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위기 시대, 30년 농경제학자가 말하는 ‘농의 가치’
[인터뷰]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편집국장]
|
건국대학교 글로벌캠퍼스(충주)에서 차로 10분 거리, 산속의 개인 작업실 ‘명학재’에서 지난 10일 윤병선 교수를 만났다. 오는 28일 정년퇴임식을 앞둔 농업경제학자가 본 우리 시대 ‘농’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30년을 농업·농촌·농민 ‘3농 문제’에 집중해 왔던 윤 교수는 “농업은 사회가 온전히 존속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3농 관련 지표들이 모두 비관적이지만 흔들려도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농민이라면서, 다만 “도시와 농촌의 다양한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독서대엔 유엔이 채택한 ‘농민권리선언’ 전 조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
정년퇴임식을 앞두고 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그동안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 먹거리단체 관계자들, 제자들이 뜻을 모아 지난해 12월 3일 서울서 정년퇴임 기념 북토크 행사를 했다. 정국이 어수선한 데다 농업계엔 ‘농망4법’이라는 장관의 망언이 나오기도 해 퇴임 행사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고민스러웠다. 이럴 때일수록 농과 소통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던 터라 북토크가 또 하나의 소통의 장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2월 28일이 퇴임식이라 북토크를 하면서 일찍 정년모드로 전환해 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날 행사 끝나고 지인들과 충주로 귀가하는 고속도로에서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가짜뉴스려니 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경기도 이천쯤에선 아예 차에서 내려 확인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북토크에 참석했던 이들이 후에 ‘평생 잊지 못할 날’이라거나 ‘윤 교수를 견제해 정년 퇴임하니 계엄을 발표했다’는 등 우스갯소릴 했는데, 내란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여전히 긴장을 놓아선 안 될 것 같다. 보수가 똘똘 뭉쳐 어떤 상황이 연출될 것인지…, 잠도 좀 설치고 그렇게 지낸다. 다음 학기엔 한 과목만 맡게 돼 강의 준비 부담이 크게 줄다 보니 미뤄둔 책들도 마음껏 읽고 있다.
왜 농업경제학자가 됐는지 궁금하다
서울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고등학생 때까지 농업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 고향이 전남 함평과 무안이라, 어렸을 적 농촌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농업에 대해선 그저 감성적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대학은 사회학과를 가고 싶었고 언론에 관심이 많았다. 나름 사회비판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가 유신 치하라 집안에선 ‘감옥 가려고 대학을 가냐’며 사회학과 지원을 반대했다. 원서까지 사놓고 결국 건국대 상경계열로 방향을 틀었다. 공인회계사를 하려고 학원도 다녀봤는데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경제학을 배우는 건 재밌었고 논리적 정합성을 강조하는 것에 매료됐다. 문제는 경제학의 논리적 엄밀성이라는 게 현실을 모두,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는 거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논리적 정합성일 뿐 세상을 온전히 설명하고 표현하는 게 아니다.
당시 학과장이 김병태 교수님이셨는데, 교수님은 경제학을 일컬어 ‘지옥의 문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학은 ‘경세제민’의 의미가 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하는 일의 본질을 살리는 경제학 분야를 고민했다. 국제무역, 금융 등 다양한 경제학 분야 중에서 2학년 때 김병태 교수님의 농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농에 기여하는 연구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교수님을 만나 농경제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강단과 농업‧농촌 현장에서 연구하고, 대안농정도 모색했다.
학자로서의 지난 시간을 자평해 본다면
김병태 교수님이 내게, 농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도시 태생이라 농산물 생산분야는 맹탕일 거라면서 농산물 무역과 관련된 부분을 마르크스 경제학 입장에서 연구를 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세계적 농산물의 만성적 공황이 한국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라는 과제를 주셨다. 농업공황, 농산물 과잉에 대한 문제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작성했다. 이후 1996년부터 건대 충주캠퍼스 경제학과 교수로 자리를 잡게 됐다.
박사학위 주제를 심화할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2002년 연구년을 맞아 미국 일리노이주에 가게 됐다. 선진국은 만성적 농산물 과잉 문제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는지, 한국에 수입 개방을 강요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등과 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라는 표현을 썼다. 초국적 기업들이 먹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정리를 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쓴 글이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농업 지배’인데, 농촌사회학회지에 게재하게 됐다. 이를 토대로 2004년 국내에서 대안적 먹거리 체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2007~2008년 세계적 식량위기 때엔 경제학회에서 발표 요청이 올 정도로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 문제가 확산됐다. 한편으론 세계 농업을 농간하는 몬산토·카길 등의 초국적 기업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들을 비판만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연대에도 힘을 쏟았다. 농의 문제를 파고든 지난 30년은 현실적 여건은 어려웠으나 학자로선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농업이 어려운데 농민과 농촌 현장을 돕는 연구자가 드물다.
