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과 탄핵 이후 ‘농’의 미래는

2025-01-01     하승수 대표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내란이 일어났다. 현직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쿠데타였다. 다행히 국회에서 신속하게 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이뤄졌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날은 ‘윤석열이 술 먹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나오는 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술 먹고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친위쿠데타였다. 중요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하고, 부정선거를 빌미로 중앙선관위를 장악했다. 심지어 여당 대표도 체포 대상에 올라 있었다. 중앙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직 대법관과 전직 대법원장, 윤석열의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한 현직 법관까지 체포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현역 군인들만으로도 모자라서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한 전직 정보사령관이 내란의 핵심 기획자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1987년 이후 나름대로 만들어진 민주적 제도가 거의 무력화된 셈이다. 군과 경찰은 내란을 획책한 권력자의 뜻대로 동원됐고, 헌법과 법률은 완전히 무시됐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체포와 구금, 언론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현실화됐을 것이다. 국민들은 노예 상태로 전락했을 것이다. ‘12.3 내란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탄핵은 돼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윤석열이 일으킨 것은 내란임이 명백하다. 국민의힘이나 일부 타락한 전문가들이 내란이 아니라는 억지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것에 불과하다.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하는 장면을 전 국민이 지켜봤다. 주요 지휘관들은 ‘윤석열이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더 따질 것이 없다.

그동안 윤석열에게 충성해왔던 검찰, 경찰이 경쟁적으로 내란죄 수사를 하는 것만 봐도 ‘내란죄’가 성립한다는 데에는 다툼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법원도 주요 내란 임무 종사자들에게 줄줄이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다.

그리고 내란을 일으킨 자를 파면하지 않고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헌법재판관 3명만 충원된다면, 윤석열 탄핵은 기정사실이 될 수밖에 없다.

내란 앞에서 보수-진보를 따지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다. 조갑제, 정규재 같은 보수인사들도 윤석열을 내란수괴로 보고 있고, 파면은 당연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미치광이 역적 대통령을 제명할 줄 모르는 국힘당은 이적단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혹시나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9명의 재판관으로 채워지는 순간 탄핵은 거의 기정사실이 된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은 탄핵을 일만 번 당해도 될 정도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탄핵 이후이다. 이번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허점을 드러냈다. 민주화 이후에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했던 ‘군과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무너졌다. 독재정권 시절의 어두운 과거가 소환됐다.

‘12.3 내란 사태’가 윤석열 탄핵으로만 결말 지워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고, 그동안 소외됐던 목소리들이 이 나라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사회대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남태령에서의 농민과 시민의 연대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진 보장을 촉구하며 ‘윤석열 체포’ 등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민주화 이후, 무엇이 미흡했나

1987년 민주화 이후 군사정권을 청산하기 위해 군대 내부의 사조직을 정리했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군 장성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차지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문민통제라는 정신은 약화됐다.

경찰의 경우에도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민주적 통제를 하기 위해 국가경찰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비상임인 국가경찰위원장은 실질적으로 경찰조직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경찰 출신이 차지하는 상임위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 국가경찰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조직이 돼 버렸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를 전신으로 하는 국가정보원의 경우에도 민주적 통제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민간인 사찰, 국내 정치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왔다. 이번에도 윤석열 내란 세력은 국가정보원을 내란에 이용하려고 했다.

윤석열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조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편파적인 검찰권 행사를 통해서 윤석열과 김건희를 봐줬고,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은 대상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수사를 했다. 검찰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불법행위나 특수활동비 오남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은폐하고 파장을 축소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이 모든 문제가 집약된 것이 ‘12.3 내란 사태’이다. 따라서 윤석열 파면과 내란 세력에 대한 수사·처벌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군·경찰·검찰·국가정보원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들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의 제도들을 대폭 손봐야 한다.

행정부 전체도 다시 개편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무총리와 국무회의라는 제도를 두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국무총리는 왜 있는지 모를 존재로 전락했고,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무능을 견제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국무총리와 국무회의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하려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행정부 내부에서는 예산권을 가지고 무소불위의 존재처럼 행세하는 기획재정부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기획재정부는 권력의 눈치를 적당히 보면서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농민들이다. 경제관료들은 농산물 시장개방은 밀어붙이면서 농산물 가격안정이나 농민들의 소득보장에 대한 요구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정책 기조를 강요해 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획재정부에 눌려서 농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왔다. 이런 관료집단들은 군이나 경찰처럼 내란에 직접 동원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내란이 성공했다면 내란 세력의 입맛에 맞춰서 국가를 운영하고 권력에 순종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1박 2일 동안 끈질긴 저항 끝에 경찰의 차벽을 철수시키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향해 다시 행진을 시작한 전봉준투쟁단 트랙터가 이날 저녁 한강진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장에 도착하자 1만여명의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남태령에서 보여준 연대

내란 이후에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지난해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있었던 남태령에서의 연대이다. 상경한 농민들과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연대해서 경찰의 차벽을 뚫어낸 사건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줬다.

이번 내란이 윤석열 탄핵으로만 결말 지워져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고, 그동안 소외됐던 목소리들이 이 나라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사회대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이미 남태령에서는, 그리고 여러 집회 현장에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박근혜 탄핵은 문재인정권의 출범으로 이어졌지만, 문재인정권은 촛불들이 요구했던 개혁 과제들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실망했고, 상당수는 냉소하게 됐다. 그것이 윤석열이라는 미치광이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는 사태를 낳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그리고 다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회대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 윤석열 탄핵 때까지 기다릴 일도 아니다. 농민들과 농촌주민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주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것을 남태령에서의 연대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된다면, ‘농’이 핵심 키워드 돼야

어차피 조기 대선은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단지 새로운 대통령만 뽑는 것이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지금 필요한 과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정책으로 채택돼야 한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축의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는,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개혁 과제들이다. 군·경찰·검찰·국가정보원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헌법과 선거제도와 같은 정치제도의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논의돼야 한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내란 세력까지 비호하는 정치세력이 더이상 존립할 수 없게 만들려면 정치제도의 개혁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는, 기후위기, 경제·민생위기, 지역위기 등을 헤쳐나갈 수 있는 대안에 관한 논의이다. 이 속에서 농촌, 농업, 농민이 중요한 의제로 논의돼야 한다.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업을 국가의 생존기반으로 인식하고 농업, 농지, 농촌 정책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비수도권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농촌지역부터 활성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경제·민생의 대안을 찾으려면 수도권 일극 집중을 해소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농’은 이번 조기 대선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핵심 키워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농민들과 농촌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참으로 어렵고 위태로운 순간을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추운 겨울 날씨에도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 남태령으로 모인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란을 겪고 윤석열을 파면시킨 이후의 세상은 지금까지의 세상과 달라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을 때이다.