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지키려면 “WTO 의무수입 중단”부터…한일 농민들 한목소리①

농민의길·진보당-일본 노민렌, 도쿄서 간담회 진행 쌀값·쌀 생산 감축·의무수입 물량 등 문제의식 일치 양국 쌀 문제 해법은 ‘의무수입 중단과 쌀 증산’뿐 식량주권 수호 위해 양국 간 연대와 협력 강화키로

2025-06-02     일본 도쿄 =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ㅣ 일본 도쿄] 

지난달 27~28일 8개 농민단체 연합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농길), 진보당 전종덕 국회의원과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일본을 찾았다. WTO 쌀 의무수입 재협상을 위해서는 한일 농민·의회 간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일본 농민단체와 주요 정당에 요청하기 위해서다. 농민 대표로는 정영이 농길 상임대표(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와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이 참여했다. 이번 행보는 1995년 이후 양국에서 지속된 WTO 쌀 의무수입으로 두 나라의 쌀 산업 기반 및 농민 생존권이 위기에 놓였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일본 방문단의 이틀 간 일정을 4회에 걸쳐 싣는다. 

일본 방문단은 첫 일정으로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이타바시에 있는 농민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를 찾아 간담회를 열고 한일 농업 현황 및 쌀 의무도입 문제, 일본 쌀 가격 폭등과 양국의 쌀 감산정책 등 관련 현안을 공유하는 한편 공동성명을 통해 향후 대응을 위한 협력(관련 기사 : “쌀 의무수입 철폐·식량주권 수호” 한·일 농민단체 연대 선언 )에 합의했다.

노민렌에서는 이날 간담회에 마이부로 하세가와 회장(온라인 화상 참여), 사사와타리 요시오 부회장, 후지와라 아사코 사무국장, 슈시 오카자키 국제부장, 카슈마타 마사시 <농민(노민렌 주간지)> 편집장 등 모두 8명이 참석했다.

양측은 먼저 자국 농업 현실을 공유하며 낮은 식량자급률, 농민 고령화, 후계농 단절, 생존권 문제 등에서 두 나라 농민의 현실이 매우 비슷한 상황임을 확인했다.

하세가와 노민렌 회장은 “현재 일본 정계의 큰 이슈는 ‘쌀 소동’이라고 하는 쌀 부족 문제다. 정부가 시장에 쌀 농업을 위임한 결과 일본엔 ‘쌀 농민 시급은 10엔(약 96원)’이라는 말까지 있다”라며 “65세 이상 고령 농민이 70%이고, 농가는 2020년보다 120만호가 감소해 53만호(2024년)다. 식량자급률이 38%라곤 하지만 자재 의존도를 감안하면 10% 정도”라고 전했다.

사사와타리 요시오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가운데)이 일본의 쌀 농가 감소(2020~2024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민철 농협중앙회 일본사무소 차장(왼쪽, 통역 담당),  후지와라 아사코 농민운동전국연합회 사무국장(오른쪽).

일본 쌀 부족 사태, 쌀 의무수입과 감산 정책이 원인
쌀 수입 더 늘리면 일본 쌀 농가 “괴멸 수준”이를 것

한국 측은 일본 쌀값 폭등의 원인과 WTO 쌀 의무수입량(일본은 매년 77만톤)이 일본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에 후지와라 노민렌 사무국장이 지난달 16일 일본 총리 관저 앞에서 ‘쌀을 지키자’라는 기조로 열린 집회 동영상을 보여줬다. 해당 집회에는 쌀 생산자는 물론 노조·여성단체·대학교수·국회의원(일본 공산당) 등이 참여해 일본 정부에 쌀 산업 보호를 촉구했다.

