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 53] 일단 먹고 시작하는 홍성오일장
장에 일찍 도착한 날은 일행들과 만나기 전 우선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러다 먼저 연락을 하거나 혹은 연락을 받고 장소를 정해 서로 만난다. 홍성장에서도 혼자 먼저 대충 한 바퀴를 돌기로 하고 막 몇 걸음 옮기는데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복숭아를 들고 나온 상인이 인삼 파는 상인에게 칼과 복숭아를 건네는 장면을 본 것이다. 복숭아 주인이 한 마디 던진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단 먹고 시작하자구!”
암, 그래야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 일행을 만나면 우선 먹고 시작하자고 해야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는 참에 막 도착한 일행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시장 안 국밥집을 찾아간다. 한우가 유명한 홍성이라 그런지 ‘국밥촌’ 거리가 있다. ‘국밥 한 그릇에 오천원’이라 쓰인 현수막도 보인다. 웬일인가 하여 상인들께 여쭈니, 수입산 소고기를 넣는 국밥은 싸단다. 한우로 끓인 국밥은 가격이 두 배도 넘는다. 국밥 좀 끓여본 사람으로 말하자면, 그래도 싸다. 가격도 좋고 맛이 제법 괜찮다. 오일장을 돌아본 후엔 친정으로 갈 예정이라 어머니 드릴 국밥을 따로 포장했다.
뜨거운 국밥으로 속을 데우고 다시 오일장을 걷는다. 무덥고 습한 날들이 계속되는 중이지만 입추가 막 지나서일까. 벌써 갈치와 전어가 어물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때는 이르지만 제법 맛이 들어 보인다. 귀가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 더운 여름에 생선 구입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여수·순천을 중심으로 전남 일대에서 사랑받는 ‘서대’와 쌍벽을 이루는 말린 박대들이 보인다. 우리 해역의 상품이 아니고 중국산이 대부분이지만 가격은 저렴하니 많이들 사가는 것 같다. 황석어보다 조금 큰 조기를 말리기도 하고, 홍어나 우럭 말린 것도 판매한다. 사다가 젓국을 끓여도 좋고 찜을 해서 먹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어물전 쇼핑은 ‘패스’다. 너무 덥다.
홍성오일장은 그 어느 장보다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들고 나오는 생산자들이 많다. 오이나 노각을 무더기로 놓고 파는 상인들도 있고, 한두 바구니 담아 놓고는 지나가는 손님과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는 상인들도 있다. 호박잎과 고구마줄기도 한창이라 많이 나왔다. 이것들은 모두 손질해서 팔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잘 해 먹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채소를 까거나 다듬어 팔게 되는 것 같다.
풋고추, 오이, 호박, 가지는 여름의 대표 채소라고 해도 넘치지 않는다. 발을 옮기는 곳마다 여기저기서 팔고 있다. 열무와 얼갈이배추도 산더미 같다. 그 싱싱함은 김치 담고 싶은 생각을 부르고 곧 맛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풋고추 갈아 넣고 붉게나 푸르게 담는 여름 채소김치는 입맛 없다는 소리가 무슨 말이냐고 할 맛을 내준다. 아침 먹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김치 생각에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같은 여름 과일이라도 토마토, 참외는 이제 뒷전이다. 복숭아, 자두, 수박의 판이 엄청 크게 펼쳐졌다. 잘라 놓고 먹어보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는 상술을 인정이라고 부르고 싶게 인심이 크게 후하다. 복숭아, 자두를 한입 먹어보면 사지 않고는 그 자리를 뜰 수 없는 맛이다.
덥지만 또 다시 걷다가 뜻하지 않게 선물 같이 귀한 상인을 만났다. 홍성시장에서 처음 만났고 생애 처음 맛본 음식을 팔고 있었다. 달래나 쪽파와 비슷하게 생긴 무릇이 그 재료인데, 장아찌를 만들거나 곰으로 해서 먹는다. 조리의 방법이 음식의 이름이 되는 ‘무릇곰’도 있다는데 이번엔 장아찌를 만났다. 콩가루를 뿌려서 먹는 흥미로운 음식이다. 충남지역의 숨은 보석 같은 음식이다. 이런 재미가 오일장 투어를 계속하게 한다. 재미를 넘어 배우고 익히며 얻는 기쁨이 크다. 사진 찍는 류관희 작가는 어릴 때 먹던 음식이라며 추억팔이를 하다가 내게도 한 봉지 사줬다. 아무튼 재미나고 또 재미나다.
싸고 예쁜 속옷 트럭 앞에 사람들이 모인다. 나이를 먹어도 예쁜 건 좋은 거지. 됫박으로 파는 소금도 있다. 뉴슈가, 식소다, 달고나, 빙초산을 놓고 파는 상인도 있다. 여름이라 녹아내리며 늘어진 갱엿봉지도 보인다. 없는 게 없는 시장이 홍성오일장이다. 심지어 ‘개고기 팝니다’라고 쓴 간판을 세 번 이상 본 것 같다. 홍성오일장엔 우리가 두고 온 웃음도 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