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예산 첫 20조원 돌파…‘국가책임농정’은 아직 물음표
양곡정책 혼란, 농업생산비 문제, 정책전환 의지 결여 등 ‘농정대전환 가능할까’ 농민단체들, 우려·당부·비판 제기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정부가 2026년 농업예산으로 20조350억원을 제안했다. 국회 심의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20조원대의 농업예산은 처음 있는 일이다(지난해 18조7416억원). “‘모두가 잘 사는 균형성장’을 뒷받침하고 농업을 식량안보를 지키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등 새 정부 핵심과제를 실천해 조기에 성과를 내기 위한 예산을 충실히 편성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고무적인 설명과는 달리 농업을 특별히 배려했다거나 농업정책의 위상이 높아진 건 아니다. 국가총예산 자체를 673조원에서 728조원으로 8.2%나 상향 설계했기 때문이다. 총예산에서 농업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75%. 여느 정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물론 농업예산의 절대적 규모가 예년보다 많이 늘어난 만큼 농업정책의 효능이 좋아질 여건이 마련된 건 사실이다. 이재명정부가 윤석열식 ‘불통 농정’을 비판하고 ‘국가책임농정’을 표방한다는 것 역시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새 정부의 농정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첫 농업예산안. 정부는 그 구체적 구상을 어떻게 내놨을까.
전략작물·수입안정보험·농어촌기본소득…스마트농업에도 방점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략작물(논콩·밀·가루쌀 등)이다. 전략작물직불 예산을 대폭 확대(2440억→4196억원)해 면적과 지원단가, 대상품목을 늘리는 등 재배 장려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소비 활성화를 도모할 전략작물산업화 사업예산은 소폭 확대(533억→564억원)에 그쳤고 그나마 콩 비축 예산이 유의미하게 늘어났다(1532억→3150억원).
농가 소득안정 정책으론 윤석열정부의 수입안정보험을 계승한다. 수입안정보험(2078억→2752억원)·농작물재해보험(4842억→5017억원) 등 보험 중심의 정책을 공고히 하는 한편, 재해대책비(1600억→2500억원)·선택형직불(3201억→5164억원) 확대 등이 그 일부를 보완한다.
첫발을 떼는 농어촌기본소득도 눈여겨볼 항목이다. 6개 군 24만명의 주민에게 월 15만원을 주는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편성 예산은 1703억원이다. 행정안전부 사업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일단 농식품부 예산으로 시작하게 됐고, 오히려 농촌 빈집 철거 사업이 행안부에서 농식품부로 이관돼 105억원의 농업예산을 할애했다.
윤석열정부에서 중단됐던 초등학생 과일간식 사업은 내년부터 전격 재개(169억원)한다. 취약계층 농식품 바우처와 직장인 식비 지원 등 먹거리 지원 사업 전반을 조금씩 복원·확장하려는 분위기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대상 인원은 5만명에서 8만명으로 늘리며(65억→96억원), 청년농을 위한 공공임대용 농지 매입(9625억→1조6170억원) 및 선임대·후매도 농지 공급(193억→770억원)에도 예산을 확대했다.
그 밖에 농식품부가 근래에 꾸준히 의욕을 드러내고 있는 스마트농업 육성, ‘K-Food+’ 수출 확대, 온라인도매시장과 스마트APC 지원, 반려동물 정책 등에도 큰 폭의 예산 증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농식품 R&D 예산 역시 AI·스마트농업 등을 중심으로 증액이 계획돼 있다.
불안한 농민단체들…‘국가책임농정’ 강조
농민단체들의 반응은 어떨까. ‘20조원’이라는 액수에 일부 환영을 표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국정목표인 ‘국가책임농정’ 실현에 우려와 당부를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회장 노만호, 한종협)와 한국농축산연합회(회장 이승호, 농축연)는 각각 농업예산 20조원 돌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고무적이다”라고 반기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총예산 대비 미진한 점유율엔 역시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표했다.
중요한 건 규모보다 내용이다. 한종협은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중단 △논콩·가루쌀 정책 혼란 △농어촌기본소득 농식품부 예산 활용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향후 세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진언했다. 농축연 역시 농가 생산비 지원 예산의 적극적 확대를 당부했으며, 특히 “농업예산은 최소한 국가 전체예산 증가율에 맞춰 가면서 단계적으로 전체 대비 비중을 5% 이상 확대해 국가책임농정을 실현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했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하원오, 농민의길)은 좀 더 본질적인 지적을 가했다. 정부가 대놓고 ‘농정대전환’·‘국가책임농정’ 구호를 내걸고 있음에도 이번 예산안에서 정책의 전환을 거의 체감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식량안보를 담보하지 못하는 양곡정책, 보험에 정부 책임을 떠넘긴 재해·소득정책, 농촌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송미령표’ 농촌공간 정비 정책, AI·스마트팜에 함몰된 지원정책 등이 그것이다.
농민의길은 “(예산안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변화가 기존 정책에 편성된 예산을 증액하는 수준”이라며 “대전환은 고사하고 전환조차 아니다. 진정한 농정대전환의 출발점은 식량주권과 농민권리 보장이다. 농식품부는 규모 조금 늘린 예산으로 농정대전환 운운하며 농민을 기만하지 말라”고 비판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