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참빗 만드는 사람들① 담양에 ‘참빗 마을’이 있었다
서기 2002년 봄, 가던 날이 마침 장날이었다. 이른 아침 실안개가 끼어 어렴풋한 신작로를 따라 사방팔방의 고을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우리나라 유일의 죽제품 오일장이 서는 담양장터로 가는 행렬이다. 높다랗게 포개 짊어진 대바구니 더미에 온몸을 파묻은 채로 두 다리만 드러내고 걸어가는 남정네들도 있고, 역시 대나무로 만든 발이며 쟁반이며 부채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장터를 향해 삼삼오오 종종걸음을 하는 아낙네들도 있다. 이들이 모여서, 그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죽물 시장을 펼친다.
대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여든다는 담양 오일장. 갖가지 죽제품들을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장터는 제법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러나 죽제품의 만물시장으로 불리는 바로 그 담양장도, 전성기였던 1960~70년대에 비하면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얘기다. 사회구조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면서, 바구니나 광주리 따위의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나마 대나무 제품들이 하던 구실을 플라스틱 용기가 대신하게 됐을 뿐 아니라, 자동차의 보급으로 무거운 짐을 이고 질 필요가 줄어들면서, 이 죽제품 시장도 그 기세가 꺾인 것이다.
담양읍 중심가를 한참 벗어난 곳에 위치한 향교리 마을. 아직도 고색창연한 옛 자연부락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이 동네는 예부터 ‘참빗 마을’로 그 명성이 자자하던 곳이다. 그러니까 담양이라 해서 모든 마을에서 모든 죽제품을 다 만들었던 것이 아니고 바구니는 어느 마을, 합죽선은 어느 마을, 대자리는 또 어느 마을 하는 식으로 자연부락 단위로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뤄졌었다. 향교리는 그중에서도 머리 빗는 참빗을 도맡아 만들어서 전국 각지는 물론 멀리 만주 땅에까지 공급을 하던 명실공히 ‘참빗 마을’이었다.
-어르신들, 저는 저기 서울 대갓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참빗장사를 하는 상인이올시다. 이 마을에서 참빗을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뉘신지요?
그 시절 참빗 행상이 찾아와서 이렇게 물어볼라치면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고급 참빗을 사러 왔다 이 말이제? 그렇다면 물어볼 것 없이 저쪽 고 영감네 집에 가봐.
-아암, 고 영감네 참빗이 젤로 낫제. 그 사람이 우리 말에서도 기중 좋은 빗쟁이여.
-대대손손 솜씨 좋은 빗쟁이로 소문이 나서, 그 영감네 참빗은 받어가기가 어려울 것인디.
참빗 마을인 향교리에서도 솜씨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던 집이 있었는데, 1934년생 고행주씨네 가문이었다. 사람들은 고씨 일가를 일컬어, 가장 뛰어난 참빗 장인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좋은 빗쟁이’라고 불렀다. 물론 옛날에 그랬다는 얘기다.
2002년 봄에 내가 찾아갔을 때도, 당시 예순여덟 살이던 고행주 씨는 여전히 참빗을 만들고는 있었다. 하지만 낯선 방문객에게 옛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서 참빗과 함께 살아온 얘기를 나직나직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에는 뭐랄까, 맹렬한 삶의 피곤기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 일이 힘들고 또 벌이도 시원찮으니까 인자 그만둬야겠다 생각하면, 때맞춰서 참빗 맹글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와요. 그러다 또 주문이 끊겨서 인자 참말로 그만둬야 쓰겄다, 그러면 신기하게 또 주문이 들어온단 말이오, 허허. 우리 집이 대를 이어서 참빗을 만들다 보니까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서 경상도 어디 사는 사람이 빗 두 개만 보내주시오, 인천 사는 사람이 세 개만 보내 주시오, 이렇게 주문이 들어와요. 빗 하나에 3000원 받으니까 두 개 보내면 6000원인데, 우체국에서 부치면 우송료가 1300원 나와요. 그거 떼면 뭐 남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그만둘 수 있나요, 5대째 이어온 가업인데요. 그래서 결국 가는 데까지 가보자, 까짓것 산 입에 거미줄 칠라디야, 그런 맘으로 하고 있어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영감네 참빗’의 전통을 자신의 대에 이르러 단절할 수가 없어서, 아직도 참빗 만드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는 고행주씨, 그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곳 담양의 향교리가 전통적인 ‘참빗 마을’이라고 했지만, 이제 고씨를 제외하고는 그 마을에서 참빗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가 더욱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