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떫은감 낙과 피해 극심, 농민들 “이상기후 때문”

추운 봄 날씨에 이어 갑자기 시작된 6월 고온 유례 없는 대량 낙과에 원인 규명으로 골몰… 봄동상해 재해인정 앞두고, 중복 지원 문제까지 “뒷북 행정 반복, 기후재난 피해 오롯이 농민 몫”

2025-07-09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국내 최대 떫은감 주산지인 전남 영암 지역의 낙과 피해가 극심한 상태다. 지난 7일 찾아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한 떫은감 과원에서는 나무 한 그루에서 과실 30개를 세기조차 어려울 만큼 과실수가 적었다. 이날 떫은감 재배 농민 민동영씨(8000평 규모, 아천리)는 “낙과가 많아서 나무에 감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대부분 농가 상황이 그렇다”고 전했다.

보통 두 번에 걸쳐 자연 낙과하는 떫은감 특성을 고려한대도 올해 낙과는 유례없는 현상이란 게 농가들의 전언이다. 낙과 피해는 지난달 중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20농가가 모인 대봉감작목회가 잠정 집계한 바에 따르면 농가당 평균 피해율은 80~90%대에 이른다.

정철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처음엔 2차 자연 낙과인가 했는데, 멈추질 않고 계속 떨어졌다. 지금은 나무에 달린 과실이 없다시피 하다. 2023년 봄 저온피해 때보다 더 심각하다”라며 “농가 전반의 상황이 그렇고, 10개 대농가조차 10%도 수확하지 못할 것 같다고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전남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한 떫은감 과원에 있는 떫은감 나무. 최근 극심한 낙과로 나무에 남은 과실이 30개를 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상태다. 
2024년 수확기 떫은감 모습. 36년생 이하면 과실이 최대 1000개까지도 열린다.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 제공

농민들은 이번 낙과가 농업재해로 인정돼야 할 만큼의 피해라고 보나, 문제는 공교롭게도 재해 신청이 이미 한 차례 완료된 상태라는 점이다. 지난 5월 봄동상해(봄철 저온피해)로 금정면 350농가에 대한 피해 신고와 조사를 마친 지 약 한 달 만에 낙과 피해가 덮친 것인데, 봄동상해와 현재 낙과피해의 피해율 격차가 매우 크지만 앞선 피해조사 이후 피해율이 반영되지 못한 상태다. 농가들에 따르면 봄동상해와 낙과 피해율은 각각 10~28%, 80~90%다.

무엇보다 농민들은 이번 낙과 피해를 봄동상해와는 별개의 재해로 인식하고 정부가 새롭게 재해 신청을 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이 또한 간단하지 않다. 낙과 피해는 현재 수확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지만 △낙과의 원인을 규명하고 △낙과 피해를 재해로 인정할지 문제와 △재해로 인정되더라도 봄동상해와의 중복 지원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이번 낙과 피해가 일반적인 봄동상해 발생 시기나 증상과 다르고, 5월 한 달간 일교차가 큰 날이 지속된 데 이어 6월부터 찾아온 이상고온 때문이라 본다.

박춘홍 대책위 부위원장은 “규명하긴 어렵지만 이상기후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봄 날씨가 이상했다. 아침저녁엔 9℃ 이하까지도 떨어졌다가 낮엔 20℃가 넘어버리는 날씨가 반복됐다. 그러다 6월 들어 갑자기 더위가 시작됐다”라며 “증상이 봄동상해의 연장선은 아니다.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다. 봄동상해는 그 시기만 지나면 끝나고 그 뒤 열심히 관리하면 수확까지 쭉 문제없이 간다”라고 설명했다.

극심한 낙과 현상이 봄동상해에 따른 것인지, 이른 폭염 때문인지 혹은 그 밖의 원인인지를 놓고 산림청이 현지 조사에 나선다고는 하지만, 농민들은 봄동상해와는 별개로 낙과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농민들의 요구대로 낙과 피해를 새로운 농업재해로 인정한다고 해도, 재난지원금이 중복으로 지원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농업재해로 인정되면 대파대(농작물 피해가 심각해 재파종)나 농약대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대파대는 작물을 새로 심는 것이라 기작과 관계없으나, 농약대는 연간 1기작 기준으로 지원돼 1기작 내에 재해가 거듭 발생했어도 1번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이번 떫은감 낙과 피해는 1작기 내에서 또다시 발생한 피해다.

산림청 담당자는 “봄 저온피해는 현재 농식품부의 심의(심의에서 농업재해 인정 및 지원 규모 결정)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그 뒤 지금 농가에서 다시 재해로 주장하는 부분(낙과)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명확하게 원인을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재해라 해도 현 규정상 1기작이므로 중복 지원은 안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철 대책위 집행위원은 “봄동상해와 낙과는 현상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올해 감이 잘 열린 편이었음에도 중간에 춥다가 갑자기 뜨거워지는 날씨가 반복되는 바람에 발생한 이례적인 낙과 현상”이라며 “이상기후로 인한 대량 낙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봄동상해와는 별개로 낙과 피해를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박춘홍 대책위 부위원장은 “누가 봐도 기후재난인데, 행정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행정이 파악하기도 전에 새로운 재해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 아닌가. 그런데도 행정은 계속 파악만 하고 있으니 농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라며 “예전엔 재해라면 봄동해나 태풍 정도였으나 이제 너무 다양하고 확정하기엔 애매한 재해가 발생한다. 그러니 피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일단 즉각 지원 조치부터 하는 게 맞다. 연구·파악한 뒤 지원하겠다는 건 결국 농민을 방치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 8일 영암군(군수 우승희)은 현지를 방문한 산림청 담당자에게 봄동상해와는 별도의 농업재해 인정과 농약대 추가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고, 이에 산림청이 긍정적 답변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대책위는 9일 오후 전남 영암군의회와 전남도의회 의원들의 현장 방문을 앞두고, 떫은감 농가의 안정적 영농을 위해 영암군 차원의 약제비 지원(4회)을 촉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