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 50] 작지만 아름답고 따뜻한 화천오일장

2025-05-18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어느 농가의 앞마당 같이 작은 화천오일장. 사진 류관희 작가

 

화천오일장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오일장 중의 하나다. 지리산에서는 이미 끝난 봄나물들을 더 연장해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즉 화천은 나처럼 남쪽에 사는 사람들에겐 짧아서 아쉬운 봄을 길게 늘려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찾는 지리산을 두고라도 일부러 길을 나설만한 곳이다. 화천으로 가는 여행길은 현란한 공연장의 중심에서 정신없이 즐기는 예술과도 같은 느낌으로, 녹색의 산과 계곡들이 가는 내내 환성을 지르게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즈음해서 화천엘 간다면 산나물축제를 하고 있는 농장 ‘산방환담’에는 꼭 가봐야 한다. 여러 해 벼르기만 하다가 다녀온 곳인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정도다. 7만평의 산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곳인데, 눈을 두는 곳마다 산나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미칠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전에 도착하도록 일찍 가서 산길을 돌며 수십 가지의 산나물들과 만나 놀다, 작지만 소중한 ‘산방환담’이란 간판이 붙은 곳으로 가면 다시 놀란다. 방금 전 만나고 온 산나물들을 여러 방법으로 조리해낸 음식들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밀기 부끄러운 1만원 지폐 한장으로 배부르게 밥을 먹고 후식도 먹을 수 있으니 운이 좋다고 말할 수밖에. 구입을 원하면 현장에서도 가능하고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그 넓은 곳을 부부만의 노력으로 꾸려 가시는데 그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게 된다.

1시간 거리에 있는 춘천에서 하루 자고 다시 이른 아침에 화천의 오일장으로 갔다. 화천의 오일장은 아주 작다. 몇 걸음만 옮기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작은 장이지만 제법 매력이 있는 곳이다. 오일장을 다니면서 내 나름대로 세운 원칙은 아침은 장터에서 점심은 지역의 음식점에서 먹는다는 것이다. 보통은 국밥을 먹는데 이곳에서는 장터 한가운데 펼쳐진 잔치국수로 아침을 해결했다. 주문하면 바로 국수를 삶기 시작해 내주는 방식이라 시간이 좀 걸린다. 기다리는 모습이 딱했던지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팔고 있던 쑥개떡을 몇 개 내준다. 큰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절로 하게 된다. 옆에서 팔고 있는 떡볶이와 어묵탕도 먹고 싶지만 점심을 위해 참는다.

 

화천군 여자축구단 선수들이 시합 전 오일장에 떴다. 사진 류관희 작가
밀가루 없이 옥수수 100%로 만드는 올챙이 닮은 모양의 올챙이국수를 팔아요, 화천오일장에는. 사진 류관희 작가

 

몇 걸음 옮기다 고등학생 같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오일장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연령대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니 화천여자축구단 선수들이란다. 오후에 시합이 있는데 장날이라 장 구경하러 나왔다고 했다. 작은 오일장이나 시장의 희망이 바로 장터를 찾는 이런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한다.

가게가 아닌 좌판에서 올챙이국수를 파는 분을 만났다. 무조건 산다. 한 바퀴 돌면 다 팔리고 없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좋아하지만 질리지 않고 며칠이라도 올챙이국수로 계속 끼니 해결을 하실 수 있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다. 수리취를 가지고 나온 상인도 있다. 1관씩 자루에 담아 파는데 사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지만 바로 귀가하지 못할 일정 때문에 포기한다. 하지만 같이 간 동료에게 구입을 권하고 수리취떡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만들면 나에게도 ‘한 입만’ 맛보여주라고 수작을 부린다. 이틀 후에 들고 온다니 수리취떡을 곧 먹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설레면서 벌써 입맛을 다신다. 쑥떡하고는 좀 다르게 더 맛있는 떡이기 때문이다. 설탕이나 단 것을 넣지 않고 소금만으로 찐 수리취떡을 온 국민이 알아야 하는데….

 

수리취는 뒷면이 솜털로 하얗게 보인다. 쉽게 굳지 않고 상하지 않는 떡이 수리취떡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포장이 재미난 건고사리는 올해 새로 준비한 햇고사리다. 사진 류관희 작가

 

내륙이라 생선전은 부실하지만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비닐봉지 없이 신문지에 싼 마른 고사리도 있고, 어느 좋은 날 마실 술 담글 누룩도 있다. 참두릅과 개두릅도 있고 얼마나 달고 향긋할지 짐작이 되는 불미나리도 있다. 생나물과 묵나물이 혼재된 좌판이 눈길을 끌고, 어버이날이라 받은 누군가의 어머니 옆에 놓인 꽃다발과 선물도 같이 보인다.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을 놓고 파는 상인에게서 반찬을 사는 남자 노인도 보인다. 밥을 해 드시는 모양이니 다행이다.

장터 안에 있는 노인복지센터 1층엔 무료급식을 하는 식당도 있고 3층엔 화천군어린이급식지원센터가 있다. 지자체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먹거리를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는 곳이다. 어린이급식지원센터 대표가 추천한 시장 안 식당에서 김치찜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떠난다. 돌아오는 내내 다시 방문할 의사 100%라고 생각했다.

 

 

밥을 해먹어야 농촌도 산다. 이제 음식은 여자들만의 노동으로 상에 오르지 않는다. 사진 류관희 작가
이런 장면을 만나면 지자체에 민원을 넣고 싶다. 햇빛 가리고 비를 피할 수 있을 가림막 좀 설치해달라고. 사진 류관희 작가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