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가뭄에 농작물 타들어 가도 하소연할 데 없어"
농민들, 강릉시청 앞서 가뭄 피해 대책 촉구 회견 가뭄에 농사 포기 속출, 강릉 농민 생계 대책 절실 “작물 피해 전수조사 및 긴급 생계 지원 마련하라”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최악의 가뭄 사태로 작물이 타들어 가는 상황을 보다 못한 강릉시 농민들이 농업 피해 전수조사와 긴급 생계 지원 대책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의장 오용석)과 강릉시농민회(준)(회장 김봉래)가 9일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농민들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농민에게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 △농업 피해현황 전수조사 실시 등 식수난을 포함한 농업 피해에 적극 대처해 달라고 정부와 강원도정, 강릉시청에 촉구했다.
이날 농민들은 기자회견문을 내고 “추석 전 출하를 앞둔 때지만 가뭄으로 타버린 대파밭이 현재 강릉 농작물의 현주소다. 배추와 무, 감자까지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라며 “하지만 언론은 식수난과 오봉저수지 저수율만 관심있을 뿐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데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아침저녁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농민들의 애타는 가슴은 외면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사람만큼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 바로 강릉시민들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논밭이지만, 재난사태 선포에도 농업은 여전히 제외”라며 “1년 농사를 망쳐버린 농민들은 추석을 코앞에 두고 막막한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날 농민들은 가뭄에 따른 시민과 공무원들의 고통이 큰 상황을 이해하는 만큼 통상 기자회견에서 나오는 비판이나 일체의 구호 없이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농업의 공공성을 감안해 농업 피해 지원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거듭해서 간곡히 호소했다.
김봉래 강릉시농민회(준) 회장은 작물 피해 상황을 전하고 대책 마련 촉구를 이어갔다.
김 회장은 “지금 밭에선 대파가 말라가고, 들깨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며 김장배추도 그 자리에서 시래기가 돼 가고 있다”라며 “그런데도 사람부터 살아야 하니 농업용수를 요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차라리 올해 농사는 포기하되 강릉시와 정부가 관련 대책을 마련해서 농사 포기에 상응한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농업용수로 쓰여야 할 오봉저수지를 농민들이 양보”한 만큼 적절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용석 전농 강원도연맹 의장은 “20만 강릉시민 모두가 어려운 지경에 놓였지만 농민들은 식수난, 생활용수난에 더해 타들어 가는 농작물에 물을 제때 주지 못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라며 “재난사태가 선포됐지만 사실상 농업 관련 피해엔 아무 지원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 의장은 “가뭄으로 인한 강릉 시민의 고통을 농민들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에서조차 타들어 가는 농심은 한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라며 “강릉시와 강원도정도 농업과 관련해 아무 대책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농민과 농업의 어려움을 헤아려 달라”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을 찾은 하원오 전농 의장은 앞으로 비가 오더라도 이미 가뭄 피해를 크게 본 작물이 정상화할 가능성이 낮은 점을 지적했다.
하 의장은 “바짝 말라버린 파, 감자, 배추는 비가 오더라도 못 쓸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적어도 농업부서는 지금 농민들이 어떤 상황인지 아는 척이라도 해줘야 억울함이라도 없지 않겠나”라며 “파종비·인건비·비룟값 등 모든 노력이 다 허사가 된 것도 안타깝지만 또 다시 빚더미 앉게 될 것도 걱정이다. 농업용수를 줄 수 없다면 피해 면적과 작물이라도 빠르게 조사해 생계 대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와 강원도정, 강릉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강릉시 농정과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가뭄 피해 신고를 접수받기 시작했다. 강릉시는 피해 면적을 집계한 뒤 예산이 필요하면 농림축산식품부와 강원도정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강릉시 농정과는 국지적으로 비가 왔던 강릉 주문진과 옥계 지역, 조생종 벼 농가의 경우 피해가 크지 않아 가뭄 피해가 강릉시 전역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파악 중이다. 단 오봉저수지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는 지역인 강릉시 구정면·강남동 일원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8일 기준 가뭄피해 작물 신고접수는 없는 상황이다. 농업용수에 대한 장기 대책으로 현재 지하댐과 관정 설치 등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나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현장 농민들은 강릉시가 가뭄 피해 농작물 신고접수를 시작한 데 대해 모른다고 답하는 등 현재까지 농가별 안내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농업 재해는 신고주의이므로 농가에서는 지원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가뭄 피해를 적극 신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