영상 시청 뒤 요시오 노민렌 부회장은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쌀 부족 상황을 만들어 놓고 미국에서 추가로 수입한다고 한다. 들으신 대로 쌀 소비자 가격은 매일 오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쌀이 남아돈다고 판단하고 감산 정책을 시행한 결과, 오히려 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요시오 부회장은 쌀 생산 감소는 1995년부터 지속된 쌀 의무수입 물량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77만톤 가운데 10만톤이 밥쌀용으로 쓰이는데, 쌀값이 폭등하고 생산마저 부족해지자 밥쌀용쌀 수입 한도(10만톤)를 늘리려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쌀이 부족한 상황을 미국산 쌀을 들여오는 기회로 삼고 있다”라고 직격했다. 현재 상황에서 쌀 수입을 더 늘리면 감소해 온 쌀 농가 수가 “괴멸하는 수준까지 이를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요시오 부회장은 “쌀 부족은 수입이 아닌 국내 증산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트럼프 관세 압력에 쌀을 바치는 일은 절대 해선 안 된다”라며 “아울러 지금의 낮은 쌀 가격으론 증산할 수 없으므로 미국·유럽 등 여러 나라가 추진하는 농민 소득 보장책을 확보하는 쪽으로 농업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노민렌은 이를 위한 재원 역시 충분하다고 본다. 8조7000억엔에 이르는 일본 정부의 군비 예산을 농업 예산(2조엔)으로 돌리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세가와 노민렌 회장도 일본의 ‘쌀 소동’ 사태의 원인을 덧붙여 설명했다. 하세가와 회장은 “코로나로 인해 쌀 가격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때 정부가 수요에 맞춰 생산하라는 취지로 10ha(2021년 6만5000톤, 2022년 3만5000톤)를 줄이도록 했다. 쌀 생산량으로 치면 약 50만톤 정도다. 그것이 이번 쌀 소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한국 방문단과 일본 측 농민운동전국연합회 관계자들이 공동성명에 합의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WTO 쌀 의무수입 중단부터…”

한국 방문단은 기후위기에 따른 쌀 생산량 감소, ‘쌀 농민 시급 10엔’, 일본 정부의 쌀 재협상 움직임, 일본 쌀값과 비축미 유통 구조 문제 등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지난해 고온 피해로 인한 쌀 생산량 감소에 대해 한국의 현장 농민들이 정부 발표보다 15% 적게 생산됐다고 파악하듯, 일본 농민들도 일본 정부 주장보다 20% 적게 생산됐다고 봤다. ‘쌀 농민 시급 10엔’에 대해서는 하세가와 회장이 “2020~2021년엔 10엔, 2023년엔 63엔이었다. 이것으론 생활할 수 없으며, 이에 신규 영농인이 아예 없다”라고 일본 소농의 상황을 전했다.

노민렌에 따르면, 쌀 재협상과 관련해 최근 일본에선 전체 의무수입 물량(77만)은 유지하되, 나라별 배정 물량을 조정하자는 논의가 진행된 바 있으며, 전체 물량 감축에 대한 시도는 전혀 없는 상태다. 미국은 현재 77만톤 외에 7만톤을 추가 수입하라고 일본을 압박하고 있으며, 미국쌀은 일본 의무도입 물량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배정 물량은 보통 나라별 쿼터제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일본 정부가 임의로 정하고 있고 미국에 우선해서 수입 물량을 많이 배정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에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이 “한국 농민들은 충분히 쌀을 자급할 수 있으므로 현재 40만8700톤(한국 쌀 의무수입량)을 더 이상 들여올 필요가 없으며 의무도입 물량으로 농민들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데, 노민렌은 77만톤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라고 물었다.

하세가와 노민렌 회장은 “의무수입은 중지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농림수산상이 쌀 소동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전종덕 의원의 질문엔 “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자 (쌀 소동이) 자작극이라고까지 보고 있다”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쌀값에 대해서는 계속 증가하는 생산비와 쌀 농가 적자경영을 보전하지 않는 문제를 짚었다. 하세가와 회장은 “보통 쌀 60kg 생산비를 1만6000엔으로 보나 생산자 입장에선 1만8000엔으로 파악한다”라며 “그나마 이마저도 상승한 연료비나 농약비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다. 또한 수년간 이어진 적자경영에 대한 보전도 반영돼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측은 쌀값 폭등과 관련한 일본 쌀 유통 현안(하단 박스 기사 참조)에 대한 질의응답까지 마친 뒤 양국 쌀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각 정부의 쌀 정책 때문이란 공통의 인식을 공유했다. 아울러 간담회 마무리 직전 한국 측이 준비해 간 ‘쌀 의무수입 철폐·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한일 농민단체 간 연대를 선언한 공동성명에 전격 합의했다.
 

비축미 풀어도 쌀값 고공행진 계속, 왜?

