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위기 대응은 읍·면 중심으로

2025-04-27     하승수 대표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역소멸’은 주로 비수도권 농촌지역과 중소도시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그 지역 전체가 소멸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소멸’이라면 대한민국 전체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인구도 감소추세에 접어들었고, 고령화 속도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아지면서 대한민국 인구는 45만6000명 줄어들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이었는데, OECD 국가 중에 합계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소멸 위기라고 하면 좋겠는가?

‘지역소멸’ 대신 ‘지역위기’

그래서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보다는 ‘지역위기’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위기’인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이기도 하다.

지역이 침체하고 지역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극단적인 수도권 일극 집중이 높은 부동산 가격과 삶의 질 저하, 그리고 출산율의 저하를 낳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반대 측면의 모습이 비수도권 농촌지역의 인구 유출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이것은 이번 대선에서도 중요하게 논의돼야 할 주제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개발 공약이나 현실성없는 구호만 난무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의 정책으로 지역의 위기가 심화되기만 했고 수도권 일극집중체제가 강화되기만 했다면, 정책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중 하나가 지역위기 대응 정책의 단위를 시·군에서 읍·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해 온 많은 정책들은 시·군에 계획수립권을 부여하거나, 시·군에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지역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제는 큰 틀의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위기 대응 정책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이 생활권이고, 면이 살아야 전체 군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현재 인구감소가 가장 심각한 곳은 농촌의 면 지역이고, 비수도권의 상당수 읍 지역도 비슷한 실정이다. 전국의 1177개 면과 비수도권 지역의 읍들이 활력을 찾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부딪히고 있는 위기적 상황을 해소하는 길이다. 2025년 3월 1일부로 폐교 및 유촌초등학교로 통합이 결정된 유촌초 오음분교(강원 화천군 간동면)의 정문이 닫혀 있다. 한승호 기자

지역위기 대응정책, 읍‧면 중심으로 전환해야

지역위기 대응 정책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이 생활권이고, 면이 살아야 전체 군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현재 인구감소가 가장 심각한 곳은 농촌의 면 지역이고, 비수도권의 상당수 읍 지역도 비슷한 실정이다. 그리고 면과 읍의 인구가 줄어들면, 결국 그 지역의 중소도시 인구도 줄어들고, 지방 대도시의 인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을 반전시키려면, 결국 면의 인구가 유지되고 늘어나야 한다. 면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중심부인 읍도 활성화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군 전체가 활성화되고 인구도 늘어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군청과 시청의 공무원들이 계획을 짤 것이 아니라, 면과 읍의 주민들이 참여해서 계획을 짜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면의 관계인구를 증대시키고, 귀향·귀농·귀촌을 활성화할 것인지’, ‘우리 면의 의료와 돌봄은 어떻게 하고, 교통문제는 어떻게 하며, 학교는 어떻게 살리고, 주택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등등에 대해 현실성 있고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려면 지역을 잘 아는 주민들이 참여해서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용역업체, 외부전문가에게 맡기거나 공무원들이 주도해서 각종 계획을 수립해봐야 ‘탁상 계획’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읍·면 자치권 확보 없이는 농촌이 부딪히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가기는 어렵다. 농촌이 미래가 없으면, 대한민국도 미래가 없다. 그런 절박함이 모이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전남 화순군의 한 면 소재지 풍경. 한승호 기자

읍‧면 단위로 접근해야 할 목록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중앙정부의 정책을 바꿔야 하는 것들이 많고,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노력할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첫째, 지방분권균형발전법이나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을 시·군·자치구 단위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를 읍·면 단위로 지정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이 제대로 보이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 지도 나올 수 있다. 현재 인구감소가 가장 심각한 지역은 농촌의 면 지역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인구감소 농촌 지역의 기초생활서비스 확충방안(2023년)’ 연구에 따르면, 인구 3000명 선이 무너지면 의료시설이 문을 닫고, 2000명 선이 무너지면 식당, 제과점, 세탁소 등이 문을 닫으며, 1500명 선이 무너지면 미용실 등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인구감소 지수도 읍·면별로 산출해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둘째, 중앙정부가 매년 1조원씩 배분하고 있는 지방소멸 대응기금의 배분단위를 읍·면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은 시·군별 공모사업 방식으로 배분되고 있는데,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지역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또 다른 전시성 사업이나 탁상정책에 예산만 낭비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지방소멸 대응기금의 신청 단위를 시·군이 아니라 읍·면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읍·면은 주민들의 참여 속에 계획을 수립하여 기금을 신청하고, 시·군은 이를 취합해서 중앙정부에 전달하는 정도의 역할만 해야 한다.

셋째, 읍·면에 공간계획, 생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과 재정을 보장해야 한다. 읍·면별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지역순환 경제를 구축하며, 인구를 유지·증가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발전계획, 공간계획은 이런 읍·면의 계획을 바탕으로 상향식으로 수립돼야 한다. 농촌경제사회서비스법에 의한 ‘시·군 계획’의 수립도 읍·면 계획을 우선 수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향식으로 ‘시·군 계획’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고향사랑기부금도 읍·면별로 모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고향사랑기부금의 모금실적은 매우 부진한 상황이다. 농촌의 군 지역 평균모금액도 4억7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답례품 비용, 각종 홍보 비용 등을 감안하면 고향사랑기부금이 실제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모금실적이 부진한 원인 중 하나가 시·군 단위로 고향사랑기부금을 모금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이 든 세대의 경우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읍·면이나 마을이다. 고향사랑기부금을 도입할 때 참고를 많이 했던 일본의 경우에는, 아직도 읍·면(정·촌) 단위의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있고, 고향사랑기부금도 그 단위로 모금이 가능하다.

따라서 고향사랑기부금법을 개정하여, 기부하고 싶은 읍·면을 지정해 기부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읍·면별로 주민대표기구가 심의하여 기부금을 읍·면의 생활여건 개선과 지역사회 활성화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고향사랑기부금의 모금도 활성화될 수 있다.

다섯째, 농촌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읍·면별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농촌지역에 빈집은 늘어나지만, 막상 귀농·귀촌·귀향인, 면 지역 공공기관 근무자, 청년, 농촌 유학 가족 등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읍이나 인근 도시에 거주하면서 면 지역으로 출퇴근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농촌 노인들의 주거와 돌봄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주거와 돌봄 서비스를 통합하는 접근방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면 지역에 공공임대주택, 사회주택 등을 공급하고 지역사회가 이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령자 복지주택, 청년 신혼부부 행복주택, 청년 공공임대 주택사업 공급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전국적으로는 아직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다. 농촌 마을에서 늘어나고 있는 빈집들을 정비하고 활용하는 대책도 시급하다.

여섯째,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읍·면의 자치권 보장이 지역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국의 1177개 면과 비수도권 지역의 읍들이 활력을 찾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부딪히고 있는 위기적 상황을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일을 중앙정부 공무원들이 할 수 있겠는가? 도청이나 군청의 공무원들이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농촌 실정에 맞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단위는 읍·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읍·면의 주민대표기구를 제대로 세우고, 읍·면장 임명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임기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런 얘기들이 정치에서도 논의되고 채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농촌에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