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법적 지위, 여성농민 권리도 남태령을 넘자

2025-03-09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지난 1908년, 미국의 여성섬유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불에 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빵(여성노동자의 생존권)과 장미(여성의 참정권)를 구호 삼아 거리로 나왔다.

그로부터 117년이 지났지만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를’이라는 구호는 202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누적된 차별과 새로운 부정의에 분노하며 투쟁 최전선에 서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혐오는 극우와 결합하며 날로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내란동조세력의 난입과 폭동사태 그리고 그를 지지하고 엄호하는 정치세력을 보며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민주주의를 얼마나 후퇴시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2024년 12월 21일 밤 남태령에서 농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농민들의 어려움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한달음에 뛰쳐나온 수많은 사람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시민들의 자유발언은 차별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투쟁을 연대하는 내용이었다. 농업문제와 농민문제를 잘 몰랐다고 미안해하며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듣는 정체성과 관련된 단어들은 농민들 역시 처음 들어보는 단어이자 잘 모르는 단어들이 대부분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서로의 차별에 공감하며 그날 밤 서로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기어이 남태령을 넘었다.

남태령 투쟁을 지난 지금, 여성농민의 권리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또 계급적으로는 농민으로 살아가는 여성농민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은 이중삼중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후퇴된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직업적 지위마저 온전히 갖지 못한 채 가부장적인 농촌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농업의 형태가 다변화하면서 여성농민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국가든, 농촌사회든, 기관이든 어디서든 이야기한다. 문제는 중요한 존재라고 이야기만할 뿐 여성농민의 법적 지위 문제와 관련해선 묵묵부답이라는 점이다. 전체 농민 중에서 여성농민이 차지하는 수는 50%가 조금 넘고, 그 50%가 되는 농민들이 여전히 법적 지위를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여성농민 법적 지위 획득 문제는 여전히 여성농민만의 문제이자, 소수의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여성농민으로 살아온 지 27년째, 쉼 없이 주장하고 싸우고 있지만 여성농민 법적 지위 문제와 관련 범 농업계가 함께 싸운 경험은 전무하다. 여성농민의 권리가 높아지는 것이 남성농민의 권리를 빼앗는 문제가 아닐 텐데, 여전히 여성농민만의 문제로 남아 있다. 여성농민 법적 지위 해결의 문제는 농민의 권리가 높이지는 문제이다. 법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절반의 농민이 그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결국은 전체 농민들의 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여성농민의 권리와 관련한 그동안의 주장을 농민운동 진영이, 그리고 농업계가 모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중요하고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살펴봐야 한다. 농민들의 권리는 여전히 남태령을 못 넘고 있고, 여성농민의 법적 지위와 농촌지역의 성평등 문제 역시 여전히 소수자의 목소리를 통해 떠돌고 있다.

모두가 여성농민에 대한 차별을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때이다. 그래야 모두 함께 남태령을 넘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꿈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