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쓸 새 없이 잠긴 논밭·시설…농민들 “복구 엄두도 안 나”

주말 내 전북 대부분 지역 비롯해 충남 등 호우 집중 군산에선 시간당 최대 152.2mm 역대급 폭우 기록 잠긴 농지의 벼·논콩, 시설작물 및 농자재 피해 ‘심각’

2025-09-09     장수지 기자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7일 전북 군산에 시간당 152.2mm라는 역대급 호우가 쏟아져 침수 피해가 잇따른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성산면 산곡리 일원에서 유시호 군산시농민회 사무국장이 빗물에 잠겨 피해를 입은 하우스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주말 새 쏟아진 폭우에 수확을 코앞에 둔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비 피해는 전북 대부분과 충남 일부 지역 등에 집중됐으며, 특히 전북 군산시엔 시간당 최대 152.2mm라는 역대급 호우가 내려 벼·논콩 등을 비롯해 시설작물 및 농기자재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일 만난 군산시 농민들에 따르면 이번 호우는 6일에서 7일 새벽 시간대에 집중됐다. 천둥 번개와 벼락을 동반한 강한 빗줄기가 논밭을 할퀴었음은 물론, 상가·주택 및 아파트 등의 침수피해도 적지 않았다. 전북특별자치도 재난안전상황실에 따르면 지난 7일 13시 기준 14개 시군의 호우특보는 전체 해제됐지만, 상가 85동과 주택 74동, 아파트 지하 2곳을 비롯해 9개 시군의 농작물 약 4176.6ha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 중 노지작물 침수피해면적은 3970ha며, 시설작물 피해는 204.6ha로 집계됐다. 피해면적은 현장 조사에 따라 추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 8일 오후, 대야면 광교리 일원의 너른 들판 일부에선 아직도 채 빠지지 않은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장재순 군산시농민회장에 따르면 해당 들판은 30시간 이상 빗물에 잠겨 있었으며, 이로 인한 벼 세균성잎마름병 확산 피해와 특히 논콩 침수피해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장재순 회장은 “비가 유례없이 많이 내리기도 했고, 인근 탑천 수위가 높아 물이 좀체 빠지질 못해 작물 피해가 심각하다. 벼 끝이 간신히 보일 만큼 들판 전체가 빗물에 오랜 시간 잠겨 있었고, 힘들게 잡초 방제하며 키워 온 논콩 또한 비에 잠겨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장 회장은 지난 7월 호우 이후 논콩 생육 회복에 온 힘을 기울여 왔는데 이번 호우로 또다시 피해를 입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해당 농지의 경우 지대가 낮아 논콩 재배가 적합하지 않지만 정부에서 장려한 타작물 재배 정책과 이에 발맞춘 한국농어촌공사 임차 농지의 타작물 재배 의무 때문에 논콩을 재배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부 차원의 보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재순 군산시농민회장이 지난 8일 오후 대야면 광교리 일원에 30시간 이상 침수된 논콩을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빗물에 잠겼던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 유시호 군산시농민회 사무국장의 하우스 내부에 열흘 전 파종한 양파 모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한승호 기자

하우스 침수피해도 큰 상황이다.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 일원에 위치한 유시호 군산시농민회 사무국장의 하우스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참담한 모습이었다. 빗물은 빠져나갔지만 쓸려온 토사로 인해 농기자재와 농기계가 곳곳에 어지러이 묻혀 있을 뿐만 아니라 한참 수확해야 할 애호박은 올해 생산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약 열흘 전 파종한 양파 모종 역시 모판이 빗물에 휩쓸려 떠다닌 탓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유시호 사무국장은 “하우스 3동에서 애호박을 친환경으로 연중 생산해 학교급식에 납품하는데, 빗물에 하우스가 잠겨 작물 뿌리가 다 상해 아마 며칠 내로 전부 시들게 될 것이다. 땅이 마르는 데만 열흘은 걸릴 것 같고, 복구 작업 후 모종을 다시 넣는다고 해도 입식 후 수확까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소요되는 만큼 올해 농사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라며 “농사지은 지 25년째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린 건 처음이다. 하우스 내부에 전기모터는 물론 애호박 납품용 상자 등 농기자재, 집기류가 전부 망가져 어떻게 복구를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다”고 전했다.

대야면 동광리 일원 하우스에서 멜론을 재배 중인 고철용씨는 비가 내린 직후인 7일 새벽 3시부터 양수기를 가동했지만 너무 많은 양의 비가 와 빗물이 빠지질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는 추석 수확을 앞둔 고씨의 멜론은 상품성을 모두 잃어 폐기해야 할 상태였다. 고씨는 “하우스가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한 데다 재작년에 양수기까지 마련해 하우스가 이 정도로 잠길 줄은 몰랐다. 비가 내린 직후부터 양수기로 물을 퍼냈는데도 작물을 살릴 수 없게 됐다”면서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조차 못해 온전히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씨는 하우스뿐만 아니라 인근 침수 논의 벼 피해가 심상치 않다며 대책 마련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이번 호우는 군산시뿐만 아니라 전북 익산시와 김제·전주시, 충남 서천시와 논산시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야기했다. 충남 서천시에는 시간당 최대 137mm의 비가 내렸고, 지난해와 지난 7월 등 호우 피해가 반복됐던 문산면 구동리 일원의 들판은 배수시설 보수공사가 채 완료되지 않은 탓에 토사가 흘러들어 피해가 확산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몇 년간 반복·심화되는 폭우로 농작물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만큼 현장의 농민들은 현재 기상 상황에 맞는 배수시설 개선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재해 대책을 요구했다.

역대급 호우에 군산시 대야면 동광리 일원 하우스가 침수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고철용씨가 아직도 곳곳에 물이 고인 하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곧 수확해야 할 멜론이 모두 빗물에 상했다. 한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