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은 땅으로부터 어떻게 소외되는가

2025-06-29     황선숙(전남 무안)

 

황선숙(전남 무안)

마늘 뽑기 전에 참깨랑 들깨를 뿌리고 마늘을 뽑았다. 밭을 갈 기계가 없는 여성농민들이 파종하는 방법이다. 마늘쫑 꺾을 때 큰 풀을 외국인 인력들이 먼저 뽑았다. 이제부터 참깨가 자랄 때까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풀을 뽑아야 한다. 다행히도 참깨나 들깨는 잎이 넓어서 풀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고구마를 심으려고 고구마순을 가지러 갔더니, 그 마을 전체가 4월에 심어 8월에 고구마를 수확하는 동네라 고구마순이 이미 이랑을 덮게 자라고 있었다. 그 밭들을 보고나니 내 농사가 한심하게 생각됐다. 고구마 몇 단을 심기 위해서 반나절 근무를 마치고 이틀간 어둑해질 때까지 삽으로 이랑을 만들었다.

봄 농사로 심은 양상추는 정식으로 한 포기도 수확해 가지 못하고 사그라져 가는 중이다. 수확기가 가까워졌을 때 양상추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정점을 찍고 나니 빠르게 사그라져 갔다. 2월 28일에 정식한 양상추가 땅에 자리를 잡고,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땅맛을 알아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농민으로 사는 큰 기쁨이었다. 남들은 봄 농사 이제 시작인데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낼 수 있으니 판매만 잘 되면 괜찮겠다 싶었다. 5월 10일이 수확 적기라더니 상인은 오지 않았다. 봄 가뭄이라 성장이 더뎌서 더 늦게 오나 싶었다. 그 후로 상인은 몇 번 와서 둘러보고 속이 얼마나 찼나 잘라 보기를 반복했다.

차 소리가 날 때마다 작업하러 왔나 내다봤다. 외출해서 돌아올 때마다 작업팀이 와서 작업을 다 해갔기를 기대했다. 5월 말이 되자 마음을 내려놨다. 봄 농사 1만2000평에서 5톤 트럭 세 대 작업해 갔다고 한다. 농민도 망하고, 상인도 망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농민은 더는 일어설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됐다.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비닐하우스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부추 작업을 했다. 밤늦도록 부추를 다듬어 포장해서 일요일 아침 학교급식 부추를 배달하고 왔다. 해제에서 현경북초등학교까지 가는 15분, 어제의 강한 비로 온 들판이 새로 단장한 듯 깨끗했다.

일찍 심은 고구마·참깨는 무럭무럭 자라고 단호박은 비 오기 전 1차 수확을 끝낸 밭들이 많다. 아직 양파를 망에 담지 못한 밭도 있고, 작업한 양파를 그대로 둔 밭도 있다. 일찍 양파 수확을 끝낸 밭들은 바로 땅을 갈아 정돈되어 있다. ‘그래, 농사는 저렇게 지어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풀이란 풀은 다 자라 키재기를 하는 내 밭을 보며 나는 땅으로부터 소외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땅을 소외시키는 것인가를 내게 물었다.

누구에게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내게도 그렇다. 1월부터 생각지도 않은 하루 반나절 일을 시작했다. 말이 4시간이지, 더 많은 에너지를 내놔야 하는 열정페이 비슷한 일이다. 이 에너지 내 삶에 썼으면 내 삶이 나아졌을 것이다.

6개월이 되어 가니 이제야 어른들이 “니 농사를 어떻게 하고 나다니느냐” 물으신다. 전체가 풀밭이 돼버렸다고 답하니 농사를 접어야 한다고 그러신다.

귀농 27년, 결국 남은 건 내 노동력으로 하는 텃밭농사 뿐이다. 남의 손을 빌려 한 농사는 모두 빚으로 남았다. 그나마 내 노동력을 제대로 못 쓰고 나누니 내 밭의 꼴이 내 삶의 꼴과 비슷하다. 나는 지금 27년 농민으로 살아온 전환점 그 어디쯤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농민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