지난해부터 일본 쌀값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쌀 농가는 생산비는 물론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자경영 구조를 오랜 기간 이어 왔다. 이에 신규 후계농조차 끊긴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찾은 도쿄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선 5kg짜리 쌀 1봉지 가격이 한국의 2~3배(약 4만여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한 가구에 1봉지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쌀값은 농가와는 먼 이야기다. 이에 대해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한국 방문단이 묻고 노민렌이 답한 내용을 싣는다.

박형대 전남도의원(진보당) : 노민렌은 쌀 부족 사태를 쌀 감산 정책과 쌀 개방으로 인한 쌀 농업 구조 축소로 본다. 우리가 얻은 정보로는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전중)가 쌀 유통구조를 독과점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하세가와 마이부로 노민렌 회장 : 쌀값이 올랐을 때 정부가 비축미를 풀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정부가 쌀값에 웃돈을 얹어 파는(전매하는) 주범이다. 작년에 수매할 때 쌀 가격이 60kg당 1만4000엔이었는데 이번에 쌀값이 올랐을 때 2만2000엔에 팔았다. 물론 JA전중이나 출하업자가 중간 유통마진을 취하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상한 숫자다.

김용수 농협중앙회 일본사무소 소장 : 일본은 정부 비축미가 91만톤으로 정해져 있다. 매년 그 양만큼 맞춰 비축하며 수매는 없다. 그 비축량을 이번에 푼 것인데 정부가 사들인 가격보다 비싸게 판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정부가 판매한 물량의 90%가 전농(JA전중의 경제사업 조직, 한국 농협중앙회의 경제지주격)에 들어갔고 그 조건은 1년 안에 동일 품종으로 정부가 다시 사들이는 것이었다. 전농으로서는 1년 뒤에 정부에 다시 쌀을 내놔야 하니, 시장에 빨리 내는 것을 망설였던 것이다. 이번에 추가로 푸는 3000만톤에는 그 조건을 없앴다.

전종덕 국회의원(진보당) : 전농이 가진 물량을 일단 시장에 풀어야 쌀값이 잡히지 않겠나?

김용수 소장 : 전농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축 창고에 있다. 시장에 못 나가는 이유는 그 창고가 일본 북부지방에 있는 데다, 일본은 쌀을 기본적으로 현미로 유통한다. 현미를 각 지역에 보내 가공해 소매시장까지 가야 한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비축미를 푼 적이 있긴 하나 이번처럼 비축미를 대량으로 푼 것도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물류가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 한국 정부와는 반대인 것 같다. 한국은 쌀 20kg을 20만원에 사서 8만원에 팔고 가공기업엔 2만원에 판다. 반의반 값이다. 현재 한국 쌀값 폭락은 정부의 저가 정책 때문으로 고착화됐다.

하세가와 회장 : 지금은 1만4000엔에서 1만700엔에 방출하려고 하고 있다. 비축미가 떨어지면 수입쌀을 먹으면 된다고도 말한다.

박형대 전남도의원 : 두 나라 쌀 문제의 핵심은 모두 정부 정책의 혼선인 것 같고, 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의 대응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전종덕 의원 : 일본 정부가 쌀 소동과 관련해 해결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쌀이 부족하니 공급을 늘리기 위해 비축미를 푼 것인데, 그 비축미가 소비자들한테 가지 못하고 90%를 전농이 창고에 갖고 있다는 것이잖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인가?  여기에 최근 일본 정부가 전농이 문제이니 전농을 거치지 않고 직접 민간에 유통하겠다는 언급도 한 것으로 안다. 

사사와타리 요시오 노민렌 부회장 : 일본 정부 입장이 바뀐 이유는 곧 참의원 선거가 치러져서다. 쌀 가격이 이렇게 높은 상태론 선거에서 이길 수 없어서다. 5kg에 2000엔까지 낮추겠다고 한다. 실제로 엊그제 진행된 수의계약에 19개 기업이 참여했는데 모두 대기업이다. 결국 원활한 쌀 유통을 위해선 소매상들에게 쌀이 가야 하는데 쌀 가게엔 전혀 쌀이 가지 않고 대기업 위주로 가는 건 문제다. 이대로 가면 작은 쌀가게는 전부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