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전중, 현실화 어렵지만 "WTO 쌀 의무수입량 재설정"엔 공감②

농민의길·진보당, JA전중과 쌀 문제 논의 테이블에 트럼프 추가 개방 압력엔 “더 이상 농업 희생 안 돼” 쌀 부족 원인 ‘고온 피해’…노민렌과 확연한 인식 차

2025-06-03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ㅣ 일본 도쿄]

지난달 27~28일 8개 농민단체 연합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농길), 진보당 전종덕 국회의원과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일본을 찾았다. WTO 쌀 의무수입 재협상을 위해서는 한일 농민·의회 간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일본 농민단체와 주요 정당에 요청하기 위해서다. 농민 대표로는 정영이 농길 상임대표(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와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이 참여했다. 이번 행보는 1995년 이후 양국에서 지속된 WTO 쌀 의무수입으로 두 나라의 쌀 산업 기반 및 농민 생존권이 위기에 놓였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일본 방문단의 이틀 간 일정을 4회에 걸쳐 싣는다.

WTO 쌀 의무수입 재협상을 위한 공동 대응책 및 쌀 농업 기반을 지키기 위한 해법을 찾아 나선 일본 방문단이 방문 둘째 날(지난달 28일) 오전 도쿄 치요다구 JA빌딩에서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전중)와 면담했다.

JA전중은 일본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1954년 특별허가 공익법인(2019년 일반사단법인으로 전환)으로 설립됐으며, 506개 사업부문별 조직을 둔 JA그룹 대표 기구다. 정부와의 교섭 대표권, 조합원 교육·지도, 대외홍보 및 국제협력 등을 맡고 있다. 한국의 농협중앙회와 비슷한 조직이며, 정부 비축미 수매·유통(경제사업)은 JA전농이 관장한다.

이날 면담에는 토우마 노리카즈 JA전중 상무이사, 이치야 타쿠오 JA전중 협동조합연계리더가 대표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JA전중은 현재 일본의 쌀 부족과 쌀값 고공행진 사태에 대해 전날 방문단이 만났던 일본 농민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와는 다른 인식을 드러냈다.

현재 쌀 부족 원인을 정부 정책(쌀 감산) 실패로 보는 노민렌과 달리 JA전중은 지난 2년간 지속된 고온 피해의 영향이며, 쌀 의무수입 물량(총 77만톤) 중 밥쌀용으로 쓰이는 10만톤 역시 국내 쌀 수급에 영향이 없도록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무수입 물량에 대한 재설정은 필요하나 재협상 현실화는 어려움이 있다고 봤다.

의무수입 쌀에 대한 한일 공동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한국 방문단이 지난달 28일 도쿄 치요다구 JA빌딩에서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전중) 관계자들과 면담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면담에 앞서 토우마 JA전중 상무이사와 전종덕 국회의원(진보당)은 △두 나라 농업 환경의 공통점 △우루과이라운드협상(1986~1994년) 당시 NTC그룹(Non-Trade Concerns, 주요 농산물처럼 비교역적 가치(식량안보·환경 등)가 있는 대상은 자유무역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나라들)으로 함께 대처했던 경험 등을 바탕으로 교류·협력을 지속하자는 데 뜻을 함께했다.

전종덕 의원은 “한국 정부는 쌀 감산 정책의 이유로 쌀 생산 과잉을 들지만, 한국 농민들은 쌀 공급 과잉은 생산 문제가 아닌 수입쌀 때문으로 본다. 이에 30년간 지속된 WTO 쌀 의무수입 물량을 재협상할 때라고 생각한다”라며 “쌀 의무수입 문제와 농가소득 보전, 식량주권 수호를 위해 재협상을 포함한 쌀 정책에 대해 교류와 공동 대응을 확대해 나가길 바란다”라고 면담의 포문을 열었다.

면담을 시작하며 방문단은 △그간 일본 정부가 시행한 쌀 감산 정책이 현재 쌀 부족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WTO 쌀 의무수입 물량 재협상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JA전중에 물었다.

토우마 JA전중 상무이사는 “이번 쌀 소동의 원인은 2년 전부터 지속된 고온 피해 때문이다. 워낙 기후 피해가 커 수확 뒤 정미할 때 깨지는 등 먹을 수 있는 쌀 자체가 줄었고 이에 지금은 기후변동에 대한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라 판단한다”라며 “만약 2년 전 날씨가 좋았다면 이번 소동은 없었을 것이라 본다”라고 밝혔다. 즉 현재 쌀 부족 문제는 정책 문제가 아닌 기후재해로 발생했다는 취지다.

아울러 WTO 쌀 의무도입에 대해 일본 정부는 경작 전환으로 대응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며, 의무수입 쌀을 가공용·사료용·밥쌀용으로 구분해 관리함으로써 국내 밥쌀용 쌀 수급에 수입쌀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진보당 박형대 전남도의원, 전종덕 국회의원.

구체적으론 △국내 쌀 수요에 맞게 생산량 유지 △의무수입 쌀에 대한 철저 관리 △비축미 운용(매년 20만톤씩 5년 동안 100만톤 유지, 5년 이후 재고쌀은 사료용으로 전환)이다. 한국도 쌀 대신 타 작물 전환을 유도하는 점에선 일본과 비슷하나, 극히 일부의 수입쌀만 사료용이고 대부분은 가공용이나 밥쌀로 쓰는 것 등은 뚜렷이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국은 매년 40만8700톤의 쌀을 의무로 수입하는데, 이 중 3.7%만이 사료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과자·주정 등 가공용(대표적으로 즉석밥 등)과 밥쌀로 소비함으로써 국산 쌀의 자리가 뺏기고 있다는 게 박형대 의원과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어 토우마 상무이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내 쌀 소비가 줄다 보니 의무수입 쌀의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수입량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갖고 있다”면서도 “WTO 협정은 전 가맹국의 일치를 기본 원칙으로 하므로 재개정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실질적인 재협상 추진 의지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현재까지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표명한 사항도 없는 상태다.

박형대 전남도의원은 “공감하는 면이 있으나 의무수입량은 정해져 있지만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 한국에선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고 거듭 짚었다. 이어 “최근 트럼프의 추가 개방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일 교류·협력의 필요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라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물었다.

토우마 상무이사는 “일본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트럼프 통상 압력이 농축산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이번 관세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어, JA전중도 조금은 안심하고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과거 관세협상 때 자동차 관세를 지키기 위해 농업이 희생한 적이 있어 더는 농업이 희생되지 않도록 JA전중도 힘써 농업을 지키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정영이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 토우마 노리카즈 JA전중 상무이사,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한편 일본 쌀 부족 문제의 원인을 기후재해로 보고 있는 JA전중의 입장에 대해 정영이 농길 상임대표는 “기후변화는 앞으로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며 “기후위기 시대 지속 가능한 먹거리 생산을 위해 이후 양국의 농업 교류에서 JA전중은 어떤 역할을 할 의향이 있나”라고 물었다.

JA전중은 고온에 대응한 벼 품종 개량, 농업 부문 탄소 배출 저감 기술 보급 등과 관련해 교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토우마 상무이사는 WTO 체제에서 함께 대응한 경험, 농업정책에 대한 양국의 공통 과제 등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한국 농협과 협력해 이를 해결하는 데 여러모로 힘을 합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