그러운 오후였다.

석전 행사가 있는 날. 제사를모시는 대성전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써 붙이고 제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청안향교에서 석전 행사가 있던 날, 제례복을 갖춰 입고 술을 올릴 분들이 차례대로 의식을 치를 준비를 마쳤다.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고 제문을 읽는다. 옛 성현님들, 듣고 계신가요?
제사는 하나하나가 정성이다.
이영규 괴산 목도사진관 대표

 

이영규 괴산 목도사진관 대표

오랫동안 출판일을 하면서 사진 작업을 하다, 지금은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문화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괴산의 청년농부들을 만나면서 <청년농부>라는 첫 책을 냈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보면서 사람과 풍경을 함께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