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농민들을 ‘허공에 주먹질’하게 했나...영암 떫은감 농가들 분노
어디에도 없는 ‘나무에 달린 피해과만 인정’이란 규정 현장 보험조사에서 왜 불문율처럼 적용됐나 규명해야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일소피해 낙과 보상 방안을 요구하며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거부를 불사했던 전남 영암군 떫은감(대봉감) 농가들이 지난 13일 마을 곳곳에 내걸었던 보험 가입 현수막을 거둬들이고 보험 가입에 나섰다. 보험상품 판매가 시작된 지 열흘만이다.
금정대봉감작목회, 영암군농민회 금정면지회, 한국후계농 금정면협의회, 금정면청년회로 구성된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위원장 신정옥, 대책위)가 이날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과 면담을 통해, 약관의 일소로 인한 낙과 손해 보장 조항을 명확히 확인하면서다.
보험 가입을 시작했지만 이날 현장 농민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못해 분통이 가득했다. 일소로 인한 낙과 손해 보장 조항이 엄연히 있음에도, 그간 보험조사 과정에서 그 피해는 인정하지 않는 조사 방식이 공공연히 적용됐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약관이 있음에도 수년 간 무시된 셈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그동안 보험조사자들이 ‘일소피해 보상은 나무에 달린 과실만 인정한다’라는 기준을 들며, 떨어진 과실의 피해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농민들은 일소로 인한 낙과 손해도 보상하라고 수년간 투쟁해 왔는데 실제로 그 같은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정철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허공에 주먹질한 셈”이라며 분노했다.
농금원 관계자는 “일소 피해는 과실이 나무에 달린 상태에서 입지만, 피해 과실이 계속 나무에 달려 있을 수도 있고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어 둘 다 조사해서 피해 과실로 분류해 보험금을 산정한다”라며 “손해평가 매뉴얼상 나무에 매달린 과실만 인정하고, 떨어진 과실은 인정하지 말라는 규정은 전혀 없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소피해의 특징인 과피의 그을림이나 변색 없이 생리적 현상으로 떨어진 경우는 일소피해 보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두고 일소피해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애매한 지점이나 논쟁의 여지는 있어 왔다는 것이다. 농금원 관련해 올해 11월 시범사업으로 시행 예정인 전기간종합위험방식 상품 도입 등으로 현장의 분쟁을 줄이고 보험상품을 보완해 갈 방침이다.
정철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지난해도 보험조사에서 ‘일소가 심하니까 ‘한시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역농협도 약관에 이미 있으니 반영하라고 계속 이야기를 해줬는데 ‘생리적 현상’, ‘나무에 달린 것만 인정’이라며 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농민들이 일소피해 낙과도 보장하라고 요구해 온 것인데 정작 있는 규정이었다”라며 “농민들이 수년 동안 부르짖을 땐 다들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분개했다.
실제로 일소피해 낙과 손해 보장은 지난 2017년 별도 상품으로 처음 도입됐고 2018년 일소피해 특약이 도입되면서 감수과실수를 산출해 보상하는 방식이 마련됐다.
농민들이 이와 관련해 수년 동안 대외적으로 개선을 촉구했음에도 정작 보험 수혜의 당사자인 농민들만 정확한 내용을 까맣게 몰랐던 셈이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을 알면서도 보험사와 그 관계자, 책임 당국이 농민들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더 문제는 관계자들조차도 약관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철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그간 NH농협손해보험 전남총국 관계자도 농가들에 일소피해 낙과 손해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는데, 실제로 해당 관계자도 관련 약관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지역농협이 관련 약관이 있으니 보험조사에 반영하라는 요구를 지속해서 제기했음에도 무시된 점, 누구보다 약관을 정확하게 알고 적용하는 손해평가 회사들과 보험조사자들이 이를 알면서 묵인했을 가능성도 문제로 남아 있다.
정철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일소피해 낙과 손해를 인정하지 않기로 조사 매뉴얼에서 아예 빼버린 것 아닌가, 어떻게든지 보상을 줄이려고 구실을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며 “구역담당자나 지역 손해사정법인이 NH농협손해보험에 잘 보이려고 나름대로 그런 기준을 만든 것인지 그 배경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라고 분개했다.
이날 영암군 금정면으로 대책위를 찾아 관련 약관을 정확하게 안내한 농금원은 현장에서 그 같은 기준이 왜 적용됐는지를 명확히 확인하고 대책위에 안내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