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멸구 악몽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벼 깨씨무늬병'

수확기 덮친 벼 깨씨무늬병, 기후 농업재해 대책 시급 “올해는 또 무슨 병이…” 농민들 최대 애로 ‘기후재해’ 농식품부, 1일부터 피해양상, 기상 관련성 등 정밀조사

2025-10-01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달 29일 벼 깨씨무늬병이 발생한 전남 강진군 강진읍 일원에 있는 논의 색깔이 사진 왼쪽 끝에 보이는 정상 논의 색과 차이가 뚜렷하다. 
지난달 29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일원에 있는 논의 벼가 벼 깨씨무늬병으로 잎이 하얗게 말라버렸다. 
지난달 29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일원에 있는 논의 벼가 벼 깨씨무늬병으로 붉은 갈색을 띄고 있다. 

“못자리할 때부터 걱정이 시작된다. ‘올해는 무슨 병이 와서 망할런가’하고. 농사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늘 고민이다.” 지난달 29일 전남 장흥군 평장리 일원에서 황금색이 아닌 붉은 갈색으로 뒤덮인 논을 바라보며 농민 김윤환씨가 한숨을 내뱉었다.

이날 만난 장흥 농민들에 따르면, 벼에 깨씨무늬병이 찾아온 건 8월쯤이었다. 평년이라면 논 가장자리 일부에서 조금씩 나타나는데, 올해는 양상이 달랐다. 약 20일 만에 논 전체로 퍼진 데다 일부 논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 전체적으로 발생했다. 붉은 갈색 병반이 점점이 나타나다가 급기야 잎 전체가 지푸라기처럼 말라버렸다. 농민들은 수확기의 기대감은커녕 피해 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상태였다.

김성용 장흥군농민회장은 “깨씨무늬병이 이렇게 전체적으로 확산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지금으로선 조속한 원인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대책 마련도 가능하지 않겠나”라며 “수확기가 코앞이라 이젠 농민들이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8월까진 3번씩 방제하며 어떻게든 호전해 보려고 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도 의미가 없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벼 깨씨무늬병은 현재 전남 강진·고흥·보성·장흥·화순 등을 중심으로 피해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역대급 벼멸구 피해가 강타했던 만큼 현장 농민들은 이번엔 피해가 얼마나 될지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을 전했다.

기자와 만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 비 오는 틈을 타 강진·장흥·보성·영암·고흥 5개 지역을 돌아봤다는 김윤환 농민은 “상태가 매우 심했다. 장흥은 부산면, 관산읍, 안양면이 심하고 평장리는 그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라며 “내년에 또 이러지 말란 법이 없다.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농민들도 어떻게든 살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상기후로 병충해 양상이 점차 심화하는 만큼 관련한 농업대책을 근본부터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올해 여름 밤낮없이 지속된 고온이 원인이라고 본다. 행정은 사질토나 노후답, 농민의 관리부실로 많이 발생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정확한 원인을 밝히라는 것도 우리 농민들 요구다. 앞으로 이상기후는 되풀이될 것이고 그게 지금 현장에서 우리가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피해 지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재해에 대한 특별예산 등 대책을 마련해서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성용 장흥군농민회장의 말이다.

근본 대책과 함께 당장의 피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농민들은 큰 걱정이다. 피해를 본 벼는 수량 감소뿐만 아니라 미질이 많이 떨어지고, 탈곡 시 깨지는 등 상품성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상 나락보다 수매가 차이가 크게 나더라도 수매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매가 안 된다면 농가별로 피해곡을 처리할 방도가 없다. 임차농은 임대인에게 농지 임차료를 쌀로 주는 관행도 상당수 남아있어 농가 피해는 더 커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피해 농가들은 원인 규명, 피해 지원 방안과 함께 피해 벼에 대한 수매 대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현재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추석 이후 본격적으로 수확해야 하는 시점인데 농업재해 인정이 언제 될지 알 수 없어서다. 수확해 버리면 추후 지원책이 마련되더라도 피해 입증이 어려운 농가가 생겨날 수 있다. 이에 김성용 회장은 “늦게라도 지원책이 발표될 수 있으니 피해가 있다면 입증을 위해 나락을 베기 전 반드시 벼 보험(농작물재해보험)에 신고해야 한다”라고 농가에 당부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는 1일부터 ‘벼 깨씨무늬병 피해 현황과 발생원인 분석을 위한 정밀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농촌진흥청(청장 이승돈)과 함께 많이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 여부, 방제 상황 등을 점검한다. 아울러 기온과 강수 등 기상여건과 토양성분 등 발병원인 분석에 필요한 정밀조사에 나선다.

농식품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10월 중 농업재해 인정 및 복구비 지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최근 10년간 벼 깨씨무늬병 발생 규모는 연평균 1만6000ha이며, 지난달 16일 기준, 전국 2만9700ha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역별 피해면적은 전남 1만3300ha, 충남 7000ha, 경북 4700ha, 전북 1200h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