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농촌에서 도시로 간 중국의 민간 ‘축구열’
팬데믹 이후 중국에 대한 보도가 부정적인 뉴스 일변도였던 영국 BBC는 작년에 이례적으로 흥겨운 축구 소식을 전했다. 중국에서도 빈한한 산간오지로 알려진 구이저우성의 롱장현에서 벌어지는 춘차오(村超,마을 슈퍼리그)를 특집으로 삼은 것이다.
2023년부터 현내 8개 마을의 ‘조기축구회’ 대항전으로 출발한 이 대회가 지역민들의 참여열에 힘입어 중국 전역에 큰 화제가 됐고, 제3회를 맞은 올해에는 116개 마을 팀이 참가하고 있다.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부상은 황소 한 마리다. 매 경기마다 수만명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대회는 먹거리와 문화행사 등이 함께하는 지역축제로 승격됐는데, 이 지역은 소수민족인 동족과 묘족의 자치구로서 문화생태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회 기간 중 수십만명의 연인원을 모을 정도로 인기를 끈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관광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지역민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
선수들은 모두 농민, 자영업자, 학생과 교사 등 평범한 지역민들이고, 정부나 거대자본의 개입 없이 풀뿌리 역량으로 조직된 행사였다. 다만 예상 밖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안전보장과 질서유지를 위해, 지역 정부는 간섭 대신 필요한 지원만을 제공하고 있다.
춘차오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덕인지, 2024년부터 대륙의 정반대 쪽에 위치한 장쑤성 축구협회가 쑤차오라 불리는 아마추어 축구 대회를 조직했다. 장쑤성은 중국 내에서도 경제와 문화가 가장 발전한 곳이긴 하지만 파리 날릴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달리 또 ‘대박’이 났다. 소수의 2~3부 프로출신 선수를 제외하고는 역시 아마추어 경기인데도 지역민들이 열광했다. 지역 간 축구와 문화대항전 성격을 띠면서 역시 성내 관광 붐이 일었다. 프로축구 경기의 10분의 1 가격도 안 되는 2000원짜리 티켓이 일찌감치 동이 나 암표가 수십 배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거대한 프로리그를 거느린 중국축구협회가 쑤차오에 질투를 느껴서 투덜거리고 있지만, 국민의 축구 열기 고조에 관심이 많고 내수 진작을 위한 지역 문화관광산업 진흥에도 목마른 중국 정부는 싱글벙글이다. 관영 CCTV의 스포츠 채널은 ‘마을리그연맹’이라는 프로젝트를 조직해서 춘차오와 쑤차오를 비롯한 몇몇 지역 아마추어 대항전을 인터넷으로 상시 중계하고 있다.
춘차오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소수민족인 동족 출신인데, 중일전쟁 중 이곳으로 피신왔던 대학생들이 축구를 전파한 1940년대 이래, 1980~1990년대부터 청소년을 포함한 지역민들의 축구 열기가 고조됐다고 한다. 지방정부가 중심이 돼 성사시킨 쑤차오는 중국 도시민들의 축구열을 반영하지만, 중국인들은 실제 선수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직업선수들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더 즐긴다. 그래서 유럽축구를 좋아하고, 중국프로축구도 인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도박과 관련한 경기조작 등의 추문이 빈번하고 국내리그의 고액연봉으로 배부른 대표 선수들이 매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해서, 축구팬을 포함한 중국인들 대부분을 실망시킨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축구의 세계무대 부진은 세계적 미스터리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축구 선진국이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 불리는 유소년 축구 인재 육성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이상, 중국축구가 갑자기 세계무대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의 풀뿌리 축구 열기나 도시민들의 지역 축구 사랑이 필요조건을 만족시킨 후에는, 경제력 상승과 함께 월드컵 본선 진출의 그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