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 피해지에 ‘개발’ 바람 분다
산불 피해지원 특별법, 주민 지원보다 개발에 무게 “투기조장 난개발법” 비판도…심란한 피해 주민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올봄 영남지역을 휩쓸고 간 초대형 산불. 그 수습을 지원할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법안의 상당부분이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피해 주민과 시민사회의 불만·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기본은 물론 피해 주민 지원이다. 주민의 신체적·정신적·재산상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지자체의 역할을 의무화하고 국무총리실에 사업을 심의·점검할 위원회를 설치한다. 지원의 형태는 법정 정책사업 우선 지원, 지방소멸대응기금 우선 배분, 공동체 회복 지원, 임시거주시설 설치 지원, 개인 채무 부담 완화, 심리상담·의료지원 등 다양하다.
산업부문 지원도 종류별로 열거돼 있는데, 농림수산업의 경우 시설·장비·작물 피해의 지원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놓은 탓에 향후 하위법령 구성이 관건이다. 다만 「농어업재해대책법」의 재해복구비보다 지원 대상·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했다. 임업인은 산림경영계획서 작성비 지원, 임산물생산단지 사업 우선 선정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게중심은 피해 주민보다 ‘개발’에 있다. 스마트팜·태양광 보급이나 산림경영특구 지정(산림 이용 증진) 등 비교적 가벼운 내용들을 포함해, 보전산지해제·산지전용·산지일시사용 등의 허가권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하고 관광단지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등 문제의 소지가 큰 조항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불 폐기물 처리, 위험목 제거 등 논란이 많은 각종 산림사업을 보다 용이케 하는 조항도 여럿이다.
백미는 법안 전체 분량 중 절반이나 할애해 놓은 ‘산림투자선도지구(선도지구)’다. 소정의 조건을 갖춘 지역을 선도지구로 지정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건데, 결국 피해 산림을 개발하기 위한 정책이다. 선도지구로 지정되면 개발사업에 필요한 각종 기본계획 수립·변경을 협의로 갈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 각 부처가 관장하는 건축·토지·도로·환경·농업 관련 수십가지 인허가 및 규제사항 또한 갈음할 수 있다. 심지어 선도지구 지정·변경을 심의하는 기구(심의회)도 중앙정부가 아닌 광역자치단체 소속이다.
재해 직후부터 국회의원·도지사 등 영남지역 기반 정치인들은 피해지역에 관광·레저·편의시설 등을 유치하려는 의중을 노골적으로 내비쳐 왔다. 이는 법안을 설계한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 특별위원회(산불특위)에도 고스란히 투영됐고, 결국 각계의 우려를 억누르고 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홍석환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는 이 법안을 “모든 법률을 무력화하면서 민간에 부동산투기를 조장하는 난개발법”이라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 개발을 못 했던 큰 산을 갖고 있는 산주들을 위한 법이고, 그 안에 주민들은 없다. 피해 주민의 삶에 대한 고민은 적고 대도시 사람들 놀이터 만들어주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쓴소리했다.
피해 주민들은 염원했던 ‘피해실태 재조사’가 특별법에 명확히 들어가지 못한 데 크게 낙심하는 분위기다. 문헌준 의성군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정책부장은 “주민 고령화와 행정 미흡으로 피해 접수 누락이 많아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는데, 조사에 ‘피해자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는 조항만 들어갔다. 청취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고 공청회 한번 하고 끝내도 되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개발 관련 조항에 대해 “피해 주민들에게 주는 지원은 1000만~2000만원도 벌벌 떨면서 개발사업엔 몇십 몇백억원을 투입할 거다. 이렇게 법에 근거를 만들어 놓으면 분명 난개발로 가게 된다. 이런 건 주민들이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해당 특별법안은 이르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본회의 통과 이후엔 정부가 공포하는 즉시 시행되며 준비기간이 필요한 일부 조항은 공포 3개월 뒤부터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