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귀농 정책이 필요 없는 세상

2025-08-17     송성일(경북 봉화)
송성일(경북 봉화)

마을에 한 청년이 이사를 왔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귀농학교에 강의랍시고 갔다가 주민과 귀농인이 아니라, 강사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들어보니 집과 토지는 구했는데 우선은 봉화군에서 운영하는 청년 임대 스마트팜에 참여할 계획이란다.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부모님과 같이 귀농한 청년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반갑고 뿌듯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 깊이 이는 안쓰러움과 착잡함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특별한 지원책도 없던 1990년대 말에 귀농해 지금까지 버텨 이제야 겨우 빚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게 된 나의 고난의 귀농사를 강의랍시고 전하면서, 다시 선택의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귀농을 선택할까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무한 경쟁 시대를 빗겨나 농촌이 가진 포용적 공동체의 가능성과, 근면하고 성실한 농민과 기술적 숙련성이 바탕이 된 한국 농업이 가지는 경쟁력을 희망의 메시지로 전하는 것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나의 메시지가 거짓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음 몇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먼저 청년농 유치 정책이 세대 간 경쟁 구도로 비화하지 않도록 잘 설계되면 좋겠다. 누군가 그만둬야 빈자리가 생긴다는 전제에서 노령 농민, 소규모 경작 농민의 퇴출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정책적 타당성을 떠나 정서적 거부감을 피할 수 없다. 노령 농민은 교체돼야 할 낡은 기계가 아니다. 그 삶이 온전히 존중되고 영광스런 은퇴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선돼야 한다. 사회적 존중은 물론이고 농지를 매개로 한 연금제도를 강화하는 등 안전한 출구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또한, 청년들의 농촌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가장 높은 장벽은 농지 확보가 될 터인데, 이를 국가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선 청년농부를 빚쟁이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적어도 농지는 국가가 비농민소유 농지와 노령 은퇴 농민의 농지를 공적으로 확보해 제공하고 대출이자도 무이자수준까지 낮추어야 한다. 국가는 청년농부의 시도가 무모한 자살행위가 아니라 그야말로 신나는 모험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성공사례를 만들려 하지 말고 실패가 가능한 사회적 조건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팜’ 일색의 유인으로 청년을 현혹시키는 지금의 귀농 홍보 기조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팜이 한국 농업을 어느 정도 대신하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설 중심 ‘스마트팜’만으로 한국 농업을 완전히 대체할 순 없다. 스마트팜 일색의 유인책으로 빚쟁이 만드는 지금의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농업의 형태와 농촌에서 펼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동시에 제시하는 청년농 유치 정책이 되면 좋겠다. 살기 좋은 농촌은 스마트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농 유치 정책이 따로 필요 없는 농촌을 일구는 것이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 발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농촌이 풍족하고 안정되며 풍부한 문화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왜 귀농 정책이 따로 필요하겠는가? 도시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생활 편의 시설과 문화 기반을 갖추고, 안정되고 풍요한 수입과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농촌이라면 농민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면서 동시에 자발적 귀농자의 발길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 농촌은 세대 간 문제도, 지역민과 귀농인의 구분도 따로 없는 그냥 사람 사는 동네로 자손만대 이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