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지를 임차하며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다 그렇겠지만 저녁에 아이들이 빨리 잠들어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잠드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이렇게 오래 걸려 재우고 나면 진이 빠져 해야 할 일은 뒷전이고, 휴대폰만 보다 지쳐 잠들곤 한다.
요즘 낮에는 너무 더워 새벽부터 아침까지 일을 하는데 일할 시간이 짧다 보니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어느 날은 무리해서 종일 일을 했더니 다음날까지 몸에 힘이 없고 축 처져 이런 게 더위를 먹은 건가 싶었다.
최근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경작 면적이 3만4820㎡가 됐다. 평수로 1만평이 조금 넘는다. 대부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임차한 땅이고, 올해 동네 어르신 두 분에게 두 필지씩 논을 임차받았다. 농어촌공사에서 임차한 땅은 임대료가 저렴한 대신 쌀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다. 그중 두 농지는 내가 사는 곳과 다른 면에 있고, 각각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관리가 쉽지 않았다.
임차하기 전 현장을 가보니 지대가 높아 물은 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계약하고 풀을 베보니 물이 나는 수렁논이었다. 겨우겨우 로터리까지 가능했지만, 논은 형편없는 꼴이 돼 있었다.
논 한복판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멀리 길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은 트럭을 발견했다. 혹시나 “논을 왜 이렇게 관리하냐?”, “농사를 왜 이렇게 짓냐?” 하는 꾸짖음을 들을까 잔뜩 마음이 쭈그러들어 있었다. 그분은 예전에 이 땅에서 농사를 짓던 분이자, 임차한 논 바로 옆에서 논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난 논에 물을 빼 볼 요량으로 논 귀퉁이에 물꼬를 내어 아래 논으로 물이 빠지게 해놨었다. 그런데 그쪽으로 물을 빼면 안 되고, 논 입구에 도랑으로 빠지는 수통이 두 개 있으니, 그쪽으로 물을 빼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어디 학교 나왔냐?”, “아버지가 누구냐?”, “여기 땅은 물을 머금고 있어서 도구를 쳐도 물이 낀다”며 그간 힘들게 농사지어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곤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해주고 가셨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 있는 산골짜기 밭의 묵은 풀을 깎을 때도 마찬가지로 인근 농민으로부터 “여기 밭을 부치냐?”로 시작해 “어떤 농사를 지을 거냐?”, “예전에 여기 농사짓던 사람도 젊은 사람이었는데 친환경 한다면서 비닐도 안 쓰고, 논도 안 갈고 농사지었다”라며, “고생하다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인천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낯선 동네에서 뭔가 꾸지람을 들을 거 같았던 내 마음과 달리 주변 농민들로부터 임차한 땅의 특징과 그 땅이 품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으니, 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주민들과의 관계부터 쌓는 것이 필요했겠다 싶었다. 또 농사는 잘 못 짓더라도 농지를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역할이겠다는 생각이 더불어 들었다.
모내기 전 동네 어르신이 몸이 아프다며 부치라고 내준 두 필지 중 한 필지는 농어촌공사를 통해 계약해야 하는 농지였는데, 여전히 농지 주인이 수수료 5%를 지급하게 돼 있었다. 작년부터 개선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변화는 없다. 어르신도 “하는 것도 없이 수수료만 가져간다”며 불만을 쏟아 내셨다.
농민은 자신의 농지뿐만 아니라 주변 농지와 사람들까지 함께 살핀다. 지금의 농정이 조금 더 현장을 닮아가길 바라며 다음 계약서에는 수수료 항목이 빠져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