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사라져가는 품앗이

2025-08-24     김남운(충북 청주)

 

 

김남운(충북 청주)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상품 형태로 시장에서 돈으로 교환되는 사회이다. 노동도 상품으로 시장에서 돈으로 교환된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양파를 수확하는데 한 망 작업비가 2000원이라고 했다. 하루에 양파 100망을 작업하면 하루 일당이 20만원이 되는 셈이다. 폭염이 계속되는 시기에 양파밭에서 양파를 망에 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양파 수확을 하고 모를 심어야 하는 농가에서는 더 높은 인건비를 지급하더라도 양파를 빨리 수확하기 위해 작업비를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벼농사의 경우에도 논갈이(트랙터), 모내기(이앙기), 병충해 방제(드론), 수확(콤바인) 등 각 작업마다 가격이 정해져 있다. 농기계 가격이 오르고, 면세유 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이 가격도 매년 조금씩 오른다. 농사일은 농가마다 각자 하는 일이 됐다. 각종 농기계를 각자 구입하고 각자 일을 한다. 농기계가 없으면 농기계를 소유한 농가에 돈을 주고 농작업을 시킨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그런데 불과 4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모든 농작업에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았고, 농사일을 각자 하지 않았다. 어제는 선혁이네 집, 오늘은 우리 집, 내일은 남인이네 집 등으로 서로 일을 도와주러 다녔다. 품앗이다. 농사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일할 때 효율이 높고 흥이 난다.

나는 모를 심는 어른들에게 모를 갖다주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커다란 둥근 쟁반에 음식을 가득 올려 머리에 이고 논으로 새참을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저 멀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도 국수 먹으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모내기하는 날은 마치 우리 집 잔칫날 같았다. 품앗이는 돈이 아니라 노동이 서로 교환되는 시스템이었다. 품앗이를 통해 농기계가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누가 어떤 농작물을 재배하는지 속속들이 잘 알게 됐다. 우리 집에서 농사지은 농산물이 담장을 넘어 이웃집으로 갔고, 이웃집에서는 우리가 짓지 않는 농산물이 왔다. 그러다 보니 농사를 짓기 위해 돈이 별로 필요 없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하루 노동의 가치는 같았다.

우리 동네에 모를 심는 이앙기를 갖고 있는 집은 두 집뿐이다. 육묘장(하우스)에서 모를 키우고 트럭에 실려 논으로 이동을 한다. 이앙기로 모를 다 심을 때까지 논에는 누구 하나 나와보지 않는다. 일손이 부족하면 일당을 주고 사람을 고용한다. 그리고 가을에 수확을 마치면 논갈이, 모내기, 병충해 방제, 수확 등 모든 과정마다 가격이 매겨져 토지주에게 청구한다. 이제 품앗이는 사라졌다. 품앗이를 통해 노동이 서로 교환되는 대신 농기계가 그 일을 하고 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제 농사를 짓는 데 돈이 필요하게 되었고, 생산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지만 생산비는 매년 상승한다. 이제 더 이상 한 농가가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는 농기계를 각자 구입하여 농사를 짓는 방식으로는 농가소득을 높일 수가 없게 됐다. 그렇다고 사라진 품앗이를 되살리기도 어렵다. 농기계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농기계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농사를 짓는 품목이 같아야 한다. 품목이 같으면 그 속에서 협동할 수도, 분업을 할 수도 있다.

자활센터는 우리 마을에서 마늘 농사를 하는데, 농기계가 없어서 내가 트랙터로 밭갈이를 해주고 자활센터는 우리 밭에 와서 마늘을 심어준다. 마늘을 수확하면 우리 집 건조기에서 마늘을 건조하고, 콘티박스에 20kg씩 담아 영천 수매현장으로 갖다 주는 건 자활센터가 한다. 자활센터는 농기계가 없지만 마늘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나는 인력을 도움 받을 수 있어서 마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품앗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