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역의 미래 위해 ‘열공’할 21세기 동학군을 모십니다
박진도 (재)지역재단 상임고문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재)지역재단(이사장 허헌중) 등 11개 농민·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21세기 동학군 양성’을 위한 대학원을 개설했다. 이름하여 ‘지역리더대학원’이다.
지역리더대학원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의 주체였던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현 시대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앞장설 실천적 지역리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배움의 장으로서 문을 연다. 지역재단 등 지역리더대학원 공동운영에 나선 11개 조직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사회 건설에 필요한 철학사상, 정치, 경제, 지역살림 등 다양한 영역의 실천적 지식과 공동체적 리더십을 가진 지역리더를 키워가는 데 힘쓸 예정이다.
지역리더대학원 과정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도올 김용옥 선생 등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철학 분야 최고 대가로 손꼽히는 학자·전문가들이 강의진으로 참여한다. 그밖에도 조세·재정·사회적경제·기후문제 등 각 방면의 최고 전문가들이 특별강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리더대학원 전체 강의료는 무료다. 지역리더대학원 기획·설립에 앞장선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 ‘빡세게’ 연간 200시간 동안 공부할 각오가 된 활동가들이 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무료라 해서 쉽게 생각하고 지원해선 안 되고, 정녕 지역의 미래를 위해 탄탄한 역량을 쌓고자 ‘열공(열심히 공부)’할 각오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상임고문은 어떤 고민을 안고 지역리더대학원 설립에 나섰을까? 올해 연말, 그리고 이후로도 지역리더대학원에서 배출할 학생들에게 그가 거는 기대는 무엇일까? 지역리더대학원생 모집이 막 시작됐던 지난 19일, 경기도 과천시 지역재단 사무실에서 박 상임고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역리더대학원 설립 취지는
지역리더대학원은 ‘지역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지역리더를 위한 대학원’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을 대학원 강의진으로 모시며 했던 이야기인데, `21세기 동학군'이 갖춰야 할 역량과 철학을 교육하는 과정이랄까. 지역리더란 자신이 사는 지역을 ‘외부의 힘’이 아닌 ‘지역주체 스스로의 힘’으로 재미나고 행복한 곳으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며, 지역을 바꿈으로써 전체 사회의 정치·사회 구조를 바꾸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지방은 소멸되는 게 아니라 ‘중앙’과 ‘자본’ 중심 구조 속에서 소멸을 강요당하는 상황이라고 몇 번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강요된 소멸(지난해 박 상임고문이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함)’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앙과 자본 중심의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 방안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정치가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장한 ‘진지전’을 지역에서 펼치는 것이다. 지역에서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중앙권력이 움켜쥔 헤게모니에 도전하자는 뜻이다.
‘진지전’ 과정에서 주민 중심의 분권자치, 지역순환경제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할 지역리더의 양성을 위해 지역재단 및 10개 조직(한살림연합·한국친환경농업협회·가톨릭농민회·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전북먹거리연대·충남사회경제연대·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한국마을연합·국민총행복전환포럼)이 지역리더대학원 설립에 나섰다. 지역재단은 대학원의 운영주관조직을 맡게 됐다.
단발성·단기성 교육을 넘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역리더를 양성할 전문 교육기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 속에 대학원 설립에 나섰다. 지역의 문제는 농업의 문제만이 아닌 만큼, 교육 과정에선 지역순환경제·사회적경제 영역의 이야기도 같이 담고자 한다.
대학원은 일단 비인가 1년제로 운영된다. 다만, 추후 대학원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면 인가대학원으로 승격시키려는 생각도 있다.
주된 참가 대상은
일단 50세 미만의 청년으로 설정했다. 모집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론 현장 활동가들이 중심이 될 예정이며, 당장 지역에서 활동하진 않더라도 수도권에서 지역과 연계해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에서도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같이 할 수 있다.
대학원생 모집과 관련해 강조한 게 있다. “‘빡세게’ 공부할 각오를 갖춘 분들이 신청하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1년간 200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게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만큼 지역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진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오는 게 중요하다.
강의안을 보니 쟁쟁한 학자·전문가들을 대거 모셨다. 강의 과정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전체 200시간 강의 과정 중 80시간은 4개 분야의 전담 교수들이 진행하는 필수강좌로 진행될 예정이다.
도올 선생이 ‘인류사상사의 핵심’이란 주제로 동서양 철학, 그리고 동학·조선성리학 등 한국 철학사상을 강의한다. 정해구 성공회대 초빙교수(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는 ‘민주주의와 주민자치’란 대주제의 정치학 강의를,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경제와 행복한 삶’이란 대주제의 경제학 강의를 맡기로 했다. 나는 ‘지역 살림의 대안과 실천’이란 주제 아래 △‘지방소멸’ 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 △지역순환경제와 사회적경제 △지방재정 △농정혁신과 농업재정 개혁 △지역리더의 역할 등을 강의할 예정이다.
필수강좌 이외에도 △지역자원 발굴 및 활용능력 △지역먹을거리체계 △농촌형 순환경제 모델 기획·실천 △풀뿌리 지역언론 사례와 실천기획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 △지역(마을)계획 수립 등 현장 사례를 기반으로 한 실천적 연구도 전개될 예정이며, 이와 병행해 리더십 함양학습도 함께 진행된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비는 내용을 채우기 위해 비대면학습으로서 특별강좌를 구성했다. 토지·조세·주민자치·기후위기·농촌마을만들기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을 한 명 한 명 모셔 강사진을 꾸렸다. 일부만 소개하자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한국 금융시스템의 현황과 개혁과제’를, 강병구 인하대 교수가 ‘조세·재정 민주주의의 현황과 개혁과제’를, 구자인 마을학회 일소공도 소장이 ‘농촌 마을만들기의 역사와 과제, 그리고 미래’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학습 방식 중 ‘교수·학생 쌍방향 학습 진행’과 ‘동아리 자율학습’이 눈에 띈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쭉 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학생이 궁금하거나 생각이 다른 점이 생길 때마다 질문하고, 강의시간 외에도 교수·학생 간에 상시적으로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교육을 표방하고자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교육이 아닌, 다양한 생각을 안고 활동하는 지역 활동가를 양성하는 교육이니만큼 이러한 과정이 중요하다.
동아리 자율학습의 경우, 관심사가 같은 사람 약 4~5명씩 모여 각자가 원하는 주제를 갖고 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는 동아리의 결성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학습이다. 동아리가 결성되면 관련 분야 전문가를 지도교수로 초빙해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동아리와 개인 차원을 막론하고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구상이다.
향후 지역리더대학원이 배출할 ‘21세기 동학군’에게 거는 기대는
지역먹거리 관련 활동이 됐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 활동이 됐건, 농민운동을 하건, 자기 철학을 갖고 지역에서 대안을 만들어갈 주체로 성장하길 바란다. 중앙정부나 외부자본의 ‘지원’이나 ‘개발’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외생적 개발’에의 의존)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지역민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상황(‘내생적 개발’의 주체로 나서기)을 열어가길 바란다는 뜻이다. 지역리더대학원 교육을 통해, 지역의 운명을 외부의 누군가가 아닌 우리 스스로 열어가겠다는 관점만 확고하다면, 이후의 활동은 지역리더들이 잘 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