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㊻] 양반이 많다는 안동오일장
안동시와 인근에는 몇개의 장이 선다. 노랫가락에선 “양반 많다 안동장, 베전 많다 풍산장, 물맛 좋다 예천장, 끗발 좋다 구담장”으로 불린다고 안동 출신의 지인이 알려주었다. 저마다 특징이 도드라져서인지 그에 걸맞는 수식어가 붙은 장들이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호기심을 더 많이 자극하는 장이 어느 장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래도 시가지 중앙에 서는 안동장으로 움직였다. 세밑에 양반이 많다고 알려진 안동의 오일장 모습이 많이 궁금해서다.
안동오일장은 상설시장인 신시장을 중심으로 서는데,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설시장은 쇠락해진 모습과 함께 아주 애매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공영주차장 옆으로 안동의 대표 상품인 간고등어 판매장 세 곳이 나란히 있다. 간고등어 구경을 하면서 중앙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시장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만나게 된다. 차량의 통행을 못하게 막아 놓아 도로 중앙을 걸어서 장 구경을 할 수 있다. 평소의 오일장 규모와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를 가늠하게 하는 풍경이다.
내가 안동장에 갔던 날은 세밑이었지만 생각보다 상인과 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날이 너무 추워서다. 차의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을 만큼 추웠는데 얼굴이 시리고 발이 얼어붙는 느낌이어서 나조차도 얼른 귀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추위를 이기려고 시장 안 골목에 모여 있는 국밥집에 들어가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야 했다. 한우로 유명한 곳이라 소머리국밥집들이 많았다.
대개의 상설시장들에서 볼 수 있는 청년몰이 유명무실하게 있고 외지에서 오일장을 떠도는 상인들도 보인다. 장에 갈 때마다 늘 그랬지만 오늘도 나는 다른 오일장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자꾸 기웃거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상인들이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건다. 가끔 건져지는 식재료와 음식에 관한 솔깃한 정보, 그 지역만의 식문화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번 장에서도 그러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상설시장을 둘러싸고 늘어선 장을 기웃거리다 마지막에 상설시장 안을 도는 순서로 다녔다.
안동은 마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아 여쭈니 다 타 지역으로 팔려나가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한다. 그런가 하다가도 참 의문이 생긴다. 다른 지역으로 더 많이 보낼 것이 아니라 안동에 와야 살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사람들이 안동으로 올 텐데 왜 외지로 보내는 것이 답이라 생각할까 궁금하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안동만의 색을 만나게 되었다. 제물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고기와 해산물을 포함한 제물고기들의 꼬지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과 안동만의 모양을 가진 전, 안동만의 제물떡을 파는 가게들이다. 모두 다 제사나 차례상에 괴서 올리기 좋은 형태로 모양을 다듬어 팔거나 꼬지에 꿰서 판다. 소고기, 닭고기도 있지만 문어나 상어, 고등어, 가오리도 있고 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떡이 있는가 하면 제기의 크기에 맞춘 배추적과 다시마적도 보인다. 다른 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바다와 면하지 않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안동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식재료가 하나 있다. 남동해에서 잡은 고등어를 양반이 많은 안동으로 운반하는 도중 상하지 않게 소금간을 해서 목적지로 가져간 역사가 만들어 낸 간고등어가 그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등어자반이라 부르는 것을 안동에선 간고등어라 부른다. 고등어에 소금을 뿌려 간을 하는 사람을 따로 ‘간잽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한 업체의 마케팅 산물로 오래 간잽이로 살아온 이동삼 노인이 신세계백화점에서 염장을 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주차장 옆에 별도의 매장들이 있기도 하지만 시장 안에 생선을 하는 곳에서는 다들 간고등어를 팔고 있다.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와는 또 다른 상황이지만 소비되는 양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지나간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다녀온 안동장이다. 그래서겠지만 세밑치고는 한산하였으나 예부터 양반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제물이 유독 많은 장이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안동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안 깊숙한 곳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오랜 문화가 안동을 지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하며 돌아왔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