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농사 지었는데도 ‘유령 농부’…친환경 임차농의 현실

2025 한살림 농업살림 권역간담회 열려 친환경인증 포기·직불금 배제 사례 공유 임차농 보호 위한 서명운동 등 캠페인도

2025-06-19     김량규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량규 기자]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한살림 교육장에서 열린 ‘2025 한살림 생명농부 지키기 서울·경기권역 간담회’에서 생산자들은 임차농 피해 현황을 공유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한살림연합(상임대표 권옥자, 한살림) 생산자들이 정부의 실경작자 단속과 농지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친환경 인증과 직불금 정책 등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한살림 교육장에서 열린 ‘2025 한살림 생명농부 지키기 서울·경기권역 간담회’에서 생산자들은 임차농 피해 현황을 공유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임대차 계약서 없으면 실경작자로도 인정 못 받아”

강윤경 한살림 정책기획본부장은 “한살림 생산자의 65.7%가 임차농이지만 지주의 요청으로 인해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지주들이 계약을 꺼리는 이유는 「조세특례제한법」상 8년 이상 자경한 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규정 때문이다. 장기 임대를 줄 경우 직접 경작으로 인정되지 않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지주들이 단기 임대나 구두 계약 같은 비공식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임차농은 농업경영체 등록이 어렵고, 정부 지원에서도 소외되는 악순환에 놓이게 된다.

친환경농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친환경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작물에 따라 최소 1~3년의 전환기간 동안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장기간 안정적으로 확보된 농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계약서조차 작성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친환경 인증 유지도 어려운 구조다. 강 본부장은 “무계약 상태의 임차농은 경영체 등록도, 인증도, 직불금 수령도 불가능하다”며 “친환경 농사를 짓고도 제도 밖에서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유령 농부’가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인증 포기하고 자가소비만

간담회에 참석한 한살림 생산자는 “20년 넘게 농사지은 700평 밭이 있지만, 지금은 친환경 인증도 포기하고 직불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 임대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지주가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계약서를 써주지 않으려 한다. 결국 구두로 이어 가던 임대차 종료와 함께 내가 농사짓던 땅인데도 아무 권리도 남지 않게 된다”고 호소했다. 이어 “제 지인 중엔 친환경 인증을 받지 못하니 옥수수 같은 작물을 직거래나 자가소비용으로만 재배하는 분도 있다”며 제도 밖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김상통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실장은 “농지대장 중심의 농지 전산시스템 전환 이후, 임차농은 인증 포기나 직불금 미수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관행농은 땅을 옮기면 되지만, 유기농은 축적된 토양 자체가 자산이기 때문에 이동이 어렵다”며 “이건 단순히 한 해 농사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위기”라고 강조했다.

제도 개선 요구 이어져

이날 간담회에서는 친환경 임차농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도 제시됐다. 강윤경 본부장은 “친환경농업에 한해 임대차를 허용하도록 하는 「농지법」 개정안과, 친환경 농지를 10년 이상 임대할 경우 양도소득세 감면을 인정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현재 발의돼 있다”고 설명했다.

권옥자 한살림 상임대표는 “친환경농업은 국민의 생명권과 연결된 문제”라며 “농민들의 목소리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이 그런 변화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며 한살림이 임차농 보호를 위한 서명운동과 정책 제안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