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극복과 87년 체제로부터의 전환

2025-08-31     하승수 대표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 12월 3일 이전의 대한민국과 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내란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란을 계기로 ‘극우’가 그 실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내란을 옹호하고,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내란수괴를 비호하며, 부정선거론을 믿는 세력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도 내란은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다.

극우가 장악한 제1야당

여전히 윤석열을 비호하는 세력들이 정치권 안팎에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을 비호하는 정치인이 제1야당의 대표로 당선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극우가 제1야당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교분리의 원칙까지 무너졌다. 신천지, 통일교 등이 정치에 관여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기이다.

내란 특검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란에 대한 사법적 처벌 절차일 뿐이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이 장악한 제1야당’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란은 사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극복돼야 한다. 내란을 정치적으로 극복하려면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크게 보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다시는 내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헌법을 개정해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내란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헌법에 허점이 드러났다. 따라서 헌법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하게 손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가 있으면, 대통령의 계엄 해제 공고가 없어도 자동으로 계엄이 해제되도록 해야 한다. 작년 12월 4일 새벽 1시에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가 있었지만, 3시간 동안 윤석열이 계엄 해제 공고를 하지 않았던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다시는 내란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만들려면, 헌법개정을 통해서 계엄과 관련된 조항을 손봐야 한다. 또한 내란죄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란을 일으키면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중심, 중앙정부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시킨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체제는 이승만정권–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굳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집중된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면서 2명의 대통령이 탄핵됐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내란으로 탄핵된 윤석열이 그들이다.

특히 윤석열-김건희에 의해 온갖 불법들(직권남용, 뇌물수수, 이권챙기기, 공천개입 등)이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이를 견제-감시하는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대통령의 시녀가 되었다. 검찰도 윤석열의 시녀였고, 김건희의 불법을 묵인했다.

따라서 권력기관들을 개혁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감사원을 독립기관화하거나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독점도 삭제해서, 영장청구권자는 법률로 정할 수 있게 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자치입법권, 자주재정권, 자주조직권 등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배심재판 도입,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구성의 개혁 등 사법개혁도 필요하다. 대통령결선투표제 도입도 필요하다. 이 모든 일들은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강화시켜 다시는 내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헌법을 개정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국가와 국민의 책무를 명시하고, 농어업의 공익적인 기능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미래를 내다보는 개헌이 될 수 있다.

광복 80주년이었던 지난 15일 경기도 포천 드론작전사령부 앞에서 열린 '전쟁 유도 드론작전사령부 규탄대회'에서 2025 자주평화실천단에 참석한 농민, 노동자, 학생들이 '내란 외환세력 완전 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극우를 정치의 구석으로 밀어내야

둘째, 내란을 옹호하는 극우와 합리적 보수가 분립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등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버드대 교수인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블래빗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에서, 극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봉쇄전략(극단적인 세력을 고립시키는 전략), 배제전략(처벌 등의 제재를 하는 전략)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도 개혁’ 전략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고, 특히 미국의 하원과 주의회 선거에서 채택하고 있는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를 비례대표제로 바꿈으로써 정당들이 그들이 받은 표에 비례하여 의석을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적은 미국에서 실현되지 못했고, 트럼프가 재집권하는 현실을 맞았다.

이런 지적은 대한민국에도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는 내란이나 국정농단 등의 헌정질서 파괴가 불가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세력에 대한 봉쇄전략이나 배제전략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제도개혁을 통해서 극단적인 세력을 ‘정치의 구석’으로 밀어 넣는 것이 필요하다. 합리적 보수와 극우가 분립될 수 있는 정치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다당제 정치개혁이다.

유럽에서도 극우정당(물론 이들은 내란을 일으키거나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들이 득세한다고 하지만, 최소한 정치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에서는 집권을 하기가 쉽지 않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때문에 단독으로는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려운데다가, 다른 정당들이 극단적인 세력과는 연합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소선거구제를 바탕으로 특정지역을 일당지배하고 있는 거대정당에 극우가 침투하여 거대정당을 장악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다양한 정당들이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받는 선거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보수와 극우세력이 나눠지게 되고, 극단적인 세력을 정치의 구석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마침 2026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정치의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극우세력은 ‘이재명정권 반대’라는 프레임을 짜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퇴행적인 프레임이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자는 프레임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헌법개정도 필요하고, 정치개혁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헌법개정과 정치개혁을 위한 운동이 지역에서부터 일어날 필요가 있다. 3.1운동처럼 전국 곳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올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를 뒤로 하고 광장에 다시 모인 시민들이 5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8차 범시민대행진 주권자 시민 승리의 날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내란세력 청산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윤석열 파면 및 시민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지역에서부터 민주주의 강화해야

셋째, 지역에서부터 정치를 개혁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예를 든 헌법개정이나 정치제도 개혁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래서 여의도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는 국가적인 헌법개정과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에서도 지역정치를 바꿔나가고 주민주권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조례를 바꾸고 예산을 개혁하고, 지방의회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지역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조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의료, 교육, 교통, 주거, 일자리, 경제, 농어업, 환경 등의 영역에서 필요한 조례들이 많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그런 시도들만 참고해도 된다. 또한 농촌지역에서는 읍면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읍면에서부터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계획은 읍면에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짜고, 그것이 모여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계획이 되게 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토건사업과 전시성 사업에 낭비되고, 이권세력에 의해 왜곡되는 것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주민참여예산도 실질화하고, 예산에 대한 주민감시권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또한 지방의회가 공천권자 눈치만 보면서 제 역할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지역에서부터 정치를 바꿔나가고 행정을 바꿔나가야 지역에 희망이 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중앙에 대해서 할 말은 하는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수도권 일극집중 체제에서 벗어나서 비수도권 지역, 농어촌지역을 활성화할 수가 있다.

앞에서 제안한 것을 종합하면, 지역에서부터 출발하는 3대 요구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헌법개정, 정치개혁, 주민주권 실현을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새로운 헌법을 갖게 되고, 지역에서부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내란을 정치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