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공공전료(公共電療)

2025-09-07     이상배(경기 화성)
이상배(경기 화성)

우리 집 사랑채는 ㄱ자 형태로 사랑방, 대문간, 나뭇간, 외양간, 곡간 순으로 구성되었다. 가을 벼 타작 후 방앗간에서 쌀 쪄와 곡간의 쌀독에 한가득 담아 놓으면 이보다 배부른 일이 없다. 1년간 굶는 일은 없는 것이다. 여름 지나며 바구미 나는 것은 예삿일이고 푸르둥둥 산화된 쌀을 바가지에 넣고 박박 문질러 밥을 했다. 잘 문질러지게 줄무늬 바가지나 요철 모양 바가지가 제격이었다. 이렇게 먹다가 햅쌀을 먹으면 그렇게 꿀맛이다. 지금처럼 갓 방아찐 쌀이 유통되지 않던 시절의 얘기이다.

서리 내리고 모든 수풀이 기가 죽은 후 찬바람 거칠게 불면 어머니와 솔잎을 긁어모았다. 아버지는 당목림 나뭇가지를 잘라 낫가리를 만들고 장작을 패며 겨울을 나셨다. 그 땔감으로 데운 아랫목의 온기가 아련하지만, 그 시절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형과 동생에 대한 슬픔 또한 우리 가족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지금이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병이었다.

40여년 전 이야기에 비춰볼 때, 배고플 때 먹을 것이 있고, 추울 때 등 따스하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으면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 돌봄의 핵심은 먹거리, 에너지, 의료다. 이 세 축의 균형을 잡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위태롭다. 

첫째, 먹거리의 축은 곡물자급률이 20%대로 주저앉았지만, 위태로운 수입 풍요에 무감각하다. 식량안보를 국가의 영순위 과제로 삼아야 한다.

둘째, 에너지의 축은 석유 난방의 편리함 속에서 전국 산하가 칡넝쿨과 환삼덩굴로 뒤덮인 채 방치되고 있다. 이 미활용 바이오매스를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농민 주도의 농촌형 태양광으로 에너지 전환의 꽃을 피워야 한다.

셋째, 의료의 축은 지역소멸과 함께 기반마저 무너지고 있다. 소멸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같은 공동체적 해법이 시급하다.

기본사회의 핵심은 기본 먹거리, 기본 에너지, 기본 의료이며, 민주주의의 중심 또한 먹거리 민주주의, 에너지 민주주의, 의료 민주주의이다. 우리가 흔히 주치의만 말하지만, 주치의에 앞서 생명의 근간인 삼농 중심의 주치농(主治農)과 시민과 농민이 주도하는 재생에너지의 주치전(主治電)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야 한다. 먹거리로 공동체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공공식료(公共食療)’, 재생에너지 이익으로 문예부흥을 일으켜 문화의 힘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공공전료(公共電療)’, 그리고 의료로 지역 돌봄 공동체를 세우는 ‘공공의료(公共醫療)’의 상상이 절실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공공전료’의 열쇠인 ‘농촌형 태양광’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경작지에만 한정된 '영농형'을 넘어, 휴경지와 나대지, 축사와 창고 지붕, 하천과 저수지 등 농촌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1200평 부지를 기준으로 할 때, 휴경지 등에 설치하는 일반적인 농촌형 태양광(약 600kW)은 융자 설치 시 월 400만 원 내외, 농사를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약 400kW)은 융자 설치 시 월 250만 원 내외의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농민에게 복음과 같은 소득 창출의 기회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무분별하게 추진될 경우, 우량 농지 훼손, 실제 경작하는 임차농의 터전 상실을 넘어, ‘에너지 카스트’와 도시를 위한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농업진흥구역 ‘외’에만 태양광을 허용하는 경직된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결과적으로 농민의 생활 터전인 마을 주변 경관을 해치는 아이러니를 낳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도리어 농업진흥구역이 더 적지일 수도 있다. 농민의 쾌적한 삶과 조망권을 함께 고려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영농형 태양광은 이렇게 복잡한 과업이지만, 문제의 진짜 본질은 설치 자체가 아니라 제도의 부재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전력수요 없는 농촌의 현실이다. 법이 통과되어도 전력수요처가 없는데 허가가 나겠는가? 그래서 나는 국가 전체 재생에너지 쿼터의 최소 50% 이상을 농촌에 의무 할당하는 담대한 사회적 합의를 제안한다. 이는 전력 다소비 산업인 반도체 공장이나 AI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을 벗어나 농촌이 중심이 된 지방으로 이전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이로써 농촌은 안정적인 전력 수요처를 확보하고, 기업은 RE100을 달성하며, 국가는 균형 발전과 지역 소멸 극복의 강력한 지렛대를 얻게 된다.

