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논이 완전한 상품이 될 때 생기는 문제점들

2025-03-02     이민재 국립목포대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 전임연구원
이민재 국립목포대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 전임연구원

현재 한국의 논과 쌀 감축 논의가 과도한 가격 논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남은 쌀은 얼마고 투입되는 정부 재정이 얼마며, 손실액까지 추정해 공표한다. 그리고 ‘남아도는’ 쌀의 배경으로 해마다 주는 1인당 소비량을 보여주며 쌀 소비량이 줄어드니 쌀 생산량도 감축하고 논도 감축하자는 뉴스가 추수 후 연말연시에 반복해서 나온다.

그러나 문화와 민속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쌀과 쌀을 재배하는 논에는 상품의 논리, 가격의 논리와 다른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있다. 사실 정부가 가격의 논리로 쌀과 논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식민지기 조선의 쌀이 겪은 역사가 떠오른다. 식민지기 조선의 쌀과 2025년 현재 한국정부의 논과 쌀 생산 감축 정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 있으나, 공통의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1890년대부터 1942년 쌀 공출이 본격화될 때까지 조선의 쌀은 일본에서 잘 팔리는 쌀이 되기 위해 재배·가공방식을 포함해 유통망 개척 등을 활발히 진행했다. 그 결과 조선의 쌀 이출량은 급증해 193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 전체 쌀 공급량의 10%를 차지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식민지기 조선에서 가장 성공한 상품은 분명 쌀이었다.

조선 쌀의 성공과 반비례해 조선 내 쌀 소비량은 줄었다. 당시 쌀 소비량이 지역·계절·경제력·성별 등에 따라 편차가 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내 쌀 소비량 감소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과 사람들에게서 더 심했을 것이다. 쌀을 재배하는 농민의 쌀 소비량도 줄어들었다. 식민지기 조선 농민의 70% 이상이 자소작농, 소작농이었다는 점과 쌀이 교환가치가 가장 높은 작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농민이 ‘인간다운’ 일상을 조금이라도 영위하기 위한 행위, 예를 들어 손님을 접대하고 제사를 지내며 명절을 쇠기 위해서는 쌀이 필수품이었다. 즉, 일본에서 조선의 쌀이 더 잘 팔릴수록 조선 농민의 일상에서 쌀은 점점 더 멀어졌다.

나는 식민지기 조선의 쌀과 2025년 한국의 논과 쌀 감축 사이에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두 사건의 시대는 너무나 다르다. 그렇지만 쌀과 논이 지니는 관계망을 도외시하고 가격의 논리에서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점은 같다고 본다. 다른 부분이라면 식민지기 쌀은 많이 생산해서 더 팔아야 하는 상품이었고 논을 그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바라본 데 반해 현재의 쌀과 논은 계륵 같은 상품으로 여긴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정부의 시선과 달리 현재에도 쌀과 논은 큰 가치를 지닌다.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지만 쌀은 여전히 단일 먹거리로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음식이다. 쌀로 만든 각종 음식은 한국인의 일상과 각종 의례에 빠지지 않는다. 밥, 떡, 식혜, 막걸리, 청주 등이 없는 식탁과 결혼식 뷔페, 장례식장, 제사, 돌잔치 등을 상상할 수 있을까?

또한 쌀은 인간 관계망을 유지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2022년 식품소비행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15.9%가 쌀 일부를 친지로부터 조달받았고 9.2%는 전부를 공급받았다. 쌀을 주고받으며 유지되는 관계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논은 어떠한가. 논은 단순히 작물을 생산하는 기능만을 지닌 곳이 아니다. 논의 경관과 생태계가 지닌 가치도 있지만 도농 간 교류와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도 익히 알려져 있다. 가격의 논리로만 감축했다면 한국 최초의 세계농업유산인 청산도의 다락논은 없을 것이다. 청산도 다락논이 지니는 경관과 다락논의 역사, 이와 관련한 다양한 민속지식 등이 지니는 가치가 있기에 세계농업유산이 된 것이다. 다른 논들도 분명 이러한 가치가 있다.

앞서 강조했듯이 우리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인의 일상에서 쌀과 논은 수많은 관계망을 맺고 작동하고 있다. 그 관계망의 움직임 속에 쌀과 논은 가격으로만 파악하기 힘든 가치를 지닌다. 한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이 벌어들이는 돈으로만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쌀과 논도 상품으로서만, 가격의 논리로만 무작정 감축하라고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려해야 한다. 조선 농민의 삶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상품으로서 쌀을 더 많이 이출해 더 많은 이익을 벌어들였던 식민지 역사를 돌아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