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 ‘논’에서 춤추며 ‘농’의 세계와 연결되다
‘연결과 문화’ 화두로 연천에 모인 청년들 국내 첫 ‘친환경 논 디제잉 댄스파티’ 열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일상 속에서 ‘논’이라는 공간을 마주할 일이 없던 시민들이 경기도 연천군의 친환경 벼 재배 논에 모여 디제이의 신나는 전자음악 선곡(레이빙)에 맞춰 춤을 췄다. 논에서 광란의 ‘춤판’을 벌였던 시민들은 이윽고 농민의 지휘에 맞춰 그 논에 일사불란하게 모를 심었다. 시민들은 논에서 춤추고, 모를 심으며 농의 세계와 연결됐다.
‘논 레이빙’, 즉 디제잉에 맞춰 논에서 춤판이 벌어진 계기는 무엇일까? 농업·농촌·농민의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조직인 농업먹거리청년모임(농먹청)은 시민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농의 세계를 접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지난달 31일 연천군 군남면 임진여울영농조합법인(대표 박용석)의 논에서 ‘친환경 논 디제잉 댄스파티’를 진행했다.
풍물패 가락에 맞춰 논 주변에서 춤추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 ‘친환경 논 디제잉 댄스파티’는 숙련된 디스크자키(DJ)의 디제잉 하에 시민들이 손모내기 직전의 논에 들어가 춤을 춘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무후무한 실험이었다. 이날 DJ 역할을 맡은 조성우(별명 ‘싸이비’)씨는 논 바로 옆에 디제잉 부스를 차린 뒤,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적절하게 선곡하며 논에서 시민들이 계속 춤추도록 만들었다. DJ 조성우씨는 농민 주도하의 '초저비용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친환경농민들의 조직 '자닮'에서 유기농업 관련 기술 업무를 도맡고 있다.
마침 이날은 임진여울영농조합이 도시민들을 초대해 손모내기 및 반려모 나눔, 수원청개구리 청음회(수원청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행사) 등을 진행하는 도농교류 행사 ‘삼시 세끼 연천에 모심다’가 열리는 날이었기에, 도농교류 행사 참가차 임진여울영농조합을 방문한 경기지역 시민들도 농먹청 구성원들과 어우러져 함께 춤을 췄다. 조씨가 처음 디제잉을 시작할 땐 질퍽거리는 논바닥을 걷는 것도 어려워하며 어색해하던 시민들은, 어느 순간 리듬에 몸을 맡긴 채 팔과 몸통을 흔들고 있었다.
한편 농먹청은 이날 친환경 논 디제잉 댄스파티에 앞서 임진여울영농조합 벼 저장창고에서 2025 농업먹거리 청년 좌담회 ‘연결과 문화’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는 시민들이 농의 세계를 접할 수 있게끔 농촌과 도시에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는 기획자들을 초빙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좌담회 및 친환경 논 디제잉 댄스파티 등은 농먹청과 임진여울영농조합이 주관했고, 이 두 곳에 더해 (재)지역재단과 (재)아산한살림농민재단이 주최했으며,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가 후원했다.
‘도시쥐 정거장 실험 프로젝트’ 운영자 쥐프로(활동명)씨. 쥐프로씨는 도시에서의 획일적이고 경쟁에 시달리는 삶을 벗어나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도시 청년들을 위해 ‘도시쥐 정거장’, 즉 농촌에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주체들과의 협업하에 도시민이 ‘농’의 세계 및 ‘지역’을 다양하게 경험토록 하는 장을 만들고 있다.
쥐프로씨는 그 과정에서 강원도 춘천 농민들이 조성한 ‘논 썰매장’에 도시 청년들을 데려가 논 썰매를 태운 뒤 춘천 농산물로 만든 술을 시음하게도 했고, 난관을 뚫어가며 지역살이에 나선 청년들을 서울 성북구로 초대해 도시 청년들과의 이야기마당을 열기도 했다. 충북 제천에선 농촌 주민들과의 협업하에 개최한 음악회에 도시민들을 초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골쥐’와 ‘도시쥐’ 간 연결을 시도했다. 이러한 연결 시도를 통해 무연고, 무자본, 무기술의 도시 청년이 새로운 방식으로 삶의 경로를 재탐색해 볼 수 있게끔 노력 중이다.
쥐프로씨는 앞으로도 ‘지역’과 ‘청년’을 위한 연결고리 만들기 활동을 벌이는 파트너 그룹을 계속 발굴해 그들과의 협업을 늘려가고자 하며(국내외 막론), 농촌과 전체 세대를 잇는 ‘작지만 실속 있는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다른 이야기손님인 오승희 그레잇테이블 PD는 ‘밭에서 놀고 먹고 보는’ 예술 프로젝트를 실행해 온 문화기획자다. 오 PD는 작물이 자라나는 밭에 농민과 예술가, 요리사, 그리고 관객(시민)이 모이도록 만들어 함께 일하고, 먹고, 노는 실험을 진행해 왔다. 지난달 8일 경기도 양평 ‘베짱이농부’ 류점렬씨의 밭에선 작물이 자라기 전인 밭에 농민·예술가·요리사·관객이 모여 함께 호미로 밭을 갈고, 직접 갈았던 땅에 누워 대지의 기운을 느끼고, 밭에 전시된 그림을 관람하고, 함께 식사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감각적 경험으로 땅과 사람을 연결하자”는 취지 아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오 PD는 “그레잇테이블은 지금까지 경계를 넘어 다층적인 연결을 통해 밭에서 감각을 깨우는 일을 해왔다”며 “(밭에서의) 감각의 경험이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재해석되면 그 경험자들에게 문화적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한 관점 아래 2015년 이래 10년간 그레잇테이블의 실험을 진행해 왔다는 게 오 PD의 설명이다.
지난달 31일 연천에 모인 청년들은 ‘연결’을 화두로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춤을 췄고, 임진여울영농조합 무농약 쌀로 만든 빵과 논둑식물로 구성된 점심을 함께 먹었으며, 오직 생태논에만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의 울음소리를 해 질 녘 논에서 함께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땅과 연결됐고, 함께 모였던 서로가 연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