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참빗 만드는 사람들③ 참빗은 왜 부채보다 비싼가

2025-09-14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행주야, 잘 봐둬라. 참빗을 맹글 때에는 3~4년생 대나무를 골라야 하는 벱이여.

-아부지, 쩌그 있는 대나무가 색깔도 더 파랗고 좋아뵈는디….

-쯧쯧쯧. 우리가 참빗 맹글 대나무 구하러 왔제, 김삿갓 지팽이 맹글 나무 구하러 온 것인 줄 아냐. 여그 봐라. 요렇게 새파란 놈 보담은 살짝 흰빛을 띠는 놈이 좋은 놈이여. 그라고, 마디하고 마디 사이는 길수록 좋은 것이고. 알것냐? 어이, 지게꾼!

해방되기 전 어느 봄날, 여남은 살 아들과 함께 담양 죽물 시장에 나가 참빗 만들 대나무 원목을 구입한 고행주의 아버지가, 그 대나무 다발을 향교리 집까지 져다 줄 지게꾼을 부른다.

“대나무 다발만 전문으로 져 날라 주는 지게꾼들이 따로 있었어요. 대나무 한 속(束)이면 길이가 30여미터나 되는 대나무 열 개를 묶은 다발이니까 무거운 건 둘째 치고, 앞으로 갔다 옆으로 갔다 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얼마 못 가서 자빠져 버리지요.”

지게에 짊어진 대나무 다발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휘청거려서 중심 잡기가 어려울뿐더러, 도로 주변이 개활지 같으면야 앞으로 걸어 나가면 되지만, 길가에 가로수가 있거나 좁은 골목을 만나면 옆으로 게걸음을 해야만 했다.

마당에다 대나무 다발을 풀어놓은 아버지가 이번에는 아들 보는 앞에서 선별작업을 한다.

-아부지, 암만 봐도 다 똑같이 생긴 대나문디…뭣을 어치게 골르라고 그라요?

-여그 봐라. 요런 놈은 3년생 대나무고, 또 요런 놈은 4년생이여. 따로따로 나누란 말여.

-어차피 다 쪼개서 참빗 맹글 것인디 뭣 할라고….

-쯧쯧, 3학년 하고 4학년을 한 교실에 집어여 놓으면 공부가 제대로 되겄냐?

3년생 대나무와 4년생 대나무는 나무의 강도나 재질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참빗에, 나이가 다른 두 종류의 대나무가 섞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류작업이 끝나면 톱으로 마디마디를 절단하는데, 같은 대나무에서도 맨 아래쪽 마디는 미죽(嵋竹)이라 하고 조금 위쪽은 중미죽, 가운데 부분은 중통, 그리고 대나무의 맨 위쪽 부분은 끝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빗을 만들 때는 미죽을 쪼갠 빗살과 끝죽을 쪼갠 빗살이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주의사항이다. 나무의 강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바구니를 만들거나 대나무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참빗 만드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대목이 있다. 대형 죽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겨울날에도 바깥에다 펼쳐놓고 작업을 해야 하는 데 반하여, 참빗은 대나무 토막을 방안으로 들고 들어가 앉아서 일을 한다는 점이다.

-자, 인자부터 아부지가 빗을 어치케 맹그는지 차근차근 갈쳐줄 것잉께, 잘 보고 배와 둬라. 요렇게 마디마디 짤라놓은 대나무 토막을 ‘대통’이라 하고, 이 칼을 ‘제작칼’이라고 부르는디, 젤 몬침 이 칼로 대나무를 두 조각으로 쪼갰다가 다시 그놈을 반으로, 또 반으로….

잘게 쪼개나가다가 너비가 1cm쯤에 이르면 일단 멈추고 ‘배 뜨는 작업’을 해야 한다. “대나무 겉껍데기에서 속대를 떼어 내는 작업입니다. 빗을 만들 때는 단단한 겉껍질만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분리해낸 속대는 그냥 버리느냐고요? 아니죠. 이웃 마을에는 옹기종기 모여서 합죽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다 돈을 받고 팔아요.”

그러니까 대나무를 잘게 쪼개나가다가 1cm쯤에서 멈춘 것은, 더 미세하게 쪼개버리면 부챗살로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 공정은 속대를 분리해낸 댓가지를 최종적인 빗살 크기로 더 잘게 쪼개는 일인데, 고행주씨는 그것을 ‘대 때리는 작업’이라 말한다. 실제 참빗 살의 크기로 쪼갰으면, 이젠 다듬어야 한다. 그 또한 고유하게 부르는 호칭이 있다. ‘조름 썰기’다. 나무 작업 판에 V자 모양으로 조름칼을 끼우고, 그 V자 홈에다 댓가지를 넣었다 당김으로써 빗살을 매끈하게 다듬어 뽑는 공정이다. 그다음엔 ‘피죽 훑기’인데 대나무의 겉껍질을 살짝 벗겨내는 작업이다. 이어서 참빗의 너비에 맞춰서 대나무의 살을 절단하면 일단 준비 작업은 끝난다.

자, 이제 참빗 만드는 데에 쓰일 빗살이 최종적으로 완성돼 나왔는데 다음 할 일은? ‘빗 매기’이다. 빗살을 실로 엮는 작업이다. 그리고 또, 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