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농민들, 최악 가뭄에 “올해 농사 포기” 선언

강릉 주 수원지인 오봉저수지는 농업용인데 상수원으로 쓰여 농업용수 오래전부터 부족 “시민 먹을 물도 없는데 농업용수 달라 못해” “가뭄 피해 농작물 최소한이라도 보상 필요”

2025-09-03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강원 강릉시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강릉 농민들이 올해 농사 포기를 선언했다. 강릉시민의 식수마저 부족해 75% 제한 급수가 실시되는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강릉 지역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뒤 4일간 농업용수 공급이 아예 중단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농업용수는 일부 구간별로 3일 재개된 상태다.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강원 강릉시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3일 오전 성산면 금산1리 들깨밭에서 김봉래 강릉시농민회(준) 회장이 극심한 가뭄 탓에 덜 자란 들깨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강릉시농민회(준)는 지난 1일 ‘2025년 강릉시 농민 농사 포기 선언문’을 내고 “본래 농업용수를 위해 설치된 오봉저수지가 강릉시 상수원으로 전용되면서 우리는 수년간 물 부족의 고통을 감내했다. 시민의 식수 부족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정작 농업용수가 절실히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한 채 속으로 앓아야 했다”라며 “오봉저수지 고갈을 앞두고 더 이상 농사지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토로했다.

3일 강릉시 성산면 금산1리 들깨밭에서 만난 김봉래 강릉시농민회(준) 회장은 2개월간 이어진 가뭄으로 어른 발목께까지밖에 자라지 못한 들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작물이 목숨만 붙어 있지 농작물이 될 수 없는 상태다. 지역 농가 대부분이 매우 힘든 상황이다. 우리 농민회는 사람 먹을 물도 없다는 데 농업용수를 달라고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농사를 포기하고, 대신 정부 당국이 적절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현재 감자, 배추, 들깨 피해가 가장 크고 아직 물을 더 대야 하는 벼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가뭄과 함께 찾아오는 병충해 급증도 우려했다. 그간 투입한 농자재, 인건비 등 생산비도 문제다. 이대로면 수확할 게 없어서다. 이에 강릉시농민회(준)는 가뭄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이런 가뭄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농업용수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특히 더 이상 농업용수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올해 농사에 들어간 생산비와 수확하지 못하는 데 따른 피해에 대해 최소한의 보상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 사각지대 작물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강원 강릉시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지난 2일 강릉시 주요 수원지인 오봉저수지 바닥이 드러나 있다. 3일 현재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3.9%까지 하락했다. 한승호 기자

이번 가뭄이 자연재해이긴 하지만 사실상 예견된 재해라는 지적도 이어갔다.

오봉저수지(한국농어촌공사 강릉지사 관할)가 강릉시 주요 수원지로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공급을 동시에 하면서 수년 전부터 농민들은 농업용수 부족을 우려했다. 김 회장은 “예견된 사태다. 진작 생활용수를 위한 상수원을 추가로 확보했어야 한다. 농업용 저수지를 상수원으로 쓴다는 발상부터가 잘못”이라며 “강릉시는 상수원 수원지를 별도로 확보하고 오봉저수지는 농업용으로 쓰게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인열 한국농어촌공사 오봉지소장은 “그간 농업용수를 매일 충분히 공급했으나 6월부터 가뭄 지속으로 고갈 상황이 됐다. 이에 농업용수 공급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해 제한 조치(급수)를 하게 됐다”라며 “재난사태 선포 직후 강릉시 요청으로 며칠간 농업용수 공급을 중단하면서 현장의 불만이 생긴 것 같다. 오늘부터는 충분하진 않겠으나 양수기를 총 가동해 구간별로 공급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완전한 해갈이 언제 될지 전혀 알 수 없고, 전국에서 동원된 급수차가 매일 오봉저수지로 물을 나르고 있지만 가뭄 해결엔 태부족인 건 사실이다. 오봉지소에 따르면, 급수차들이 하루 평균 3000톤의 물을 저수지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오봉저수지가 매일 방류해야 하는 물량은 제한 급수 상황에서도 평균 약 8만톤이다. 단순 계산해도 하루 3000톤씩 약 27일을 투입해야 겨우 하루 공급량이 나오는 셈이다.

농어촌공사와 강릉시는 추가 수원 확보가 절실하다는 공통 인식 아래 각각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이 또한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만큼 현재의 가뭄 상태를 신속히 해결하기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재난사태 선포와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다르다. 재난사태는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급한 대응조치(공무원이나 정부 물자 동원 등)가 중심이며 재난으로 인한 정부 차원의 피해 보상은 없다. 특별재난지역의 경우 주민 생계안정비, 각종 세금 감면 등 경제적으로 지원한다. 현재까지 강릉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지 않은 상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가뭄은 그 자체로 자연재해이므로 별도의 농업재해 인정 절차는 없으며 가뭄에 따른 농작물 피해 신고와 현장 조사를 통해 입증되면 보상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