떫은감 일소피해 약관, 결국 개정 없이 보험 판매 개시

전남 영암 떫은감 농가들, ‘농민 의견 무시’ 농금원 규탄 낙과 피해 보상 방안 나올 때까지 보험가입 무기한 연기

2025-02-03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입춘 한파가 몰아닥친 3일 아침, 전남 영암군 떫은감(대봉감) 농민들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거부를 불사하는 투쟁에 나섰다. 지난해 이들이 강력히 촉구했던 일소(햇볕 데임)피해 보장 관련 약관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이날 떫은감 재해보험 상품 판매가 시작돼서다.

지난해 유례없는 폭염으로 극심한 일소피해를 입자, 떫은감 농민들은 전체 착과수(적과 후 기준)의 6% 이상 일소피해가 발생해야만 보상하는 규정을 없애라고 농림축산식품부‧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과 재해보험 운영사인 NH농협손해보험(NH농협손보)에 요구한 바 있다. 아울러 보장한도와 직결되는 과중(과실의 무게)을 현행 270g에서 320g으로 상향할 것을 촉구했다. 올해 보험상품에서 과중은 300g으로 상향됐으나, 일소피해 규정에 대한 농민들의 요구는 여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금정대봉감작목회, 영암군농민회 금정면지회, 한국후계농 금정면협의회, 금정면청년회로 구성된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위원장 신정옥, 대책위)가 이날 전남 영암군 금정면 금정농협 앞에 모여 “농민 의견을 무시하는 농금원을 규탄한다”라고 외쳤다.

이 자리에 모인 농민 등 90여명은 △일소피해 보상 규정을 떫은감 품목 특성에 맞게 개정할 것 △기후위기에서 농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무를 다할 것 △NH농협손해보험은 농가 의견을 반영해 보험을 판매할 것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은 농가 의견을 즉시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보험상품을 적용받는 사과‧배‧단감은 과실이 일소피해를 입어도 가지에 그대로 달려 있어 보험조사 과정에서 그 피해를 확인할 수 있지만, 떫은감은 4~6일내 모두 떨어지고 썩어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확인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금정면은 지역농협이 관리하는 보험 가입 농가가 1300여가구에 달해 사고 접수부터 조사자가 현장에 나가기까지 최소 3~4일이 걸려 정작 조사 때엔 이미 낙과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고 만다.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가 3일 전남 영암군 금정면 금정농협 앞에서 '농민 의견 무시하는 농금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문제는 과수 재해보험에서 일소피해를 보상받으려면 피해 과실이 가지에 매달려 있어야 하고, 피해 과실 수가 적과 후 전체 착과수의 6% 이상이어야만 하는데, 떫은감의 특성상, 이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실효성이 없는 규정이라는 게 현장의 지속된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박춘홍 대책위 부위원장(금정면지회장)은 “실제로 일소피해 과실이 20~30% 이상 나와도 다 떨어져서 나무에 매달린 건 2~3%밖에 안 된다. 매년 여름마다 일소피해를 봤지만 이렇다 할 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라며 “지난해 농금원과 NH농협손보가 현장의 어마어마한 피해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갔음에도 올해 역시 개선되지 않았으니 농민들이 계속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낙과 피해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다 보니 농민과 조사자 간 갈등과 싸움이 빈번하고 조사자들은 조사자들대로 부담되고 농민들은 피해를 입어도 보상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신정옥 대책위원장(금정대봉감작목회장)은 “6% 조항도 처음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이라 농가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엔 없던 것을 보험 당국이 유리한 쪽으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지구온난화로 일소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데, 농민의 의견은 아예 무시하고 눌러버린 처사다”라고 비판했다.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가 3일 마을 곳곳에 ‘농가의견 무시하는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을 거부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추위 속에서도 현장 발언이 이어졌다.

박종윤 영암군농민회장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농작물 품목별로 특성이 다름에도 재해보험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라며 “이에 금정면 대봉감 농가들이 오랜 세월 재해보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젠 농금원과 NH농협손보가 농가들의 노력과 목소리에 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권혁주 영암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요새 실손보험금만 해도 인터넷, 휴대전화만으로도 신청해 바로바로 지급받을 수 있는 세상인데 농민들에 대한 보험만큼은 정말 까다롭다. 조사원에게 사정사정해야 하고, 약관을 바꿔 달라고 수십 년을 싸워도 글자 하나 바꾸기 어려운 게 재해보험이다”라며 “농민과 농업을 무시하는 자들은 밥도 과일도 먹을 자격이 없다. 영암군농민회가 정부와 영암군, 농협이 손잡고 해결해 나가도록 함께 싸우겠다”라고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대책위는 이날 마을 곳곳에 ‘농가의견 무시하는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을 거부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관련 규정을 개선한다는 답변을 받을 때까지 보험 가입을 미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상품판매가 시작된 상황에서 당장 약관 개정은 어렵지만, 피해조사 방식에 대한 규정에서 낙과 피해를 인정하는 쪽으로 개선 정도는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지역농협의 가입업무도 수일간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농협은 안그래도 모자란 인력 상황에서 추후 가입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는 등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한편 이번 재해보험 상품 개선에서 일소피해 규정에 대한 농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농금원 관계자는 보험상품 개발 및 신고 절차 시점상 빠듯한 상태에서 현장의 의견이 개진돼 검토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현장 의견 청취, 연구용역 등을 통해 올해 개선 방안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