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수도권의 식민지가 아니다”
신장성~신정읍 송전선 최적경과대역, 한전안대로 결정 ‘주민 없는 공청회’ 등 불공정·불투명한 결정 과정에 고창·정읍 반대 주민들, 대대적 반대 활동 돌입 결의
[한국농정신문 이대종 기자]
지난 20일 열린 345kV 신장성~신정읍 송전선로 입지선정위원회 제9차 회의에서 송전선로 최적경과대역이 한전이 제출한 안대로 결정됐다. ‘경과대역’은 송전탑이나 송전선로가 지나갈 사업지역의 범위를 뜻하며 일반적으로 2~5km 내외의 폭으로 설정된다. 이번 회의에서 최적경과대역이 결정됨에 따라 송전선로 건설 문제는 이제 최종 입지선정 절차만을 남겨놓게 됐다. 이에 따라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해 온 고창과 정읍의 주민 대책위가 연달아 회의를 소집하는 등 새로운 투쟁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간 대책위는 수도권의 에너지 수요를 위해 지방 주민들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는 전력 공급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해 왔다. 마을 뒷산을 뭉개고 지붕 위를 지나 논밭을 가로지르는 고압 송전선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송전탑 반대 투쟁에 나선 궁벽한 농어촌의 주민들은 “이것은 누구를 위한 전깃줄인가”라며 근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지방은 수도권의 식민지가 아니다”라는 주민들의 외침 속에 수도권의 에너지 수요를 위해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함축돼 있다. 전국 각지, 국토의 말단에서 생산된 전기가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수도권으로 달려가야 하는 전력공급 체계를 고수하는 한 이 싸움은 언제 어디서고 끊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대책위는 또한 입지선정위 구성과 운영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지역주민을 대표하거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비민주성과 폐쇄성, 위원장의 편파적 운영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에 더해 지난 20일 송전선로 최적경과대역 결정 과정에서 한전 측은 사전에 요청한 주민 대표들의 회의 참관을 거부하고 경찰력을 불러들여 항의하는 주민들을 억압하는 가운데 비공개 표결을 강행했다.
이날 회의 이후 “한전이 짜놓은 판에서 장기판의 말처럼 이용만 당했다”라는 입지선정위 일부 위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일련의 사태는 절차적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을 제기해 온 대책위의 문제 제기가 공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대책위는 그간 ‘주민 없는 공청회’ 등으로 요식 절차만을 밟아 온 한전이 의안 가결을 위해 주민의 알 권리 등 기본권을 짓밟았다고 강하게 비난하며 지난 20일 회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밝혀내기로 하는 한편, 회의 의결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더 나아가 「전원개발촉진법」,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등이 전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법안은 수도권에 편중된 전력망 구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할뿐더러, 과도한 경제적 유인책과 행정절차 간소화로 주민 간 불신과 반목을 부추김으로써 결국 반대운동을 무력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고창과 정읍 대책위는 공동으로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지역 동향 공유 △최적경과대역 결정에 따라 새롭게 재구성될 입지선정위 재편 방안 토론 △피해지역 주민과 지역 간 연대 강화 결의 △도 단위, 전국 단위 활동 촉진 방안 논의가 진행됐다. 이와 함께 정읍 대책위는 오는 10일 정읍시민 궐기대회, 고창 대책위는 강연회와 대책위 공식 출범식을 규모 있게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