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농자재지원법, 기대해도 될까
‘공급망 위험’ 없으면 농자재 폭등해도 발동 어려워 지자체 필수농자재지원조례보다 보수적 면모 뚜렷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민들의 요구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농정공약인 ‘필수농자재지원법’ 제정 논의가 국회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법안의 내용이 농민들의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감지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국회에 발의돼 있던 6건의 필수농자재지원법을 「공급망 위험 대응을 위한 필수농자재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으로 정리해 지난달 30일 의결했다. 사실상 법안의 내용을 구성하는 작업이 끝난 것이다.
필수농자재지원법은 2020년 이후의 심각한 농자잿값 폭등으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마련한 ‘필수농자재지원조례’를 국가 단위로 끌어올린 법안이다. 다만 이번에 의결된 법안을 보면, 단순히 지자체 조례의 내용이 국가 정책으로 법제화되리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지자체 조례들은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직전 3개년 농자재 평균 가격 대비 당해 인상분의 50%를 농업인에게 현금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농해수위의 법안엔 다소 모호한 요소들이 있다.
핵심은 법안의 명칭(「공급망 위험 대응을 위한 필수농자재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있다. 농해수위는 법안을 정리하면서 ‘공급망 위험 대응을 위한’이라는, 전에 없었던 표현을 만들어 법안 명칭과 조문에 삽입했다. 단지 농자잿값이 폭등했을 때가 아니라, ‘공급망 위험으로 인해’ 폭등해야만 법안을 발동시키겠다는 의도다.
농민들에겐 낯선 그림이 아니다. FTA피해보전직불제의 ‘수입기여도’가 바로 이런 제도다. FTA 체결 이후의 농산물 가격하락분 중 ‘FTA 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 증가로 인한’ 하락분만을 보상하겠다는 건데, 얼핏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를 예산 절감에 과도하게 이용하면서 직불제의 실효성을 무너뜨린 바 있다.
‘공급망 위험’ 역시 해석하기에 따라선 전쟁·팬데믹 등 이례적인 경우에 국한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설령 ‘공급망 위험’이 인정돼 정책이 발동된다 해도 무조건 현금 지원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정 기준 미만의 가격 인상은 할당관세나 업체 금융지원 등 간접적 조치로 대응하고 일정 기준 이상의 폭등이 일어나야만 현금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제도 발동 기준과 지원 기준 등은 모두 시행령과 농식품부 내 심의위원회에서 정한다. 농식품부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게 되는 건데, FTA직불제의 전례로 볼 때 결국 농민들의 기대에 미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5일 농해수위 법안소위에서 이원택 소위원장과 강형석 농식품부 차관이 합리적 정책 집행을 자신했지만, 토의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정책 발동 주기를 ‘5년에 한 번’으로 전망하는가 하면 강 차관은 “환율이나 인건비 때문에 오른 농자잿값까지 지원해줄 순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오히려 우려를 키웠다.
이날 몇몇 의원들은 “농민들의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 놓고 정작 지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까봐 우려스럽다. 재해·재난 상황의 지원은 법이 없어도 예비비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문금주)”,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공급망 위험 때문에 발의한 게 아니다(김선교)”, “취지에 맞지 않다. 생산비 부담을 완화시켜 농가의 소득 보장을 해 주자는 취지로 법안이 발의된 것(전종덕)”이라며 이의를 표했지만, 결국 “정부가 실효성 있는 시행령안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로 논의는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