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청소년오케스트라, 농어촌에서 ‘음악공동체’를 일구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2011년 한국마사회의 기부금을 기반으로 농어촌희망재단이 ‘농어촌청소년오케스트라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전국 20개 단체가 이 사업과 동행하기 시작했는데, 설립 초기 저명한 지휘자 금난새씨가 전국연합오케스트라(KYDO)의 지휘자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지휘 아래 2016년엔 이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하는 큰 성과를 이룬다.
이후에도 한국마사회는 2018년부터 사회공헌재단을 통해 이 사업을 직접 주관하며 오늘날 전국 12개 오케스트라를 지원하고 있는데, 합동연주회를 권역별로 분할해 더 많은 공연을 치러내는 등의 변화를 시도하며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충남 서천 문예의전당을 교실 삼은 ‘서천청소년오케스트라(단장 강정남)’를 찾아, 오는 30일 지역의 대표축제인 '장항 맥문동 꽃 축제'에서의 무대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지역음악공동체를 꾸리는 선생님들의 노력을 들여다봤다.
하루의 '연습날'을 만들기 위해
서천청소년오케스트라는 지난 2011년 창단 이래 15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강정남 단장·권해경 지휘자 부부를 중심으로 지역 아이들의 악기연주 교육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뒷받침해온 음악단체다.
이곳의 교육은 통상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데, 이 하루 두 시간의 교육을 준비하는 데 어지간한 농촌 작은학교의 전 교직원 수보다도 많은 전문 인력이 동원된다.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에서부터 플룻·클라리넷 등 목관악기, 트럼펫·트럼본 등의 금관악기, 그리고 타악기에 이르기까지 오케스트라 편성에 쓰이는 악기의 수는 적게 잡아도 십수개에 이르는데, 악기군별로 최소 한명 이상의 전공자 출신 인력이 달라붙어야만 오케스트라를 육성한다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은 악기를 고르기 위한 체험의 기회를 얻는다. 수요가 적거나 가격이 너무 비싼 악기에 대한 수요는 종종 사정이 어려운 오케스트라의 고심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학생이 원하는 경우 해당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자는 게 이곳의 기조다.
매년 평균 80명의 인원이 이곳에서 연주 교육의 수혜를 받는다. 김예하·이지연(한산초 5·6학년) 학생은 이날 마침 오보에를 시작했다. 악기를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이 아이들은 “원래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부는 오보에 소리를 듣고 너무 예뻐서 하고 싶었다”라고 쑥스럽게 말했다. 오보에는 연습용 악기도 기본적으로 100만원 단위에 들어서고, 입에 닿는 ‘리드’의 관리 어려움 및 이에 따른 연주 난이도도 커서 목관악기 중에서는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악기에 속한다. 그러나 강정남 단장은 오보에를 불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망을 위해 이날 어떻게든 악기를 마련해 와 수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느 정도 손에 익은 중학생들도 제법 있지만, 예컨대 바이올린의 경우엔 아직 활을 아래로 당기고 위로 올리는 ‘업, 다운’ 동작조차 미숙한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있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선 아이들 전반을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의 곡을 새로이 발굴·편곡하고, 같은 악기 안에서도 수준별로 난이도를 배려하는 등의 섬세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많은 아이들이 지원하는 바이올린·플룻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위주로 구성된, ‘제3’의 파트를 만들어 가장 쉬운 악보를 제공하며 인원이 많은 바이올린은 전담 선생님까지 따로 배치했다. 곡의 화음과 조성을 고려해 어울릴 음표를 파트마다 일일이 그려내거나 수정하는 작업 역시 전문 인력이 아니고서는 맡기 어려운 일이자, 오케스트라 운영에 있어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 중 하나다. 그외에도 주기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망가질 관현악기 수십점을 주기적으로 수리하고 교체하는 등, 교육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선생님들이 들여야할 품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역의 음악공동체로 나아가다
문화 소외지역에서 둘도 없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협동심과 책임감을 가르치고 집중력과 정신력을 기르게 한다는 점 등 농어촌청소년오케스트라의 교육적 가치 외에도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오케스트라가 능력 있는 음악인들을 계속 붙들며 지역의 문화인프라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에서의 음악활동을 모색해오다 지난 2014년부터 ‘서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연주자들은 각종 군정행사에서 음악을 담당해 질을 높이기도 하고, 군내 다양한 예술단체와 협업해 공연을 주최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대가 늘어나면 지역의 환경이 윤택해짐은 물론 청소년오케스트라의 숙련도 있는 학생들도 더 큰 무대에 설 기회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오케스트라 창단 때부터 플룻의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강사 이슬비씨는 서천청소년오케스트라에 대해, 많은 지역음악인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음악활동을 이어가게 해준 고마운 존재라고 언급했다. 이씨는 “어쨌든 음악을 좋아해서 전공을 선택했는데 일로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건 너무 좋은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고, 오케스트라 교육을 위해 프로들이 이렇게 모이면 저희들끼리 연주도 하게 되는데 그때 제 자신도 '힐링'이 된다”라며 “‘열정페이’를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 시작해 지금까지 이렇게 일궈낸 만큼 너무 뿌듯하고 재미있다. 교육이 분주하게 이뤄져 힘들지만 여전히 찾아오는 것이 설렐 정도”라는 소감을 밝혔다.
“국가·지자체도 짐을 나눠지었으면 좋겠다”
이날 강사들 가운데서는 건강 문제로 자리를 비운 목관악기 강사를 대체할 일일 선생님으로 최근 익산에서 청소년오케스트라 운영에 도전한 이경호 단장이 있었다. 전북지역의 농어촌청소년오케스트라 부재에 주목한 마사회 사회공헌재단이 마찬가지로 지원해 지난 2023년에 탄생했는데, 용안면에 거점을 두고 익산지역 가운데서도 농촌 위주의 문화 소외지역 아이들로 단원을 구성했다는 데 의미가 깊었다.
익산지역에서 오랫동안 음악공동체 구성을 위해 헌신해오다 노년을 맞은 이 단장은 “나름의 보람이 있지만 아무 지원 없이 마음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자신들을 희생해가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운영을 맡기 어렵다.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일인 만큼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됐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그 탄생을 도운 서천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강정남 단장은 지휘를 맡고 있는 아내 권해경 지휘자와 함께 여타 다른 일까지 병행하면서 소득을 채우며 오케스트라라는 꿈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비록 강사비·악기구입비 등을 지원하는 마사회의 큰 도움이 있지만, 농어촌지역에서 오케스트라들이 교육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선 국가·지자체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강 단장은 “우리의 고생을 알고 마사회에서 지원을 계속하고 있지만, 강사비 이외에도 들어가는 운영비가 너무 많다보니 각종 문화 분야 공모사업 선정에 사활을 거는 입장”이라며 “사정이 여의치 못해 행정이나 회계, 홍보와 같은 문제들을 전문인력 없이 음악인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음악공동체를 일궈가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강 단장은 “일부 소수의 친구들은 이곳을 기회로 악기를 전공하는 길을 걷게 되기도 하는데, 재능이 보이고 부모도 의지가 있는 친구들은 전공의 길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라며 “처음에는 무서워하다가도 매일 연습하고, 공연을 하고, 이윽고 자신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볼 때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가르침, 질서나 배려·협동의 가치를 깨우쳐가는 것 같아 기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