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참빗 만드는 사람들⑤ 빗, 재우고 꾸미고 긁고 얼 잡고…

2025-09-28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염색과정이 끝난 빗살을 햇볕에 말린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등대 붙이기’ 작업이다. 등대란 참빗의 한가운데에 붙이는 대나무다. 보통은 참빗 만드는 빗장이가 가느다란 댓가지 끝에 청강수(염산)를 묻혀서 그림을 그린 다음, 화롯불을 쏘이면 염산이 타면서 문양이 새겨진다. 하지만 등대의 문양을 좀 더 고급스럽게 새기려면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행주야, 쩌어그 아랫말에 가서 등대 겨 놓은 것 조깐 찾어오니라.

-아랫말 누구네 집 말이오?

-아, 그 낙죽장 영감 몰라? 시방 등대가 없어서 일을 못허고 있다고, 우선 다된 놈만이래도 달라고 해서 갖고 와.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서 무늬나 그림을 그려 넣는 기술자를 낙죽장(烙竹匠)이라 부른다. 참빗 만드는 사람들은 그 낙죽장에게 별도의 수공비를 지불하고 등대의 문양을 그려 받았다. 참빗 한 개 크기의 대나무를 토막토막 잘라서 맡기는 게 아니라, 등댓감으로 다듬은 사오십 센티미터 길이의 대나무를 여럿 건네주면, 낙죽장들은 참빗 규격에 맞게 일정한 간격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새긴다. 빗장이가 참빗에 등대를 붙일 때 하나씩 잘라서 쓰면 되는 것이다.

참빗 살에 아교로 등대를 붙인 다음에는 ‘빗 재우기’에 들어간다. 참빗을 방안에 모셔 재우는 과정이다. 물론 아교로 붙여놓은 등대가 빗살에 단단히 붙게 하기 위한 공정이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서 온돌방의 구들을 뜨겁게 달군 다음, 참빗을 방바닥에 놓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재우는 것이다. 참빗이 이불을 덮고 뜨거운 온돌방에서 주무시는 시간이 줄잡아 10여 시간. 그러나 중간에 수시로 등대의 접착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제대로 말랐는지 시험을 해봐야지요. 빗 두 개를 집어 들고서 등대끼리 부딪쳐 봐요. 부딪쳤을 때 나는 소리를 들어보면 건조 상태를 알 수 있어요. 등대가 완전히 잘 마른 경우엔 땅글 땅글…그런 소리가 나요. 그러면 이제 이불 속에서 꺼내지요.”

땅글 땅글…다른 사람들은 감을 잡기 어려운, 역시 빗장이들의 언어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러하듯, 참빗 만드는 일도 그 복잡한 과정 중에서 자칫 실수를 하는 날이면 애써 기울인 노력과 정성이 허사가 되는 수가 있다.

밖에 나가 있던 고 영감이 후다닥 방문을 열고 뛰쳐 들어와서는 이불을 들춘다.

-이거 큰일 났네. 빗을 온돌방에 너무 오래 재운 것 아닌가? 에이, 이런 망할….

“아교로 등대를 붙여서 온돌방에다 일정 시간을 재운 다음에 빗 두 개를 꺼내 부딪쳐보면 땅글 땅글 맑은 소리가 나야 하는데,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소리도 탁할뿐더러 심한 경우 등대가 떠버려요. 등대하고 빗이 분리돼 버린다니까요. 열을 과하게 받아서…. 맥이 빠지지요.”

그런 경우 뒤처리는 아주 간단하다. 그 참빗들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해야 한다.

‘빗 재우기’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번엔 ‘빗 꾸미기’에 들어간다. 애당초에 빗살의 세 군데를 실로 엮는다고 했는데, 가운데 엮은 부분은 등대 속으로 들어갔고, 등대 양편에 있는 나머지 두 군데의 실은 풀어내야 한다.

이어서 ‘빗 긁기’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쇠칼로 빗의 모난 부분들을 매끈하게 깎아내는 작업이다. 이제 마지막 손질이 남았다.

“빗살의 간격이 너무 떨어진 경우도 있고 아니면 빗살 즈그들끼리 서로 딱 붙어있는 놈들도 있어요. 그 간격을 일정하게 맹그는 작업이지요. 그것을 ‘얼 잡는다’라고 해요. 얼을 잡은 뒤에는 마지막으로 참지름으로 ‘지름 닦기’를 해요.”

빗살 간격을 고르게 하는 ‘얼 잡기’를 하고, 그다음에 참빗의 살이 윤이 나도록 참기름을 발라 닦는 ‘지름(기름) 닦기’를 하는데 그 ‘지름 닦기’가 마지막 공정이다.

설명을 다 듣고 드는 생각은 참빗 만드는 과정 과정을 일컫는, 빗장이들끼리 통하는 그 호칭들을 외부인이 알아 새기려면, 참빗의 제조 공정을 설명하는 사전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얼핏 보기에는 참빗 그거, 그저 대나무를 잘게 쪼개서 엮어놓으면 될 것 같은데…이처럼 복잡하고도 힘든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