이 거대한 전환을 위해, 우리는 단순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넘어선 하나의 완성된 제도로서 ‘공공전료’를 설계해야 한다.

첫째, 실제 농민과 주민으로 구성된 ‘마을재생에너지위원회(가칭)’의 인준을 거쳐 투기 자본과 위장 농민을 걸러낸다.

둘째, 사업자는 공동체 기여 등 교육을 이수하는 ‘농촌형 태양광 참여인증제’를 통해 책임감 있는 문화 농민으로 거듭난다. 이때의 인증은 국가 주도의 서류 심사가 아니라, AI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발전량, 경작 활동, 수익 분배, 사회공헌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마을 주민과 도시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여 검증하는 ‘시민 참여인증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셋째, 지주와 임차농이 10년 이상의 장기 임대를 전제로 발전 수익의 50%를 공유하는 상생 계약을 법제화한다.

넷째, 발전 수익의 일정 비율을 ‘마을 문화 기금’으로 출연하는 ESG 영농을 실천하여 문화농촌의 토대를 닦는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넘어 개별 농가가 수익을 가져가는 모델을 넘어선 궁극적인 상상이 필요하다. 마을 또는 읍면 단위의 ‘공공 태양광 발전소’를 설립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농촌 에너지 기본소득 기금’또는 ‘복지기금’으로 적립하여 임차농, 여성 농민, 고령 농민, 귀농 청년 등 모든 주민에게 매달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거나 마을요양원을 구축하거나 공유식당 내지 마을정원을 가꾸게 하는 모델이다. 이것이야말로 ‘에너지 카스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농촌 소멸을 막는 가장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우선순위일지 모른다. 이 모든 일에 자본이 필요하다. 농협은 농민들을 위한 장기 저리 금융상품을 개발하여 사업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이 시스템 안에서 농촌의 풍경은 기계적인 것을 넘어, 사람과 문화 중심으로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농민은 전력을 자급자족하는 자율주행 전기 농기계를 운용하며 노동의 풍경부터 바꿀 것이다. 생산된 농산물은 ‘RE100 인증’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쓰고 남은 전력은 지역 산업단지의 RE100 달성에 기여하고, 절감된 탄소는 ‘탄소배출거래권’ 판매라는 추가 소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사람과 관계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농사(農事)'가 '농예(農藝)'로 바뀔 것이다. 문화농업, 예술농업이 열리는 것이다. ‘마을 문화 기금’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되어 전국의 이야기꾼, 예술가, IT 전문가들을 불러 모은다. 이‘디지털 르네상스를 꿈꾸는 청년들’은 농촌으로 모여들어 어르신들의 삶이라는 위대한 문화자본을 콘텐츠로 재창조한다. 쾌적한 자연과 풍부한 문화, 그리고 에너지 기본소득이 주는 안정감은 도시의 디지털 노마드들을 유혹하여 농촌은 ‘워케이션(Workation)의 성지’로 거듭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 민주주의의 심화다. ‘마을재생에너지위원회’는 단순히 사업 인준을 넘어, 에너지 복지기금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마을 의회’로 발전한다. “올해 기금으로 마을 요양원을 보강할 것인가,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을 것인가?, 마을정원을 어떻게 심화할 것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논의가 마을 총회에서 이루어지며, 주민 스스로 마을의 미래를 결정하는 완전한 자치가 실현된다.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흑사병으로 유럽인 절반가량이 죽자 잉여농산물과 잉여소득이 늘고, 노동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사회 전반의 풍요임을 상기하고자 한다. 농촌형 태양광발전으로 인한 농촌의 소득증대는 문화농업을 통해 ‘디지털 르네상스’를 이룰 단단한 토대이다. 르네상스의 문화자본이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면, 디지털 르네상스의 문화자본은 전기없는 시대에 태어나 AI시대까지 살아낸 유일한 인류인 농어촌 노인들의 삶의 이야기, 문화유산, 농어업유산이다. 

이를 아카이빙하는 것은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문화적 DNA’를 확보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류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가장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과업이다. ‘농촌형 햇빛소득’을 바탕으로 청년들이 농어촌 노인과 마을의 서사를 기록하고 재창조할 때, 재생에너지는 비로소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따뜻한 ‘공공전료(公共電療)’로 거듭날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망태기를 짊어지고 갈퀴로 긁어모은 솔잎이 가마솥을 데워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키웠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