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짓눌린 농민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11월 26일부터 3일간, 우리나라 중부지방엔 기록적인 양의 눈이 내렸다. 아주 생소한 시기에 놀랄 만한 형태로 내린 이번 ‘폭설’은 그간 눈에 의한 피해를 겪어 본 적 없었던 경기 남부권 농촌을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주로 시설농업이나 양계업에서 흔히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마찬가지로 파이프를 주 지지대로 사용하는 한우·낙농가의 우사 등이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듯 쓰러져 나갔다. 피해가 가장 심했던 경기 남부 지역에는 내재해형 시설하우스의 적설심 기준(경기 22~28cm)이 의미 없는 수준의 양이 쏟아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확정한 전국의 피해규모가 총 4509억원인데, 이 가운데 42%가 축산시설, 36%가 비닐하우스 피해일 정도다.
이렇게 넓은 범위에 뿌려지는 대량의 습설(젖은 눈)은 피해가 집중된 경기 남부 지역 농민들이 11월 초겨울에 예상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큰 피해가 발생한 원인은 바로 ‘눈의 무게’로, 이번에 내린 눈은 많은 수증기를 머금은 밀도 높은 습설이었다. 습설은 같은 면적에 동일한 높이로 쌓일 때 마른 눈(건설) 대비 3배의 무게를 지닌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발생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역시 지난해 내내 이어진 ‘이상기후’다. 기상청은 역대 가장 긴 폭염으로 평년 대비 3도나 높아진 수온이 저기압을 만나 눈구름을 폭발적으로 발달시켰다며 앞으로 겨울에도 기후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사태가 벌어진 지 벌써 6주가 지났지만, 아직 태반의 현장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장조사에 이어 특별재난지역 선포까지 복구일정 자체가 줄줄이 늘어진 데다, 중장비 없이는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시설피해의 수준이 크기 때문이다. 홀로는 복구를 시작할 엄두조차 못 내는 농민이 넘쳐난다. 개중에서는 이미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다시 똑같이 하우스를 지었다가 이번과 같은 눈을 마주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12.3 내란 사태 등 폭설 직후 연이어 터지는 국가적 사고에 제대로 된 하소연조차 하기 어려운 시국에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번 사태는 아직 많은 농가에서 간이 시설물을 통해 생산기반을 꾸릴 수밖에 없는 우리 농축산업이 이제 지역을 막론하고 겨울철에도 이상기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최악의 상황에서 경영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 같은 종류의 피해가 다시 일어나는 일을 막기 위해 어떤 시급한 조치들이 필요한 지 현장의 모습을 통해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