이른바 주류 학자들은 정부 조력자로 관변화돼 있지 않나
학자들이 정부 정책의 조력자가 되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어느 관점에서 농을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잘 산다’는 의미가 단순하게 지디피(GDP)나 지엔피(GNP)를 높이는 걸로 해석하고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등한시하느냐, 아니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느냐를 나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나 연구기관의 시각은 농을 소외시키기 십상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도 농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견지하는 공무원과 연구자가 분명히 있다. 안타까운 건 이들이 소수의 의견이 돼 간다는 거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주된 분석이 수리분석, 계량분석인데,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자본은 물적 투입과 산출만을 중심에 둘 뿐이다. 그러나 경제현상은 숫자만으로 표현 못 하는 게 훨씬 많다는 걸 우린 간과한다. 농업과 농촌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화·역사·공동체적 가치·환경보호 등 무형의 자산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하겠나. 계량화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난 뒤에 논의해야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데, 비계량화 부분을 말하면 비과학적인 양 아주 편협하게 치부하는 것이 경제학의 맹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력 중심 규모화를 추구하는 농정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농업의 경쟁력을 말할 때 주류경제학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따진다. 생산량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만을 가지고 농을 바라볼 때엔 한계가 분명하다. 농업 생산방식을 공업적 생산방식으로 재단하면 안 된다. 자본의 입장에선 농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볼 뿐이다. 농업은 생산적 측면은 물론 지역과의 연계고리, 공동체적 관계성 등 복합적인 가치로 봐야 한다. 농 안에 사람을 투영해서 생활로서 농업의 가치까지 평가해야 한다. 화폐적 투입·산출에만 매몰돼 농업을 바라보면 우리 먹거리로서의 농업엔 미래가 없다. 이런 관점이라면 기후위기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이 투입해 더 많이 생산하는 방식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3농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비관적이다.
3농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 주신다면
현재 농업 문제가 어느 하나 괜찮은 구석이 없다. 식량자급률, 농가경제, 농촌 고령화 문제…, 이걸 분리해 각각 대응한다고 해결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농 내부에 있는가 외부에 있는가부터 파악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농민이 게으르다거나 잘 알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지 않나.
자본이 농을 지배하는 틀 속에서 농업의 입지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이른바 3농 문제로 도출되고 있다. 3농 문제가 농민만의 문제도 아니고 도시문제로도 이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농업 문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 즉 농업은 경쟁력이 없어서 사라져야 할 산업으로 치부하고 있는 관점을 바꿔내야만 한다. 농업은 사회가 온전히 존속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또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물려 조기 대선과 헌법 개정 얘기도 나오는데 이번엔 반드시 농업과 먹거리 관련 비전이 나와야 한다. 농민들이 몰고 온 트랙터가 남태령에서 막혔다가 시민들의 공조로 대통령 관저까지 행진했으나, 집으로 돌아간 농민들은 벼 재배면적 8만ha 감축 소식을 받아들지 않았나. 유럽의 트랙터 투쟁 농민들은 유럽연합 집행부 책임자를 만나 답변을 듣고 돌아갔다. 이 큰 차이를 도시와 농촌의 연대체계 강화로 극복해야 한다.
유엔농민권리선언 포럼 대표도 맡아 국내 농민권리 문제에도 앞장섰는데,
한국 농민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달라
2018년 유엔이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했다. 그때 마침 한국 사회에 농민헌법 개정이 논의됐다. 농민권리선언과 연계해 한국 농민의 지위 향상과 각종 권리확보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자는 뜻에서 포럼이 발족됐다. 농민권리라는 건 인권을 넘어선 기본권 확보의 문제다. 농민권리를 다른 말로 하면, 자본들이 수탈해 간 농민들의 권리를 되돌린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개발에 있어서 주거공간이자 생산공간인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권리가 거의 무시된다. 농촌이 과소화하고 농민이 노령화되면서 사업 편리성 등의 이유로 추진되는 수많은 개발행위에서 농민권리를 되찾는 문제다. 농민권리선언 안에 포함돼있는 먹거리 확보의 경우에도, 날로 확산하는 농민들의 빈곤층 문제를 해결 과제로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농민들의 권리 보장은 갈 길이 멀다.
WTO·FTA 굴레에 갇힌 우리 농업, 어떻게 해야 하나
WTO·FTA는 대외적인 형태인데, 한국사회의 주류가 WTO·FTA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 기후위기 시대, 사회적 양극화라든가 지역적 편차 문제가 심화된 현대사회에선 최소한 농업과 먹거리를 지킬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다. 과학기술을 앞세운 스마트팜이나 푸드테크가 아닌 농촌을 지키고 생산의 주체인 농민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만 한다. 1ha 미만을 경작하는 소농들의 경영 협력을 통해 공동체적 운영을 하는 모델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 농업을 매개로 지역과 사람을 살리는 방식의 실천적 방안 등을 정책과 제도로 도출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후배 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 등이 있으면 자유롭게 해달라
농촌 현장을 다니면서 좋아하는 취미생활(트래킹)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출판했었는데, 농의 현장에서 만난 분들과 소통하면서 고민한 것들을 모아 책을 내거나 외국의 좋은 책들을 국내에 번역해 소개하는 일도 고민하고 있다.
후배 연구자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크다. 농업 문제를 탐구하는 전공자들이 대학 강단에서 계속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게 선배들의 역할인데, 대학들의 추세가 실용화 취업 중심으로 바뀌어 설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젊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토론하는 자리는 계속 가져갔으면 좋겠다. 지난해 남태령 현장을 보면, 도시민들이 농업 문제를 세세히 몰라도 연대의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틀거리를 만들어가는 일에 계속 힘을 모으겠다.
농은 결코 고정된 틀에 꿰맞출 수 없다. 다양한 형태로 채워진다. 농민은 흔들릴 뿐이지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고, 어려운 현실에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농산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가치가 있고 먹거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보다 많은 사람이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