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는 작물 피해 “기후재난 근본대책 수립해야”

수확 불가 수준의 ‘벼’·싹 나고 곰팡이 피는 ‘논콩’·갈라지고 터져버린 ‘사과’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기자회견 열고 보여주기식 점검·탁상행정 규탄 기후위기 대응 상설 협의기구 설치, 농업재해대책법 수정·보완 등 촉구

2025-10-22     장수지 기자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가을장마·기후재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대표들이 올가을 장마로 인한 농업 재해를 특별재난으로 인정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깨씨무늬병과 수발아로 수확이 불가한 수준의 벼, 싹 나고 곰팡이 피는 논콩, 수확을 앞두고 갈라지고 터지는 사과, 무름병으로 썩어 문드러진 배추와 브로콜리, 논이 마르지 않아 심지 못해 썩어가는 마늘종자와 양파모종까지, 기후재난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다. 이에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농민의길)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재난 근본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권혁주 전농 사무총장은 “최근 10년 간 9~11월 가을철 전국 평균 강수일수는 24.7일, 강수량은 311.4mm인데 반해 올해는 10월이 채 가기도 전 평균 강수일수 25.5일, 강수량 374.6mm를 기록했다. 예상치 못한 가을장마와 병충해 확산이 겹쳐 수확할 수 있는 농산물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권 사무총장은 오늘날의 기후재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민주권정부라는 이재명정부와 송미령 장관의 농식품부는 여전히 보여주기식 점검, 탁상행정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기자회견 추진 경위를 밝혔다.

이후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스마트팜과 인공지능(AI)에 억만금을 투자해도 결국 농사는 하늘과 같이 짓는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최악의 날씨가 거듭되는 올 한해 알탕갈탕 농사지어온 농민들에게 최근 날강도 같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수입 압력이 콩을 겨냥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농민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불안에 살고 있다”며 “농민에게 기후재난은 생존의 위기지만, 미흡한 정부 대책은 긴급복구비 몇십만원에 그치고 보험 또한 보장 품목·재해가 한정돼 기후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 농업을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에 세우는 국가정책이 시급하며, 기후재난 속에서도 농민이 농사를 지속할 수 있게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피해 농가를 대신한 현장 발언도 잇따랐다. 남종우 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장은 지난해에도 가을장마로 양파·마늘 파종·정식이 늦어진 탓에 작황 부진 등 농가 피해가 컸다며, 반복되는 기후재난에 농민 피해를 보상할 특단의 대책을 정부가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성훈 전국사과생산자협회 회장은 “2주 간 지속된 유례없는 가을장마에 사과가 다시 새파래질 뿐만 아니라 비가 계속 내려 물을 머금은 사과가 쩍쩍 갈라지고 반으로 쪼개지기까지 한다”면서 “올해 사과 농사는 재난 수준이다. 직접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하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농작물재해보험 제도 또한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훈 회장은 특히 보험 보장범위가 좁고, 보험 보상액이 실제 피해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오히려 보험이 농민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며 보장범위와 기준가격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장맛비에 잠겼다. 현장을 모르는 농정, 통계로만 보는 농정, 사진 찍기용 방문으로 끝나는 농정에 농민들은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끼고 있다”며 △가을장마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피해실태 긴급 조사를 통해 재해복구비를 즉시 지급할 것 △피해 농가에 대한 특별재난지원금을 전액 국가 책임으로 지급할 것 △기후위기 대응 농업정책 상설 협의기구를 구성해 근본대책을 마련할 것 △농업재해대책법 수정·보완으로 이상기후 피해를 상시 보장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 △보장범위 확대 등 농작물재해보험을 전면 개편할 것 등을 촉구했다.

한편 정부가 밀어붙인 확대 정책에 기후재난까지 겹쳐 논콩 재배 농가의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최근 진행 중인 한미 관세협상에서 미국산 콩 수입 확대가 거론되고 있다. 이에 기후재난 피해도 모자라 지난 수십년 동안 농민 희생을 강요한 무역협상이 또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며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에 참여 중인 농민들은 기자회견 이후 광화문 앞 ‘대미투자 전면 재검토! NO TRUMP 범국민 시국농성’에 합류했다.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가을장마·기후재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대표들이 올가을 장마로 인한 농업 재해를 특별재난으로 인정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가을장마·기후재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대표들이 올가을 장마로 인한 농업 재해를 특별재난으로 인정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