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㊽] 부산의 경동시장이라 부르고 싶은 구포시장의 모태, 구포오일장

2025-03-23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구포오일장 전경, 그 규모가 느껴진다. 사진 류관희 작가

부산 구포역 인근으로 강의를 다닌 적이 있었다. 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걸어가도 좋을 거리에 구포시장이 보였는데,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이 갈 때마다 내 눈에 들어왔었다. 오일장이 서는지 알아보니 3, 8일에 열리는 구포장이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다고 느껴서 그런지 3월의 오일장 투어는 이른 봄맞이라도 가듯 자연스럽게 구포로 정해졌다.

구포장의 시작은 400여년 전인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역사가 길어서인지 늘 사람들이 넘쳐난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평소의 두 배 가량인 7만명을 넘나드는 방문객이 온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상설시장 주차장 옆에는 주차타워도 있어 차를 가지고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설시장은 잘 정리된 모습으로 새벽부터 분주한 상인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지인들을 만나기 전 시장을 대충 한 바퀴 돌아보고 동행한 사람들과 시장 안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몸도 따뜻해지고 배도 불러 다시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는데 힘이 나는 것 같다. 온갖 종류의 식재료들을 끌고 다니는 장바구니에 마구 담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애를 써야 했다. 상설시장을 대충 둘러본 후 본격적으로 오일장을 가보기로 한다.

장날마다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자기 자리에 마치 자기 가게처럼 좌판을 벌리고 앉아 지나가는 소비자를 부른다. 사진 류관희 작가
내가 파는 물건은 손님이 편하게 미리 손질해서 판다. 사진 류관희 작가
모종도 심어야 한다. 사진 류관희 작가

상설시장 외곽으로 이어진 마을 골목을 따라 오일장이 선다. 좁은 골목이라 서로 부딪칠까 걱정돼 몸을 옆으로 돌려 걸어야 하는 작은 골목에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계신다. 용돈벌이를 위해 조금씩 식재료들을 들고 나온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다 팔아도 5만원 남짓할 물건들을 펴놓고 계시니 다 사드리고 싶어진다. 이런 날 나는 내가 부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어서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모았어야 하는데 하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골목을 돈다.

3월 중순이라 봄나물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은 실패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보이는 초벌부추, 곰보배추, 봄동, 돌나물, 민들레, 냉이, 달래, 쑥, 원추리, 땅두릅, 방풍, 쪽파, 취나물, 머위, 대파, 겨울초(유채), 더덕, 씨앗용 생강 등 제법 많은 종류의 채소들이 있어 위안이 된다. 하동에서 왔다는 머위는 정말 딱 먹기 좋은 크기다. 잎이 500원 동전만 하고 줄기가 아주 선명한 붉은색이라 구매욕이 마구 솟는다.

부산이라 넘쳐나는 해산물. 사진 류관희 작가
다른 장들과는 달리 생선을 파는 상인이 정신을 못차리게 주문을 하는 손님들이 있는 곳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구포시장은 북쪽에 위치한 부산의 행정구역 안에 있으니 돌다보면 당연히 해산물들이 흔하게 보인다. 상설시장 안의 수산물가게와는 다르게 오일장 좌판에는 자연산 전복이 여기저기 보인다. 손바닥 크기 전복 한 개의 가격이 5만원을 호가하는데도 막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번 장에서 전복은 포기하고 자연산 미역만 조금 샀다. 생미역, 곰피, 생다시마를 산더미처럼 놓고 파시는 곳과 달리 이 가게의 미역은 살이 좀 도톰하고 가운데 줄기가 부드럽지만 그 자태가 당당하다. 어서 집으로 가서 초회를 하거나, 무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끓는 물에 데치면 점액질이 나와 손을 끈끈하게 할 것이다. 아침에 바다에서 바로 채취해 가져왔다는 홍해삼도 몇 마리 샀다. 귀한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이 자꾸 충동구매를 하게 만든다. 블랙홀처럼 빠져들게 하는 오일장의 마력이라 할 수 있다.

구포오일장에 찾아온 소비자들이 줄을 지어 좌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오일장 골목 바로 옆에 빌라나 아파트도 있지만, 골목을 걷다보면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집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눈치라도 챈 듯,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그 손에 장바구니가 들려있다. 부럽다. 지리산 골짜기에 살다보니 장터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 부러움이 태산만 하다. 장바구니 무게도 태산만 하다고 느낄 무렵이 되니 허기도 태산만 해졌다.

상설시장 안에 70년째 이어온다는 국수집이 있어 국수 한 그릇씩 먹고 귀가를 위해 시장을 떠나왔다. 하루에 다 돌기 어려운 규모의 시장이어서 몇 번은 더 와야 익숙해질 것 같은 느낌을 안고 돌아오는데 이상하게 서울의 경동시장을 갔던 날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부산의 경동시장이라 별명을 붙였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